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14 11:13
수정 : 2011.04.1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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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배짱 덕에 ‘파르시’ 만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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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문영화·김부연의 그림이 있는 불란서 키친
빨갛게 구운 토마토 속 가득 채운 고기와 채소
1996년 우리 부부는 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프랑스 시골 마을 샹베리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프랑스 도착 뒤 공항에서 짐을 분실하는 바람에 신고 절차를 마치고 나니 기차 시간에 늦어버렸다. 할 수 없이 택시 기사를 붙잡고 사정을 설명하니 1000프랑(당시 환율로 15만원 정도)을 달란다. 외국인이라 바가지를 씌우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일단 깎고 보았다. “500프랑!” 남대문시장도 아니고 그리 가격을 후려치는 나도 민망했지만 결국은 기사와 내가 부른 가격의 딱 중간 지점인 750프랑에 합의를 보았다. 택시 기사는 정말 싸게 해주는 것이라는 강조와 함께 미터기를 켜고 가보겠단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요금은 1000프랑을 넘었고 톨게이트 비를 포함하면 대단히 싼 가격에 온 것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 기숙사에는 프랑스 도착 첫날 택시비를 깎은 간 큰 한국 여자가 왔다고 소문이 났다.
후미오는 일본 남학생인데 워낙 수줍음이 많아 수업 시간에 발표라도 시키면 귀까지 빨개진다. 그런 아이가 만물상에서 산 카세트 리코더가 고장이 나서 난감하다며 프랑스어 통역을 부탁해 왔다. 나는 불문과 출신이긴 하지만 내세울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심한 이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프랑스어 능력이 아니라 물건을 바꾸지 못했을 경우 대처할 한국 아줌마의 배짱이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후미오가 접시를 들고 서 있었다. 토마토 속을 파내고 다진 고기와 채소로 속을 채워 오븐에 구워낸 요리 ‘파르시’(farcies)를 얌전히 담은 채. 토마토 꼭지가 모자를 쓴 듯한 예쁜 비주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토마토는 생으로 먹는 줄만 알았지 익혀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 요리는 제법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데 남자가 했다는 게 더욱 감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만 보면 발갛게 물든 후미오의 얼굴이 생각나 몇 알씩 사게 된다.
Tip. 파르시는 토마토뿐만 아니라 양파, 가지, 파프리카 등 속을 파낼 수 있는 채소면 무엇이든 응용할 수 있다. 익힌 토마토는 기름과 함께 섭취하면 항암 작용을 하는 리코펜 흡수율을 높이기에 올리브 오일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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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파르시 (2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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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파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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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료 | 잘 익은 작은 토마토 4개, 다진 쇠고기 200g, 양파 1개, 마늘 1쪽, 올리브 오일 2t, 빵가루 2t, 다진 파슬리 2t, 소금·후추 조금씩
◎ 만드는 법 | 1. 오븐을 180도로 10분 정도 예열한다. 2. 양파, 마늘을 곱게 다진다. 3. 토마토 꼭지가 있는 부분을 1cm 정도 슬라이스로 잘라낸다. 나중에 뚜껑 구실을 할 것이니 반듯하게 자르고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한다. 4. 작은 숟가락으로 토마토 속을 모두 긁어내 체에 얹어 물기를 빼고 건더기만 곱게 다진다. 5. 곱게 다진 쇠고기와 올리브 오일, 빵가루, 다진 파슬리, 소금, 후추, 2와 4를 모두 잘 섞는다. 6. 속을 긁어낸 토마토에 5를 넣고 잘라 낸 꼭지를 뚜껑으로 정성스럽게 씌운다. 7. 예열된 오븐에 넣어 40분 정도 구워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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