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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양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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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3D 입체 마음테라피|사표 또는 적응…결정은 냉철하게
직장생활 2년째입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15년째 근무중인 분인데, 직원 6명과 모두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한 직원도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로 그만뒀고, 그 자리에 제가 일하게 됐습니다. 상사는 본인 스스로 편집증이 있다고 말합니다. 일할 땐 완벽주의자인데, 대화를 시작하면 일방적으로 1시간은 기본이고 2~3시간 혼자 떠듭니다. 여러차례 요점만 말씀해 달라고 했죠. 그러면 하극상이라고 합니다. 더구나 본인 의견에 반대라도 하게 되면 분노가 아주 극에 달합니다. 그 뒤로 전 일방적으로 듣기만 할 수밖에 없었는데, 또 말을 안 시킨다고 본인을 무시하는 거라고 난리를 치네요.
전 그만두겠다고 사직서를 냈습니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이 참으라고 붙잡고 사표는 아직 수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상사와의 대화 자체가 너무 힘이 듭니다. 분노로 가득 차 있어서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너무 힘이 듭니다.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자기애적 상사 대처법은 초연해지기 →
상사가 감정 조절과 대인관계에 뚜렷한 어려움이 있는, 더 나아가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편집증, 완벽주의, 2~3시간 혼자 이야기하기 등은 외부요인보다는 심리구조 및 인격과 관련이 깊죠.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나 타인에게 공감하는 능력에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을 때 가장 바람직한 대응은 적절히 거리를 두면서 나 자신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상대가 가족이거나 업무속성상 거리 두기 어려운 직장 동료일 경우 문제는 복잡해지죠. 첫째, 이 정도로 타인을 불편하고 힘겹게 하는 성격양상은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사자에게 벼락 맞는 계기가 생겨 무엇인가 깨닫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면 약간의 유의미한 변화는 있을 수 있겠지만 쉬이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님께서 상사와 잘 지내기 위해 행하는 노력들은 아마 그다지 소용이 없을 거예요.
힘을 빼세요. 이런 식의 자기애적 상사를 대하는 핵심적 방법은 자신의 자아를 뛰어넘어 초연해지는 것입니다. 상사에 대한 기대 수준을 과감히 줄이고 스스로 초연해지도록 관점을 이동하세요. 상사가 나를 공격하거나 침해, 착취하려 할 때 어렵지만 분명하고 현명하게 선을 그을 수도 있어야 하고요. 둘째, 사직서를 쓸 만큼 힘든 직장생활이라면 주변인의 의견에 끌려가실 게 아니라 책임감을 기반으로 한 과감하고 전면적인 심사숙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만일 직장을 계속 다니겠다고 결심하셨다면 님께서도 상사와의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태도 변화를 꾀하여야 합니다. 결코 상사보다 빛을 발하지 말 것, 상사의 능력, 수치심이나 자만심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말 것, 합리적 관계에 대한 기대를 접을 것과 같이 나를 보호하고 내 회사생활이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한 지혜로운 행동이 요구됩니다.
왜 그래야 하냐고요? 님께서 이 직장을 어쨌든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선택하셨다면 노력하셔야 하고 그 노력을 기울이는 게 억울하다면 직장을 변경하는 방향의 결단을 행하는 것이 성숙한 책임의식이겠지요. 셋째, 어찌하였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나 자신의 심리적 취약성은 혹시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철저한 자기점검을 하는 기회를 마련하셔야 합니다.
