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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짠돌이 스타 셰프의 한턱. 일러스트레이션 김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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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누들로드 이욱정 PD의 ‘르 코르동 블뢰’ 생존기
영국왕실 훈장까지 받은 켄 홈…중요한 건 잔재주 아닌 사고력 켄 홈이 저녁 초대를 한 곳은 런던에서 최고급 호텔로 꼽히는 도체스터 호텔의 중식당 탕(Tang)이었다. 광둥식 요리로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베컴, 엘턴 존 등 유명 인사들이 즐겨 찾는다는 곳이다. 오후 늦게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진눈깨비가 쏟아져 내렸다. 하루에도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다는 런던의 늦가을 날씨라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우산을 안 가져온 탓에 호텔에 도착할 즈음에는 축축하게 젖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하이드 파크 근방의 도체스터 호텔은 외관부터 웅장했다. 약간 주뼛거리며 들어서자 호화롭게 장식된 로비가 눈에 들어왔다. 커다란 타조깃털 장식을 단 모자에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부인들과 턱시도를 빼입은 남자 손님들 한 무리가 벌써부터 로비를 가득 채우고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와! 런던에 이런 별천지가 있었네! 연기 나는 주방에서 일하다 갑자기 홀로 불려 나온 꼬미 셰프(견습 셰프)가 된 기분이랄까. 블레어 전 총리가 식사한 자리에서 초호화 만찬 머뭇거리고 있으니 호텔 스태프(조지 클루니를 닮은)가 다가왔다. 누구를 찾으시냐고 묻기에 켄 홈을 만나러 왔다고 했다. “아아, 미스터, 켄 홈이요!” 안내한 곳은 브이아이피(VIP) 멤버십바였다. 특유의 검은 차이나셔츠를 빼입은 켄 홈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들로드> 촬영이 끝나고 거의 1년 만의 재회였다. 영국에서 켄 홈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만 런던에서 그를 만나 인기를 실감한 것은 처음이었다. 바에 같이 앉아 있으니 끊임없이 손님들이 다가와 사인을 부탁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자 매니저가 코트를 직접 받아주며 테이블로 안내해주는데 한눈에 봐도 최고의 테이블이었다. 켄은 레스토랑이 마음에 드냐면서 물었다. “이 감독, 지난주에 바로 이 테이블에서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부부와 식사를 했어요.” 셀레브리티 친구를 두니 좋긴 좋구먼. 이어서 정통 광둥식 코스요리가 시작되는데 런던의 물가수준을 고려할 때 나의 한 달 외식비에 준할 수준의 값비싼 요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은 켄이 객지에서 요리 배우느라 고생하는 친구를 위해 특별히 한턱을 쓴 것이었지만 평상시 그는 굉장히 검소한 사람이었다. 어떤 때는 짠돌이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의 파리 아파트에서 촬영할 때 일화다. 켄은 항상 촬영 스태프들을 위해 음료수와 간단히 먹을 치즈와 와인을 준비해 놨다. 우리 정서로 보면 당연히 그냥 대접하는 것이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나에게 영수증을 건네며 제작비에서 청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는 속으로 “에구, 짠돌이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곧 그런 마음이 바뀐 건 그의 책상 위에 잔뜩 모아놓은 1유로짜리 슈퍼마켓 할인 쿠폰들을 보고 나서였다. 켄은 요리촬영을 할 때 식재료 하나를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얼마나 알뜰한지, 촬영하고 남은 양파 반쪽까지 다 챙겨서 나중에 사용할 정도였다. 홀어머니 밑에서 정말 어렵게 자라 자수성가를 하면서 몸에 밴 검소함과 알뜰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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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홈이 출연한 <누들로드>의 한 장면. 만리장성을 배경으로 국수요리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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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고 맛없고 몸에 나쁘다는 중국요리에 대한 인식 뒤바꿔 그의 요리책은 중국요리에 대해 서구인들이 갖고 있던 일반적 인식을 바꾸어놓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의 책은 우연히 프로듀서의 눈에 띄었고 이를 계기로 비비시의 첫 중국요리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 전격 기용됐다. 켄 홈보다 요리 잘하는 셰프는 많았을지 모르나, 그에게는 누구도 갖지 못한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서구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언어로 중국요리를 풀어줄 스토리텔러로서의 능력이었다. 르 코르동 블뢰의 영국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 “켄 홈은 영국인들의 중국요리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꿨어. 이전에는 중국요리는 온통 기름기 많고 화학조미료 듬뿍 들어간 값싼 먹거리였거든. 그런데 그는 중국요리가 건강하면서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라는 것을 보여줬지.” 이렇게 시작된 켄 홈의 요리프로그램은 대박이었다. 이 성공에 힘입어 그의 요리책은 100만권 넘게 팔렸고 그의 이름을 딴 켄 홈의 ‘웍’(중국냄비)은 영국에서만 역시 100만개 이상 팔렸다. 곁에서 그를 지켜보며 발견한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 <누들로드> 촬영 때 보니 켄 홈의 칼질이 재빠르지 못했다. 나이 탓인가, 세계적인 스타 셰프의 칼질이 왜 번개 같지 않을까? 거기에 비하면, 내가 아는 한국 요리사들의 칼질이 훨씬 빠르고 능숙했다.(일본·중국을 제외하면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 셰프들의 칼솜씨는 정교하고 빠르다.) 그럼에도 어떻게 그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레시피의 저자이자, 일류 레스토랑의 컨설팅을 도맡는 스타 셰프가 될 수 있었을까? 초일류 요리사의 조건은 기교가 아니라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이었다. 축구나 야구 선수들을 보면 어린 시절 한국 선수들이 구미 선수들보다 기량이 훨씬 뛰어난 듯 보인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전세가 역전된다. 우리의 스포츠 환경이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플레이하는 능력보다는 테크닉 위주로 어린 선수들을 육성했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켄 홈을 보면서 요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리사가 더 많은 책을 읽고, 다른 나라의 레시피를 비교 연구하여 문화적 소양을 쌓아야 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디저트가 나올 때쯤 켄이 좋은 소식을 전했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큰 훈장을 받게 됐어요.” 오비이(OBE·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Officer). 공공부문에 큰 공헌을 한 이에게 주는 명예였다. 중국의 음식문화를 영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운 공로였다. 국적은 미국이었지만 항상 중국인으로서 문화적 뿌리를 자랑스러워한 켄 홈. 그는 레스토랑의 주방이 아닌 책과 티브이를 통해 중국의 음식문화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을 바꾸었다. 한 나라의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데 요리사가 얼마나 큰 몫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셈이었다. 켄과의 즐거운 저녁자리가 있고 나서 몇 달 뒤, 켄이 암투병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다행히 치료경과가 좋다고 하나 항상 환하게 웃는 그의 미소가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멀리서 그의 완쾌를 빈다. 이욱정 KBS PD(www.kbs.co.kr/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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