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07 10:17
수정 : 2011.07.07 10:33
[3D 입체 마음테라피] 인정받으려는 집착 버려요
Q. 40대 초반 전업주부입니다. 남편·아이를 중심으로 생활하지만, 남들 눈에는 폭넓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나 봅니다. 동네에서 길 가다가도 두세명은 꼭 아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단지 아는 것뿐입니다. 인사 건네고 소소한 이야기일 뿐 깊은 정까지 나눌 이들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도 정말 아는 사람 많다는 말 들을 때마다 화가 납니다. 1년에 한두번 대학동창 모임에서도 연락책을 맡고 있습니다. 다른 친구가 맡았으면 좋겠다고 해봤지만, 누구와도 잘 이야기하는 제가 낫다며 계속하라 하더군요. 그런데 동창들은 제가 연락 안 하면 전화 한 통 없습니다. 한 해는 집에 일이 있어서 도저히 연락할 여유가 없다고 했는데도 무슨 일이냐는 전화·문자 한 통 없더군요. 의무감 같은 것에 사로잡혀 연락책 하는 제가 가끔 한심합니다.
친정 식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유있고 재미있게 지낼 땐 전화 없습니다. 찾아오지도 않고요. 어려운 일, 물어볼 일 있으면 저를 찾습니다. 저한테 어떤 문제가 있어 이러는지 정말 답답하고 화나고 슬픕니다. 적지도 않은 나이에 사람 때문에 상처받는 것도 기막힙니다. 저도 보고 싶어 전화했다, 보고 싶은데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소리 좀 듣고 싶습니다. 이렇게 폭넓고 얕은 인간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나요? 이마저도 없으면 주변에 남편과 아이밖에 안 남으니 유지해야 하는 게 맞는 건가요?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자신을 잃어버리진 않았나요? →
항상 자기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삶의 태도를 갖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주변 분들도 님의 헌신과 관계 지속을 위한 노력에 많이 고마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요.
저 역시 님과 같은 역할을 하는 친구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그 친구한테 전화했던 이유들은 대부분 다른 친구 연락처를 물어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친구에게 고마워하지 않거나 존재가치를 헐뜯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마 그 친구는 동기들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일 거예요. 평소에는 잘 모르다가, 막상 그 친구가 없어지면 가치와 고마움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연 안에서 한두 가지 좋지 않은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피해의식입니다. 남들이 님을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 원인이 혹시 자신을 잃어버린 데 있지는 않은지요. 한국에서 어머니는 ‘○○엄마’로 불리고, 남편의 ‘사모님’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지요. 스스로 존재하는 ‘나’는 없어져버린 거죠. 이런 경우 자신의 가치를 낮추고 자칫 낮은 자존감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님만의 일을 찾는 게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일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파트타임 계약직이나,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커피 바리스타 과정을 배우는 건 어떨까요?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남편과 아이를 위해 투자했다면, 이제는 님의 시간 가운데 최소 30%는 본인에게 투자하세요.
님은 또 현재 얕은 인간관계에 싫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모든 관계가 깊다면, 님은 더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그런 관계를 갖고 유지하려면 아마 엄청난 스트레스에 우리는 미쳐버릴 거예요. 지금의 관계들을 유지하세요. 그러나 좀더 깊이있는 관계로 만들어 가세요. 님의 더욱 발전한 모습을 격려하고 응원합니다.
연세대 교수(스포츠레저학)·<너희가 사랑을 아느냐> 저자
의무감의 원천, 불안한 그 무엇은 →
많이 지친 것 같네요. 대인관계에서 나오는 만성피로에 눌려 있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아는 사람은 무척 많지만 ‘깊은 정까지 나눌, 희로애락을 함께할’ 사람은 없는 관계의 공허함, 내가 타인에게 보내는 행동에 견줘 돌아오는 반응과 보답이 모자란다 느껴지는 ‘관계 불균형’도 뚜렷하네요. 전체적으로 대인관계의 질적 불만족도가 높은 상태로, 관계 무가치감이 엄습한 듯합니다.
