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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양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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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3D 입체 마음테라피
수시로 엄습하는 걱정과 불안…전쟁터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30대 초반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저는 늘 불안합니다. 가족과 연락이 안 되면 무슨 사고가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하고, 경제위기가 온다는 뉴스에 당장 내 삶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고, 잠 안 오는 밤에는 일어나지도 않은 온갖 걱정들로 뒤척이곤 합니다. 사고가 날까봐 꼭 필요한 경우 아니면 운전도 잘 안 합니다. 7년 전 갑작스런 사고로 아빠가 돌아가신 것도 영향이 있겠죠.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놀이터에서 놀다가 악기세트를 잃어버렸는데 그날 밤 내내 ‘우리 거지 되는 거 아닌가’라며 말도 안 되는 걱정을 하며 울기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세상이 안정적인 곳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듯해요.
이유를 생각해보면 가장 큰 원인은 엄마였던 것 같아요. 아주 어렵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엄마는 늘 돈 걱정을 하셨고 저희에게 안정감을 주는 양육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엄마에게 포근히 안겨본 기억이 없고, 엄마에겐 삶 자체가 그리고 우리를 키우는 일이 즐겁기보다는 삶의 고단한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 불안감이 맏딸인 제게 고스란히 전해진 듯합니다. 저와 달리 제 동생들은 사고 싶은 것도 잘 사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며 삽니다. 지금 제 직장도 안정적인 편이지만, 늘 긴장 상태로 어떤 일이 있으면 며칠 전부터 걱정하면서 늘 나쁜 경우를 생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저 역시 삶이 늘 전쟁터에 나와 있는 기분입니다. 그냥 쉬고 있으면 왠지 불편해서 뭐라도 읽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보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다른 사람의 실수에도 너그럽지 못하고 아이들에겐 짜증낼 때가 많습니다. 종교가 있으면 나을까 싶어 노력했지만 감정보단 생각이 앞서서 믿음도 생기지 않더라고요. 마음의 평안을 찾고 싶습니다. 고민상담은 gomin@hani.co.kr
신체 변화 일지를 써보세요→
오랜 시간을 불안, 불안정, 걱정 안에서 생활하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정신적·신체적 에너지를 많이 소모시키는 일인지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글 쓴 님이 성찰하신 것과 같이 어머니로부터 배운 방식으로 스스로 안전을 갈구하는 방법이겠지요. 아이러니하게도 안전과 평화에의 욕구가 불안의 가장 큰 동력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스스로 판단과 생각이 비합리적이고 지나치다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 또렷하게 알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경우에 스스로 상태에 대해 알고 있다 하여, ‘병식’(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있다는 진단을 받으실 터인데, 물론 비교적 건강한 면이고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본인은 자괴감이 더 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한 첫 단추인 ‘치료자와의 동맹’이 가능하다는 면에서는 매우 훌륭한 자원이라고 할 수 있겠죠. 스스로 치료자 혹은 상담가와 동맹을 맺고 자신을 구하셔야 합니다.
불안은 몸으로 옵니다. 처음 발단은 인지적인 상황이었더라도, 그 불안을 내 안에서 작동시키고 유지시키는 것은 바로 ‘몸’입니다. 자 이제, 스스로 불안 상태와 덜 불안한 상태를 신체적인 차원에서 구별해봐야 할 차례입니다. 이제 어떤 이유로든 불안 상태에 빠지게 되면 그 생각과 감정은 그대로 두고, ‘몸 일지’를 써보시기를 권합니다. 몸이 어떤 부분이 어떤 느낌이 들고, 마치 무엇과 같은 느낌이 신체적으로 느껴지는지를 있는 그대로 관찰해서 글로 쓰시는 겁니다. 예를 들면, ‘경미하게 식은땀이 나고, 등 쪽이 잔뜩 긴장되어서 어깨가 올라가 있고, 숨이 가빠지고, 머리 왼쪽에 두통이 느껴지고, 마치 발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과 같은 방식으로 최대한 상세하게 써보세요. 그리고 비교적 덜 불안한 상태에서는 어떤지 같은 방식으로 써보세요. 글 쓴 님은 현재 한가지 신체 상태에 매우 고착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극과 극의 신체 상태를 기회가 되는 대로 일부러 연습해보시고, 이쪽 상태에 있었다가 다른 상태로 옮겨가는 등의 연습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합니다.
