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23 09:40
수정 : 2011.06.2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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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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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입체마음테라피]신용카드 탓에 큰언니한테 얻어맞기까지…
결혼을 앞둔 33살 예비신부입니다. 세 자매 중 막내이고, 우리 자매는 친구 사이로 오해할 만큼 사이가 돈독해요. 그런데 얼마 전 큰언니에게 얻어맞고 충격에서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결혼 준비도 많이 도와준 언니가 말이죠. 예전 신용불량자였던 큰언니한테 제 신용카드 석장을 빌려줬죠. 일 때문에 필요하다고 해서요. 제가 결혼하면 돌려받기로 했고요. 카드대금을 연체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얼마 전 카드를 돌려달라고 했죠. 딱 부러지게 얘기한 것도 아닌데 언니는 “날 가지고 노는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더군요. 아버지도 제가 나쁘다고 하셨어요. 부모님은 큰언니를 무한신뢰하고 의지하십니다.
이틀 뒤, 다른 일을 핑계삼아 큰언니에게 연락했죠. 난 가지고 노는 게 어떤 건지 모른다,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답은 없었고요. 저녁에 집에 온 언니는 “그게 사과냐”며 또 폭풍같이 화를 냈어요. 자신을 빚쟁이 취급했다며 카드 정리해 주겠다고 욕을 퍼붓고 제 얼굴을 때리고 가버렸어요. 부모님은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겠지 하면서 가만히 계시더라고요. 그날 밤 저는 목매고 죽을 생각까지 했어요. 모두에게 충격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울고 다닙니다.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빌려주고도 욕먹는 제가 한심하더라고요. 가족들은 화해시키려 애쓰는 듯하지만 언니를 볼 자신도 없고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냥 결혼해서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제가 이기적인 건가요?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억울한 마음 풀기가 우선 > 평생을 믿고 의지했던 측근의 배신은 정말이지 삶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의 타격을 주곤 해요. 글쓴 님만 그러시는 건 아니랍니다. 믿었던 신념과 가치가 송두리째 뽑혀 나가는 느낌이죠. 지금의 님의 충격과 상황이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일단 언니가 왜 그렇게 폭발적으로 화를 내고 폭언에 폭력까지 행하는 건지 도대체 이해가 안 가시죠? 알려드릴게요. 싸우기 전부터 이미 언니의 마음속에 이런 말들이 수군댔던 겁니다. “언니씩이나 되어 가지고, 장녀 노릇도 못하고 형편없이 신불자나 되고, 너는 정말 동생이 빚쟁이 취급하고 카드 핑계로 가지고 놀아도 백번 할 말 없을 정도로 한심하다.” 그런데 차마 이런 비난을 자기가 하고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렵고, 자기를 미워하는 건 힘이 드니, 살기 위해서 애먼 동생에게 열심히 뒤집어씌우는 중인 거죠. 물론 이건 본인은 모르는 비밀.
그러나 백번 양보하고 이해한다 해도 따귀라니요. 이런 폭력은 후유증이 꽤 오래간다고요. 모욕이나 모함이 동반된 경우엔 더욱더. 그러니 마치 살이 패어서 피가 나고 뼈가 보이는 걸 치료하듯이 심리적으로 잘 다뤄주셔야 해요. ‘겨우 따귀 정도로 뭘…’ 하고 지나갔다가는 이 상처가 앞으로 남은 생을 살면서 수시로 출몰해서 님의 발목을 잡을 거예요.
하지만 이미 미움과 분노에 잡아먹힌 듯 보이는 언니에게 직접 가서 따지고 화내는 건 무의미해 보이네요. 그러나 글쓴 님의 화병도 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 언니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억울하고 분한 것을 풀어봅시다. 앞에 커다란 베개 같은 걸 두고 있는 힘껏 쥐어뜯거나 치면서 어떻게 언니가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분이 풀릴 때까지 소리지르고 따져 묻는 겁니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으면 미리 종이에 펜으로 대본을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언니에게 맞은 뺨에 대한 충분한 위로와 사과도 필요합니다. 예비 신랑님, 사랑하는 예비 신부님 앞에 두시고, 얼마나 억울하고 아프고 놀랐느냐고 진심으로 위로하면서 그 아픔이 나아지도록 곱게곱게 쓰다듬어 주세요. 한번으론 부족합니다. 매일매일 해주세요. 아시겠죠?
