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28 09:30
수정 : 2011.04.28 10:14
|
프랑스 여인 버선발로 뛰어나올걸
|
[매거진 esc] 문영화·김부연의 그림이 있는 불란서 키친
한국입양아 엄마의 손맛 스민 ‘뵈프 부르기뇽’
파리의 겨울은 유독 습하고 길고 춥다. 그래서인지 봄의 햇살이 그렇게 고맙다. 친구 부부와 봄날 야외스케치를 간 곳은 파리 인근의 강변마을로 샛강 줄기를 따라 집들이 늘어서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젤을 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구름이 몰려오더니 비가 내린다. 마침 공사 중인 곳의 처마 밑으로 피해 한숨을 돌렸다. 옆 건물에서 아저씨가 나오더니 철거 중이라 위험하니 조심하란 말을 전하고 돌아선다. 이내 부인이 또 나오며 혹시 한국인이 아닌지 묻는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차를 한잔 대접하고 싶다며 집으로 안내한다. 부인이 들려준 이야기는 20년 전 한국 아이 두 명을 입양해 키웠는데 우리 아이가 그의 큰애 어렸을 때와 너무 비슷해 한국인일 거라고 확신을 했단다. 이후 10년을 한결같이 가족처럼 지낸 그 부부 덕에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음식 레시피도 풍부해졌다.
부인인 자닌은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 대접하는 것을 기꺼이 즐기는데 저녁식사를 함께할 사람들을 오전에 불러다 함께 장을 보고 준비하고 정원에서 음료를 마시고 놀다 식사를 한다. 그의 요리를 배울 요량으로 곁에서 조수 역을 하는 내가 “얼마나 넣어?”라고 물으면 그는 항상 “적당히!”라고 대답한다. 우리 어머니들의 레시피처럼 적당히. 도마를 거의 쓰지 않는 프랑스 가정에서는 과도만한 작은 칼로 양파며 당근을 손에 쥐고 툭툭 잘라 넣는다. 그래도 맛은 얼마나 훌륭한지. 어머니 손맛이 양념인 건 동서양이 같나 보다. 가끔 한국 요리를 하려고 칼과 도마를 꺼내 탁탁탁 치면 눈이 동그래져서 “너 요리사 출신이야?”라고 물어본다. 한국 음식 마니아인 그는 내가 요리를 하면 물어본다. “얼마나 넣어?” 나는 “적당히”라고 응수한다. 그의 요리 중 내가 잊지 못하는 음식은 쇠고기로 만든 ‘뵈프 부르기뇽’(Boeuf Bourguignon). 입양한 둘째 아이가 정체성으로 고민하고 방황할 때의 얘기를 하며 눈물짓던 그. 김치를 담아 한 통 건네면 아들이 좋아한다고 옆에 챙기는 그. 텃밭 가득, 먹지도 않을 깻잎을 심어 놓고 따가라 전화하는 그가 나는 매일 그립다.
만남의 계기가 됐던 철거된 건물은 지방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새로 짓는 중이었는데 공사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대신 친구들을 위한 집으로 용도 변경한다면서 건물에 ‘친구집’이라는 한글을 써달란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현판 글을 쓰고 있는데 산책 나온 한국인이 지나가며 속삭인다. “여기 한국 민박집인가 봐!” 누구라도 파리 인근 마을을 지나다 ‘친구집’ 현판이 보이면 문을 두드려 보시라. 그는 당신이 한국인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고 버선발로 뛰어나올 것이다.
뵈프 부르기뇽 (4인분)
재료 | 쇠고기 아롱사태 800g, 베이컨 100g, 적포도주 400cc, 당근 1개, 양파 1개, 셀러리 1대, 양송이 버섯 4개, 향신료(월계수 잎, 타임, 로즈메리 등) 조금, 버터 50g, 밀가루 1Ts, 다진 마늘 1Ts, 파슬리 조금, 소금·후추 조금씩, 치킨스톡(서양식 닭육수) 500cc
만드는 법 | 1. 쇠고기는 3cm 정도 정육면체로 큼직하게 잘라 300cc의 와인에 12시간 정도 절인다. 2. 당근과 양파는 2cm, 셀러리는 4cm로 썰고 양송이는 절반으로 자른다. 베이컨은 1cm 간격으로 길게 썬다. 3. 달군 솥에 버터를 넣어 녹인 뒤 양파가 흐물거릴 정도로 오래 볶은 다음 마늘을 볶는다. 4. 와인에 절인 쇠고기를 3에 넣고 센 불에서 볶으며 육즙을 가둔다. 5. 4에 준비된 채소와 베이컨을 모두 넣어 볶은 뒤 밀가루를 넣어 잘 섞고 와인 100cc를 붓는다. 6. 5에 모든 재료가 잠기게 치킨스톡을 붓고 향신료, 소금, 후추를 넣는다. 7. 뚜껑을 덮고 1시간30분 동안 약한 불에 뭉근히 끓인다. 8. 물이 졸아들면 나머지 간을 맞추고 파슬리를 얹어 접시에 담아낸다.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