우선 지속적으로 연락책을 맡은 부분부터 점검해봅시다. 지금처럼 지치고 싫은 느낌이 뚜렷한데도 연락책 노릇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유를, 이제는 마음속을 더듬거리면서라도 찾아봐야 합니다. 연락책을 맡다 보면, 많은 이의 관심과 인정도 받게 되고 대인 통제감도 느낄 수 있지만, 피곤함은 물론 사람들 호응이 미지근할 경우 섭섭함과 분노도 쌓이게 되죠. 노력만큼 보상을 기대하는 사람의 심리 때문이죠. 하기 싫은 연락책을 계속 하면서 혹시 내면의 ‘불안한 무엇’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내면의 불안과 결핍 속에 열쇠가 있습니다.
자, 그 열쇠를 어느 정도 찾으신 뒤에는 전략적 행동을 해야 합니다. ‘가지치기’라는 선택행동이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폭넓은 대인관계(양적 차원)보다는 깊이있는 소규모의 알찬 대인관계(질적 차원)가 필요합니다. 나와 주파수가 잘 맞는 사람을 알아볼 수도 있어야 하고요. 과잉에너지를 써야 하는 방전시키는 관계라면 과감히 접을 필요가 있어요. 나에게 진정 의미있고 중요한 관계 중심으로 가지치기하는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이 결단은 사람들을 끊어내는 게 아니라 대인관계를 질적 차원에서 유연하게 관리하고 적응하는 태도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수많은 사랑이 아니라 초점이 비교적 정확히 맞는, 알맞은, 깊이있는 사랑이지요. 앨빈 토플러가 “진정한 대인관계 능력이란 대인관계를 끊는 능력이다”라고 말했죠. 나에게 소모감을 불러일으키는 관계가 아닌 몇 사람과 진정한 마음교류가 이루어지는 관계를 하나하나 선택해 만들어나가길 바랍니다. 함께 삶의 정취를 느끼며 충전과 휴식을 상호제공하는 관계, 생명력 넘치는 관계 말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김선희부부클리닉 대표
긴장 풀고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
‘사람을 제대로 깊게 잘 만나고 싶다. 진심 어린 관계를 맺고 싶다.’ 님의 글 속에서 이런 마음을 읽을 수 있어 깊게 공감하게 됩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과 피상적인 관계를 맺거나 서로 필요에 의해서 만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읽히네요. 사람들을 진정성을 가지고 깊게 만나고 싶다는 열망은 나쁜 게 아니라, 오히려 생에 대한 열정이자 욕심에 가까울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모습과 실제 자기 자신이 다른 데 대한 답답함에 대해서도 얘기하셨네요. 다들 어쩌면 ‘저 사람은 나 말고도 연락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내가 연락해도 별로 반기지 않을 거야’라고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사람들은 사적인 일로 편하게 님에게 연락하지 않는 걸까요? 어쩌면 그들도 님에게 와서 닿을 구실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는지요.
자, 언제나 관계는 오늘부터 새로 시작입니다. 영원히 좋은 관계도 없고, 모든 관계란 매 순간 갱신되는 그 무엇입니다. 이해관계를 배제한 ‘친구’와 같은 정서적 유대관계는 더욱 가꾸고 공들여야 유지되는 것이죠.
그러니 새로 시작해봅시다. 다음번에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때가 기회입니다. 같이 있는 순간에 서로 편안함과 호감을 공유해야, 떨어져 있을 때도 생각나고 문자 연락이라도 한번 하게 되겠죠? 호감 전에 중요한 것은 ‘배타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너를 싫어하지 않아. 나는 너를 평가하지 않아’라는 메시지를 몸에서 몸으로 전달하는 것이 정서적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죠. 그러니 사람들 안에서 일단 불편해하지 않고, 내 방에 있다고 상상하면서 편안하게 있어보는 몸 차원의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 편안함과 행복은 불필요한 긴장을 줄여주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어긋남 없는 소통과 사귐을 가능하게 하겠죠. 어깨 위 긴장을 내려두고, 길고 평화로운 호흡과 함께 몸을 이완시키고 사람들 안에 님 그 자체로 있어보는 겁니다. 굳이 어떤 말을 하거나 어떤 역할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몸과 몸 사이의 친교로부터 관계가 맺어질 수 있도록 기다리고 지켜봐주세요. 어떤 이에겐 숨쉬기만큼 당연하고 쉬운 일이 다른 이에게는 평생의 과업이자 화두일 수 있습니다. 님의 새로운 성장을 응원합니다.
무용심리치료사·힐링모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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