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3D 입체 마음테라피
남편 직장 때문에 러시아에 사는 12년차 부부입니다. 11살, 8살 아이도 있어요. 올봄부터였던가, 업무상 접대를 해야 하는 남편이 주말 저녁마다 나가 귀가시간이 늦어지더니 얼마 전에는 아침 7시에 들어왔어요. 말다툼도 잦았지만 나아지진 않았죠. 답답한 마음에 지난달에는 아이들과 영국 친구집에 가서 열흘 동안 여행을 했어요. 돌아온 집안 분위기가 뭔가 낯설더군요. 평소 게으른 남편이 집을 깨끗이 정리해 놨네요. 누가 왔었냐고 물으니 아무도 안 왔다 하고요.
하지만 식탁 의자에 굵고 검은 긴 생머리 두 가닥….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혹시나 싶어 2층 부부침실에 갔는데 침대 밑 카펫에서 식탁 의자에서 본 머리카락과 인조눈썹을 주웠어요. 아이들 재워 놓고 남편에게 물었죠. 태연하게 자기도 모른다네요. 온몸을 떨며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보여줘도 자긴 모른대요. 아무런 대답은 않고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뿐이네요. 시간이 지난 지금, 마음은 많이 가라앉았지만 집안 곳곳에서 나오는 긴 머리카락이 제 속을 긁네요. 오늘은 콘돔 포장까지 나왔습니다. 여자가 제 컴퓨터에서 이메일을 확인했나 봐요. 남편 몰래, 여자와 메일을 주고받고 페이스북을 통해 사진과 이름·나이 등을 알게 됐어요. 성매매 여성이더군요. 남편 아이팟 주소록에도 여자 휴대전화 번호가 있었습니다. 남편을 다그쳐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야 하나요, 아니면 가슴에 묻고 잊어야 하나요? 아님 헤어져야 하나요? 너무너무 힘듭니다.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마음 비우고 ‘불편한 진실’에 다가설 때 →
힐러리님께…. 이렇게 부르고 싶네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를 하셨군요. ‘남편의 거짓말’을 듣자니 궁금해서 죽을 것 같고, ‘남편의 진실’을 듣자니 두려워서 죽을 것 같고. ‘마음 편한 거짓말’과 ‘마음 불편한 진실’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더 나을까요?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살아서 지옥을 맛보는 것, 그게 바로 배우자의 외도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은 초롱초롱하기만 한데, 먼 타향에서 힐러리님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울지요. 심리학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지만, 인간은 정말 알 수 없다는 것이 제 솔직한 결론입니다. 찰스 왕세자는 왜 우아한 다이애나비를 두고 커밀라와 바람이 났을까요? 톰 크루즈는 또 왜 니콜 키드먼 같은 절세미인을 두고 바람이 났을까요? 클린턴은 말할 것도 없고, 타이거 우즈는 늘씬한 백인 미녀 아내를 두고 나이트클럽 종업원과 바람이 났지요?
마음을 비우세요. 남편에게 바람피웠느냐고 하면 아마 아니라고 펄쩍 뛸 겁니다. 어떤 남자들은 술집 종업원이나 성매매 여성과 잠자리를 하는 것 자체를 ‘외도’가 아니라고 굳게 믿거든요. 그럴 경우 누구든 나 아닌 어떤 여자하고도 단 한번이라도 잠자리를 했다면 ‘외도’라고 굳게 믿는 아내와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일단 외도의 심리적 기제를 이해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외도는 일종의 ‘불만’, ‘권태’의 표현인 경우가 많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핵심 감정은 ‘분노’인 경우가 많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외도를 함으로써 자신의 배우자를 간접적으로 공격하는, 즉 수동 공격하고 있는 셈이지만, 실은 좀더 깊이 들어가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화가 난 경우도 때론 있지요. 남편을 이해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서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시점이 됐다고, 이 사건은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이제 두 분이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허심탄회한 말은 거짓말보다 덜 상처가 됩니다. 남편에게 그 점을 분명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달콤한 진실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해 달라고.
