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24 15:10
수정 : 2011.11.2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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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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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문영화·김부연의 그림이 있는 불란서 키친
겨울밤 따끈한 와인 한잔에 감기도 뚝…
산책길 보온병에 담아 가도 좋아
바야흐로 ‘뱅쇼’의 계절이 왔다. 찬 바람이 부는 계절에 잘 어울리는,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와인이다. 이 음료가 시작된 알자스가 독일과 국경을 접한 곳인지라 그쪽에선 ‘글뤼바인’이라 부른다. 따뜻한 술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는 정종과 함께 겨울이면 자주 즐기는데 환절기인 요즘이 딱 그때다. 감기 기운이 돌 때 아스피린 대신 뱅쇼 한잔이면 몸이 따뜻해지고 웬만한 감기는 뚝 떨어진다. 겨울에 등산이나 산책을 나갈 때도 보온병에 커피 대신 뱅쇼를 준비하면 짧은 휴식 시간이 행복해진다.
파리에 살다 보면 손님 맞을 일이 많다. 어떤 땐 일면식도 없는, 몇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의 부탁으로 낯선 이의 파리 가이드를 해주기도 한다. 봄여름처럼 걷기 좋은 계절이면 좋으련만 을씨년스러운 겨울이면 여행하기에 참 나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 높은 습도, 찬 기운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요상한 추위 속을 걷다 보면 구경이고 뭐고 따뜻한 내 집이 그립다. 이즈음 카페로 들어가 마시는 달콤하고 따뜻한 뱅쇼 한잔은 몸에 뜨거운 피를 다시 공급해준다. 바람 부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의 뱅쇼 한잔을 못 잊고 국제전화로 레시피를 알려달라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나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의 뱅쇼 한잔이 있다. 친구 파트리크가 자기 동네에서 벼룩시장이 열리는데 새벽부터 할 일이 많으니 도와달란다. 자동차 통행 제한 푯말이며 각자 배당받은 자리 정렬이며 할 일이 참 많더라. 그 바쁜 와중에 오지랖 넓은 이 친구는 들통을 꺼내더니 뱅쇼를 끓인다. 5리터 팩 포도주를 2개나 들이붓고 오렌지와 계피를 넣어 뭉근히 끓이는데 그 향기에 벌써 얼었던 몸이 다 녹는다. 밭일할 때 쓰는 바퀴 하나 달린 수레에 들통을 통째로 싣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소리친다. “뱅쇼가 왔어요, 뱅쇼. 어서 한잔씩들 하세요!” 책상을 펼쳐 물건 정리를 하던 사람들은 일손을 멈추고 따뜻한 와인잔을 부딪히며 담소를 나눴다.
지금도 겨울이 시작되는 요즘이면 저렴한 와인으로 뱅쇼를 준비한다. 뭉근히 끓이는 동안 집 안에 냄새가 퍼지면 그날 친구의 우렁찬 목소리가 집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듯하다. “뱅쇼가 왔어요, 뱅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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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쇼
◎ 재료 | 와인 1병, 오렌지 1개, 레몬 1개, 설탕 150g, 향신료(정향 2알, 팔각 2개, 계피 스틱 1개)
◎ 만드는 법 |
1. 오렌지와 레몬은 0.5cm 두께로 슬라이스한다. 오렌지에 정향을 박는다. 2. 냄비에 설탕을 제외한 모든 재료를 넣고 아주 약한 불에 데운다는 생각으로 30분간 뭉근히 끓인다. 60도를 넘지 않는 것이 좋은데 끓게 되면 알코올이 많이 날아간다. 3. 2를 체에 거른 뒤 설탕을 넣어 저어준다. 4. 손잡이 달린 유리잔이나 머그잔에 오렌지 슬라이스를 한개 띄운다. 설탕이 더 필요하면 함께 낸다.
Tip 1. 와인은 1만원을 넘지 않는 저렴한 것이면 충분하다.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 같은 진한 것보다는 ‘시라’ 혹은 ‘메를로’ 같은 과일 향이 풍부한 것이 더 좋다. 2. 뚜껑이 있는 주스병 같은 데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면 3~4일은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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