무용심리치료사·힐링모션 대표
책임감과 불안을 주변과 나눠보길→
“대체로 사람의 마음은 볼 수 있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더 혼란스러워진다”고 율리우스 카이사르(줄리어스 시저)가 말했습니다. 바로 불안이 그런 것이죠. 불안은 안정감(security)이 결핍된 상태로, 사소한 단서에도 과잉 응급반응을 하게 되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돼.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야’라는 부정적 예견으로 현재 생활이 방해를 받습니다.
‘원치 않는 큰일이 벌어졌을 때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도 불안을 절박하게 부채질합니다. 불안 성향은 기질적으로 타고난 부분에, 양육환경(부모의 기질, 부모-자녀 관계), 삶의 경험들이 더해지면서 성격화되곤 하죠. 님의 광범위한 불안감이 해소, 완화되는 데에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경험,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마음의 상처와 두려움이 얼마나 충분히 드러나고 재정비되느냐가 관건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갑작스런 분리, 이별도 깊이 다루어질 필요가 있고요.
아울러 장녀로서 책임감 부분인데요. 부모가 심리적으로 힘겨워 보일 때 자녀는 그런 부모를 보호하고 싶어지고 부모에게 걱정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모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자녀의 원초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혼자 잘 알아서 해야 한다는 태도를 갖게 되는데, 그 압박감은 어린아이를 조숙하게 만듭니다. 그 아이는 마음이 힘들어도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게 되고 혼자 이리저리 참고 참으며 성장합니다. 모든 걸 혼자 알아서 감당해내는 고독한 책임감은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고 매사 미리 손써야 한다는 강박적 불안감과도 쌍둥이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이제 그 과도한 짐을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책임감과 불안을 ‘누군가’와 나누면서 그 얽매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세요. 인생에는 숙명적인 부분이 많다는 것, 막을 수 없는 일들도 있다는 것, 원치 않는 일이 벌어져도 그게 전부 내 잘못, 책임은 아니라는 것, 일이 벌어지면 수습하면 된다는 것, 그리고 곁에 가까운 이가 ‘함께’ 도와줄 수 있다는 것. 이런 ‘또다른 삶의 진실’을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믿어보세요.
임상심리전문가, 김선희부부클리닉 원장
불안을 대물림하지 마세요→
저는 유치원 때부터 대학생 시절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위협했던 수많은 사고들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다른 사람들이 운전하는 차에서는 깊은 잠을 잘 수가 없고, 장거리 여행을 떠날 때에는 ‘혹시 이번에 사고가 나서 내가 다시는 못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님의 사례와 저의 사례는 과거의 부정적 경험이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대한 단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는 여러 요인 중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있고, 또 바꿀 수 없는 것도 있다는 겁니다. 이에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은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라난 가정환경을 지금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정환경이 나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과감히 바꿀 수 있는 부분입니다. 과거 나에게 한 어머니의 행동과 심리 상태를 지금 우리가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이해하기로 작정하는 것은 쉽지는 않지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불안감을 나의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작정을 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인 과거의 일들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님께서는 스스로 엄마로부터의 애정 부족과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불안감으로 말미암아 더욱 독립성을 키우게 되었고, 또 더 나아가 학창 시절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어 좋은 직장을 갖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과 상처를 새롭게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계신 거지요. 이러한 경험을 좀더 확대하여,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을 생각하며 불안해하기보다는, 그날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생각들로 채워나가고 더 나아가 좀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 가시길 응원합니다.
연세대 교수(스포츠레저학)·<너희가 사랑을 아느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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