한지영/ 무용심리치료사·힐링모션 대표
큰언니 마음 헤아려보세요 > 먼저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원래 크고 기쁜 일을 앞두고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종종 봅니다. 결혼은 아름답고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결혼의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이기도 합니다. 결혼 준비를 도와준 큰언니에게도 스트레스가 컸겠죠. 어쩌면 아버지의 경제적 부담감을 큰언니가 지켜보면서 님에게는 이야기 못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님은 큰언니와의 갈등에 개입하지 않았던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버지가 큰언니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는 건 아닐까요? 신용불량자가 되어가는 딸을 보며 그것을 막지 못했다며 자책하고 미안해했을 수도 있습니다. 님이 신용카드를 빌려줘 큰언니에게 도움을 준 부분은 대견하게 생각하셨겠죠. 어쨌든 언니를 두둔한 부모님의 처사는 별로 지혜롭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님은 큰언니가 너무 ‘오버’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고 있고, 제가 보기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혹시 큰언니가 신불자가 되는 과정에서 매우 큰 상처를 받았던 것은 아닐까요? 자신의 이름으로 신용카드조차 만들 수 없어서 동생에게 빌려 써야 했던 심정은 어땠을까요? 미안한 마음도 말할 수 없을 만큼 컸겠죠.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동생의 결혼 준비를 적극적으로 도우려고 했을 테고요. 그런데 동생이 카드를 돌려달라 했을 때, 그것도 반복적으로 들었을 때, 어쩌면 자존심에 대단히 큰 상처를 받고 배신감을 느꼈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상처와 분노를 스스로 자제하지 못하고 폭력으로 표출한 것은 절대 잘한 일이 아니죠. 그러나 님께서도 이런 상황을 돌아보고 언니를 용서하고, 위로하고 또 사랑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 다행히도 님은 이제 결혼을 합니다. 이제 지난 일은 잊고 쿨하게 언니에게 사과하고 또 그동안의 고마움을 표현하십시오. 결국 어려울 때 아무 조건 없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밖에 없더라고요. 언니도 그 일 이후에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이번에 일어난 어려움이 새롭게 시작하는 가정에 너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세요. 님의 아름다운 결혼과 인생의 새출발을 축복하고 응원합니다.
전용관/ 연세대 교수(스포츠레저학)·<너희가 사랑을 아느냐> 저자
기분 상해도 금전관계는 꼭 정리해야> 언니와 갈등을 빚는 상황이 있었군요. 언니가 님께 ‘욕을 퍼붓고 불같이 화를 내고 뺨을 때린’ 상황, 매우 마음 아픈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다툼은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상대방 마음에 가능한 한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갖고 행하는 싸움은 건강한 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설과 폭력이 오가는 건 그야말로 악성 싸움이에요. 반드시 근절해야 할 싸움이죠. 갈등상황이라는 게 한 사람만이 전적으로 잘못해 벌어졌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언니의 행동은 분노 조절의 실패이며 타인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행동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울러 언니가 금전적으로 님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도 분명한 것 같군요. 금전 문제는 참으로 미묘한 부분입니다. 가족 간에 소송도 불사하게 하는 괴력을 가지고 있지요. 언니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만, 님께서 이 정도로 강한 불편함과 아픔을 느끼신다면 언니와의 금전관계는 반드시 정리·개선해야 합니다. 두 사람 모두 기분 좋게 정리될 거라는 기대는 접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저 현실적인 선에서 마무리짓는 방식을 택하도록 하세요. 그 과정에서 각자 기분이 상하는 부분은 불가피한 것으로, 각자 스스로 의젓하게 감당해내야 합니다.
전후 맥락이야 어찌됐건 언니와의 관계 속에서 폭력과 불평등한 금전문제를 반복하거나 개선 없이 계속 방치한다면 님께서는 ‘착취’당하는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님도 이제 성인이므로, 대인관계에서 갈등이 발생할 때 나를 보호하면서 내 의견을 건강히 주장할 수 있는 힘과 전략들을 개발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한걸음씩 실행해야겠죠. 내가 쓰러지지 않아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편, 화해는 ‘시기’가 있습니다. 내가 상대방으로 인해 입은 심적 상처, 충격이 너무 클 경우에는 우선 내 마음의 통증을 가라앉히는 데 집중하세요. 가족들에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신 뒤, 어느 정도 통증과 충격이 가라앉아 마음이 서서히 열릴 때 화해해도 늦지 않습니다.
김선희/ 임상심리전문가·김선희부부클리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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