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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배짱 덕에 ‘파르시’ 만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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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문영화·김부연의 그림이 있는 불란서 키친
빨갛게 구운 토마토 속 가득 채운 고기와 채소
1996년 우리 부부는 알프스 자락에 위치한 프랑스 시골 마을 샹베리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프랑스 도착 뒤 공항에서 짐을 분실하는 바람에 신고 절차를 마치고 나니 기차 시간에 늦어버렸다. 할 수 없이 택시 기사를 붙잡고 사정을 설명하니 1000프랑(당시 환율로 15만원 정도)을 달란다. 외국인이라 바가지를 씌우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일단 깎고 보았다. “500프랑!” 남대문시장도 아니고 그리 가격을 후려치는 나도 민망했지만 결국은 기사와 내가 부른 가격의 딱 중간 지점인 750프랑에 합의를 보았다. 택시 기사는 정말 싸게 해주는 것이라는 강조와 함께 미터기를 켜고 가보겠단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요금은 1000프랑을 넘었고 톨게이트 비를 포함하면 대단히 싼 가격에 온 것이었다. 며칠이 지난 뒤 기숙사에는 프랑스 도착 첫날 택시비를 깎은 간 큰 한국 여자가 왔다고 소문이 났다.후미오는 일본 남학생인데 워낙 수줍음이 많아 수업 시간에 발표라도 시키면 귀까지 빨개진다. 그런 아이가 만물상에서 산 카세트 리코더가 고장이 나서 난감하다며 프랑스어 통역을 부탁해 왔다. 나는 불문과 출신이긴 하지만 내세울 만한 실력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심한 이 친구에게 필요한 것은 프랑스어 능력이 아니라 물건을 바꾸지 못했을 경우 대처할 한국 아줌마의 배짱이었던 것 같다. 그날 저녁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나가 보니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후미오가 접시를 들고 서 있었다. 토마토 속을 파내고 다진 고기와 채소로 속을 채워 오븐에 구워낸 요리 ‘파르시’(farcies)를 얌전히 담은 채. 토마토 꼭지가 모자를 쓴 듯한 예쁜 비주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토마토는 생으로 먹는 줄만 알았지 익혀 먹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발상의 전환이었다. 이 요리는 제법 섬세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데 남자가 했다는 게 더욱 감동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 빨갛게 잘 익은 토마토만 보면 발갛게 물든 후미오의 얼굴이 생각나 몇 알씩 사게 된다.
Tip. 파르시는 토마토뿐만 아니라 양파, 가지, 파프리카 등 속을 파낼 수 있는 채소면 무엇이든 응용할 수 있다. 익힌 토마토는 기름과 함께 섭취하면 항암 작용을 하는 리코펜 흡수율을 높이기에 올리브 오일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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