바닥을 치고 올라온다는 말이 있죠. 지금 힐러리님의 마음은, 최악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러나 넘어진 곳이 바로 일어서는 지점이라는 것. 이 말씀 꼭 드리고 싶네요.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상담심리학)·한국영상영화치료학회장
분노 다스리며, 우선 사과를 받으세요 →
흔히 육아는 여성의 본능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섹스는 남성의 본능이라는 말도 하지요. 그러나 전자는 여성을 가정에 묶어두려는 용도로, 후자는 남성의 외도를 정당화하는 밑바탕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사실 육아와 섹스가 각각 성별에 따라서 다르게 특화되는지 검증되지도 않았지요. 그래서 부부 사이의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도 우린 기존에 떠도는 이야기가 아니라 명백한 사실에 입각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긴 머리카락이 나왔고 인조눈썹이 나왔습니다. 사건은 터졌고 확신도, 물증도 있습니다. 심장이 떨리고 눈에 힘이 들어가고 가슴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흘러나오면서 분노와 슬픔이 치밀 겁니다. 남편에게 배신당했다는 심정 때문에 말이죠. 그런데 그 감정의 후폭풍에 너무 휘말리면 현실을 그르치게 됩니다. 싸움에서 이기려면 분노를 키우는 것보다 다스리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분노라는 것은 마구 휘두르는 칼과 같아서 에너지를 키우지만 방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거든요.
남편과의 사이에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 ‘사과를 받든지, 이대로 혼자 가슴에 담아두고 살든지, 헤어지든지’라고 쓰셨습니다. 이미 본인이 원하는 최적의 상황을 가장 처음에 썼습니다. 자, 그럼 이제 사과를 받으세요. 사과를 받으려면 남편과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할 겁니다. 때론 밥상을 뒤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야 할 겁니다. 그저 그때를 벗어나려고 하는 사과를 하려고 할 테니까요. 반성을 받아내려면 무엇보다 본인도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아니 있습니다. 이 갈등의 ‘트리거’(방아쇠)는 남편이 작동시켰지만, 탄알이 약실에 장전되기까지 12년의 결혼생활 동안 본인도 일정부분 일조를 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부부니까요. 아마 이 부분이 가장 힘드실 겁니다.
첫째로 든 반성과 사과를 못 받는다면… 일단 그 생각은 안 해도 좋습니다. 지금 이 싸움은 모든 것을 건 싸움이고 그 이후는 이후에 생각하면 되니까요.
김남훈 프로레슬러·<청춘매뉴얼제작소> 저자
해답은 함께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
열흘간의 여행을 어떻게 보내셨나요? 권태기를 이겨내기 위해 여행이 자신을 새롭게 바꿔주길 바랐겠지만, 정작 문제를 같이 헤쳐나가야 할 상대에겐 혼자만의 열흘을 주셨군요. 사연만 보면 그 기간에 남편에겐 정황상 혼외정사는 최소한(?) 있었던 듯하고 이를 증명할 수 있다는 주인공의 심정도 충분히 느껴집니다. 여행 전에 이미 상대의 외도를 걱정한 듯한데, 홀로 열흘을 보낼 남편에게 어떤 기대를 하셨는지요? 결국 돌아와 보니 예상대로라는 실망감만 확인한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그 열흘 동안 남편의 심정은 어땠을지 생각해 봅시다.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잦은 말다툼으로 지쳐갈 무렵이었으니 해방감, 외로움, 욕구 등이 뒤섞였을 듯한데요. 남편은 솔직하지 못하고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것 같지만, 주인공의 추측이 맞다면 그래도 지금 남편의 미안하단 말은 다행히 진심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잘못을 시인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면 용서하고 이 권태기를 같이 해결해 나가고 싶은 건지 자신에게 먼저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진실을 확인하면 관계가 끝날 것이란 결론이 예상된다면 부부 모두 관계 개선에 대한 노력은 못할 테니까요.
권태기는 흔히 겪게 되는 과정이지만 실제 고통을 겪는 동안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사람이 여전히 날 사랑하고 있을까?’란 불안감과 이 문제에서 상대의 잘못이 무엇일지에 대한 생각에 싸움이 되어버리기 일쑤고 결국 포기하는 심정으로 각자 밖에서 자아든 욕구든 채워보려는 시도를 하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각자 따로 해답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이제라도 두 분이 권태기에 느꼈던 솔직한 자신의 감정과 불만을 얘기하고 서로 이를 개선하고 싶어한다는 바람을 확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 뒤로 신뢰회복이 중요하다는 점을 공감하고 이를 위해 잘못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반성, 진심 어린 사과를 하도록 다시 한번 요구해보시길 바랍니다.
소기윤 정신과 전문의·미소정신과 원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