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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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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이 끝난 뒤도 생각해야
Q. 초등학교 3학년 아들과 7살 딸을 둔 엄마입니다. 첫아이를 낳고부터 쭉 집에서 아이를 키우다 둘째가 15개월 되던 때에 공무원시험 준비를 시작해 두 아이를 모두 친정엄마한테 10개월간 맡기고 공부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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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입체 마음테라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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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고 밑 마음 들여다보세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고민하죠. 어떤 선택이 최선일지, 어떤 선택이 내 삶을 더 행복하게 해줄지 알 수 없으니까요. <슬라이딩 도어즈>나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들 역시 우리처럼 늘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초이스님. 자녀가 두명이나 있는 상황에서 뒤늦게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합격하신 만큼 뿌듯하셨겠습니다. 직장생활이나 자아실현에 대한 큰 기대감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고요. 제가 보기에 초이스님은 지적이면서도 심리적 자산이 많은 분인 것 같습니다. 동시에 생활이나 직장 면에서도 빈틈이 없고 싶어 하시죠. 아이들 옆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도 있고요. 과연 지금의 문제가 ‘아이들과 놀아주며 학교도 데려다 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같이 산책도 하는 그런 시간’과 ‘새 아파트’ 사이의 선택일까요? 멈춰서서 진심을 다해 생각해 보세요. 왜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을 등지고 여기의 삶에서 벗어나려고 할까? 공무원이란 일에서 벗어나고 싶으신 걸까요. 남편과 잠시 떨어져 있고 싶으신가요. 둘째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지우고 싶기 때문일까요. 의식에서 떠오르는 ‘~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이 아니라 지금 생각의 밑면에 있는 초이스님의 밑 마음과 ‘직면’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에 있든 엄마 노릇은 평생 계속해야 하는 삶의 일부분 같은 것입니다.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삶의 일부분요. 생각을 뒤집어 보세요. 모든 시간을 엄마와 함께 있다가 다시 공무원직에 복귀했을 때, 아이들이 겪는 혼란은 어떡하죠? 지금 누구와 함께 살 것이며,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이냐는 삶의 방향성에 대한 선택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초이스님이 생각하는 이상적 삶이란 것은 도시에서도 지방에서도 가능하며, 그 어느 곳에서일지라도 삶과 일을 조화시키는 문제 해결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오직 스스로 하셔야, 그 선택에 충분한 의미가 생깁니다. 영화 <선택>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선택이란 하나를 고르는 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하나를 버리는 것임을 이제서야 알았다.” 버림의 미학. 지금 초이스님의 선택에 필요한 것은 바로 마음을 비우고 자신의 밑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닐까요.
엄마도 휴식과 재충전 필요해요→ 아이들과의 시골생활을 그리는 마음에서 그동안 주인공이 겪어오신 고단한 삶이 느껴집니다. 엄마의 손길이 더 절실했을 시기에 시험 준비와 직장생활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해야만 했던 게 두고두고 아이들에게 미안함으로 남으신 것 같고요. 그래도 아이들이 현재 잘 자라주었고 정서적인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휴직과 시골행이란 결정까지 하지 않아도 좋을 듯합니다. 주인공께서 가지고 있는 그 미안한 마음이 이미 그동안 다양한 방법을 통해 아이들에게 있을 수도 있는 부족감을 채우려는 노력을 하게 했을 테니까요. 그러나 엄마의 어쩔 수 없었던 빈자리로 인해 현재 아이들이 여러모로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된다면, 육아휴직이 아니라 더한 것을 해서라도 서로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만드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그 필요성과 방법들을 고민해 보시라는 점인데요. 육아휴직이 꼭 필요하냐부터, 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것까지 아이들에게 좀더 도움이 되도록 초점을 맞추어야 가장 만족도도 높고 후회도 적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골에서의 생활은 언뜻 평화롭고 여유로워 좋아 보이지만 초등학교 4학년, 1학년이 될 아이들의 2년간의 생활이 될 것이란 점과 엄마가 직장에 복귀한 뒤를 염두에 두었을 때도 과연 아이들에게 좋을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오히려 휴직을 하되 현 위치에서 아이들이 겪고 있는 생활 속으로 엄마가 다가가서 좀더 관심있게 들여다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신감을 키워나갈 수 있는 개입을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도움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기에도 다음의 중요한 고려사항을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데요. 바로 이 과정을 다루어 나가는 엄마 자신의 컨디션이 어떠하냐는 것입니다. 그동안의 고단한 삶으로 주인공 스스로가 많이 지쳐 있다면 2년의 시간 동안 엄마로서도 휴식과 재충전의 기회가 필요할 것이고 그것이 아이들의 정서적인 안정에도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지금 고려중이신 시골생활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겠지요.
인생, 그것은 불확실성의 바다→ 사연을 보내주신 분은 아마도 강철 같은 의지와 고드름 같은 결정능력을 갖춘 분으로 보입니다. 아니 틀림없이 그런 분이시겠지요. 단기간에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것도 그렇고 자녀가 있는 상태에서의 그 분투기는 단 두 줄로 서술하셨지만, 그 행간에 숨어 있을 고난의 나날을 생각하면 제가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공무원 합격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선택했던 몇몇 결정들은 아마 우리가 흔히 보던 ‘가정주부의 결정’과는 많이 달랐던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 다른 결정에 대한 부담감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겠지요. 그래서 여쭙고 싶습니다. 시골행이라는 선택에 대해서 말이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인 거리를 좁히고 싶다는 것은 그 한 줄로만 놓고 보면 별다른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마치 미인대회에서 우승한 여성이 인터뷰에서 세계 평화와 굶주린 어린이를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하지만 그 뒷면을 돌아가서 보면, 미인대회 우승자는 진정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했다기보다는 장내 사회자와 관객 그리고 시청자들이 당연한 대답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에게도 크게 모자라지 않는 모범답안을 읊조릴 뿐입니다. 행여나 사연을 보내주신 분께서도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심리와 주변의 평가까지 칵테일처럼 뒤섞여서 내린 결정은 아닐는지요. 휴직기간 이후에는 또 어떻게 하실는지요. 정말 자신이 그것을 원하는지 생각을 다시 해보세요. 좋은 엄마의 기준도 바뀔 수 있습니다. 밥을 해주고 옷을 챙겨주는 가사의 문제는 타인의 노동으로 대체하고 삶의 즐거움과 어려움에 대한 친절한 상담역을 하는 엄마가 좋은 엄마가 될 수도 있지요. 물론 어머니와 자녀가 서로 공감대를 갖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결대로 살아가는 게 제일 속 편합니다. 때론 그게 주변의 어떤 ‘스탠더드’와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도요. 님은 상어 같은 사람입니다. 헤엄치지 않으면 물속에서도 빠져 죽어요. 계속 움직여야 하는 상어. 그 상어는 오늘도 불확실성의 바다를 헤엄쳐갑니다. 그게 인생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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