임상심리전문가·김선희부부클리닉 대표
기한 안에 방안 찾고 결단 과감히 →
스스로 진단명을 알고 있는 심리적 질환자들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위의 짧은 글에서도 잘 볼 수 있듯 ‘편집증’이라면 피해의식, 의심, 분노 등이 주된 특징이고, 만약 지속적으로 현실적으로 유의미한 관계 맺기에 실패한다면 낮은 비율이지만 망상, 환청 등의 정신분열로 발전해 가기도 하는 정신장애입니다. 가시적으로 신체의 장애가 확인되는 신체장애인들에 대해서 주변인들은 비교적 마음의 갈등 없이 도움을 주거나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신적 장애인의 경우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사람이 내 삶의 장면에 뛰어들어와 권력을 등에 업고 나의 인격을 모독하는 등 심각한 피해를 주고 있으니 어쩌면 글쓴 님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지요. 마음 같아서는 그 직장 상사와 그나마 말이 통하는 누군가를 통해 진지하게 정신과 초기 치료 혹은 심리상담을 권유해야겠지만, 그 정도의 애정과 의욕을 가지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판단됩니다. 일단은 이미 3년 동안 심각한 수준으로 글쓴 님의 몸에 누적되어 버린 스트레스를 술, 담배 등을 제외한 다른 방식으로 치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퇴사를 할지와 말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해지는 시점입니다. 동료들이 퇴사를 말리는 이유가 타당한지 냉정하게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현 직장이 내 운명의 직장이거나, 이직이 심각하게 어렵다는 등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으신지요? 단순히 동료들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와 같은 핵심적이지 않은 이유라면 사직을 권유드립니다. 아니라면 스스로 기한을 정하고 타임아웃 방식의 계약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3개월 동안 나름대로 방안을 모색해보고, 그 뒤에도 지금과 비슷한 정도의 고통과 피해가 계속되고 있다면 주저 없이 그만두겠다는 등의 플랜이 필요합니다.
계속 다니겠다고 선택하신 순간 이제는 말하자면 일종의 게임이 시작되게 되는데요. 직장에서 더 많은 만족감과 쾌감을 얻어내고, 스트레스를 덜 받는 자가 승리하는 게임이 되겠습니다. 어떻게 그 상사는 그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15년이라는 세월을 견디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을까요? 바로 앞에 서술한 게임의 승자이기 때문이죠.
타인들을 괴롭히면서 얻는 쾌감과 그것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 이제 글쓴 님이 지금껏 봐온 반복적인 상대의 예측가능한 반응들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를 배경으로 다양한 대응을 시도해보고, 연민과 지혜를 바탕으로 새로운 게임의 판을 짜봐야 할 때입니다.
무용심리치료사·힐링모션 대표
대안 없다면 관계 개선 시도해봐야 →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일하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성공적인 삶을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님의 경우와 같이 직장 상사가 편집증이나 피해망상증이 있다면, 직장생활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겠지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재활센터에서 치료사로 일할 때였는데요. 상사는 저보다 키가 20㎝ 정도 작은 단신의 남자였습니다. 그는 소문이 날 정도로 젊은 여직원이나 인턴에게는 유난히 잘 대해 주면서, 저희 대학원생들에게는 사사건건 따지고 시비를 걸곤 했지요. 하루는 욕을 하며 저를 괴롭히는데, 정말 거의 주먹으로 한대 칠 뻔했습니다. 그러다 크리스마스가 됐고, 저는 동료 직원들에게 카드와 선물을 줬답니다. 그 친구는 별로 주고 싶지 않았지만, 정성스럽게 카드에 ‘당신과 함께 일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을 담아 준 기억이 납니다. 그 상사는 조금 더 친절해지더니, 그 뒤로는 매우 잘해주더군요.
만약에 제가 한대 때렸다면, 혹은 학위를 그만뒀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님 역시 합리적으로 생각해보고 결정하면 어떨까요. 일단 우리가 하는 일은 재미가 있어야 하고, 또 의미(보람)가 있어야 합니다. 일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다면, 거기에다 상사마저 님을 힘들게 한다면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지요. 그런데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지요. 혹시 일을 그만두면, 다른 곳에서 비슷한 대우를 해주는 직장을 찾을 가능성은 얼마나 있나요?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와는 매우 잘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만약 상사와의 관계는 좋지 않지만 다른 동료와의 관계는 좋다면, 조금 더 참으며 상사와의 관계 개선을 추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상사는 스스로 열등감에 시달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거꾸로, 업무적으로는 그분을 인정해 주고 격려하면서 관계의 개선을 추구해 볼 수도 있겠지요. 건투를 빕니다.
연세대 교수(스포츠레저학)·<너희가 사랑을 아느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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