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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9.22 19:37 수정 : 2012.02.17 14:25

‘뼛속까지 야구선수’ 양준혁이 권하는 인생 전력투구법

“묵으라, 거.” 대구에서 첫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대구중학교 야구부 주장 김신호(15)군에게 ‘야구선수’ 양준혁(41)씨가 앞에 놓인 샌드위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말을 건네고는 슬며시 웃는다. 그에게 보여주려고 야구 유니폼까지 챙겨 입은 김군이 수줍게 웃으며 샌드위치를 한 입 베었다. 지난 21일 오전 9시30분부터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 분위기는 시종일관 훈훈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32년 동안 야구만 해온 그는 지난해 18년의 프로야구 선수 인생을 마치고 은퇴했다. 은퇴 뒤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에게 인생의 길을 묻기 위해 세 사람이 찾아왔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김신호군, 진로를 못 찾아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대학생 오윤경(20)씨,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돕고 있는 사회복지사 홍혜영(30)씨다. 그들 앞에 양준혁 선수가 꺼내든 단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였다.

지난 21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6층에서 양준혁 선수가 ‘전력투구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자존심을 세우지 말고 자꾸 물으세요

홍혜영 평생 해온 야구를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양준혁 굉장히 두려웠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32년 동안 야구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사회에 나가려고 하니까 두렵더라고요. 마지막날, 구단에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눈앞에 큰 벽이 있는 느낌, 거대한 블랙홀로 들어가는 느낌이었죠. 걸어 나오는 길에 울었습니다.

홍혜영 제 경우 아이 양육 때문에 3년을 쉬다가 최근 복직했습니다. 다시 사회에 뛰어든다는 것이 두렵더라고요. 그런 마음을 어떻게 추슬렀나요?

양준혁 선수 시절, 늘 전력을 다해서 뛰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치든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살아가면 되지 않겠나,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추슬렀죠. 지도자 길을 걷기 위해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은퇴 뒤 내 이름으로 청소년 야구대회를 열어보고는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이들 뛰어노는 걸 보면서 이들을 돕는 일도 뜻깊겠다 싶어 제 이름의 야구 재단을 세웠고 진로를 변경했죠. 바로 방송 일도 하게 됐고 강연도 종종 하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영역이 넓어졌습니다. 개척하는 마음, 밀림에서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마음으로 삽니다.


오윤경 예능프로그램인 <남자의 자격> 출연은 정말 새로운 도전이었겠어요.

양준혁 출연 제의를 받고 고민을 많이 했죠. 괜히 예능에 뛰어들었다가 여태까지 쌓아온 것을 다 무너뜨리는 게 아닐까. 그런데 선택을 잘한 것 같아요. 도전하고 목표를 성취하는 프로그램 성격이 저와 잘 맞아요. 얼마 전 촬영 때문에 한 여고를 방문했는데 학생들이 나를 보고 “와, 연예인이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동안 내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는데요. 나를 통해 여고생들도 야구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면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죠.

홍혜영 운동을 하다가 연예인이 된 사람들 중 결과가 좋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부담이 되진 않았나요?

양준혁 내가 강호동처럼 되겠다고 한 건 아니니까요.(웃음) 예능프로그램을 통해서 나 자신도 더 알리고 야구도 알리겠다는 목적이니까 성공에 대한 부담은 없어요. 예능으로만 성공하겠다고 생각하면 제가 바보죠. 강호동씨가 어릴 때부터 씨름을 했지만 연예인이 돼서 지금 위치에 가기까지도 18년이 걸린 거예요. 대단한 거죠. <남자의 자격> 팀에 있으면 제가 워낙 초보이기 때문에 “아, 난 뼛속 깊이 야구인이지 연예인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김태원씨도 예능하는 시대잖아요. 김태원이 계속 가수이듯, 저도 스포츠인이 예능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개념이에요.

김신호 최근에는 멘토로도 직접 나서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양준혁씨는 최근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지정한 ‘대한민국 아름다운 100인 멘토’ 1호로 위촉됐다). 후배들에게 주로 어떤 조언을 하고 싶으세요?

양준혁 우리 때와 비교하면 요즘 후배들은 악착같이 죽자 사자 하기보다는 좀더 편한 걸 찾는 듯해요. 때문에 기술적인 조언보다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자존심도 너무 세요. 감독이든, 후대 선수든 자신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으면 무조건 묻고 배우고 해야 하는데 그걸 자존심 상한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많아요. 저는 7년 후배인 이승엽 선수한테도 자꾸 물어보고 배울 게 있는데 말이죠. 김성근 감독은 70살이 넘도록 계속해서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난해서 더 노력했던 어린 시절

김신호 저는 현재 중학교 야구선수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린이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어요. 양준혁 선수의 선수 생활 시작은 어땠나요?

양준혁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는데 집이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비가 오면 그대로 새는 사글세 집에서 가난하게 자랐죠. 집이 가난했기 때문에 더욱더 “내가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습에 몰두했어요. 남들과 똑같이 하겠다는 정도의 노력이 아니라 그보다 더, 될 때까지 노력하세요. 안 되는 일은 없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에요. 어떤 일이 있어도 해내는 거죠. 가난해서 안 된다, 부상 때문에 못했다, 이런 핑계 대지 말고요.

홍혜영 요즘은 예체능인으로 성공하려면 부모가 돈은 물론 아이의 영양상태, 컨디션까지 챙길 정도로 정성을 들여야 하는 환경인 것 같더라고요.

양준혁 실제 후배들을 봐도 선수 하나 키우려면 부모가 매달려야 하는 환경입니다. 성장호르몬까지 맞히더군요. 잘 먹인 아이들이 더 잘하긴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닙니다. 그런 아이들은 조금만 힘들면 안 한다고 하고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문제가 되죠. 선배로서 신호군처럼 재능이 있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에요. 조만간 양준혁야구재단에서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야구팀을 만들고 그들을 좋은 선수로 키워낼 계획입니다.

김신호 프로 데뷔 첫 시즌에서 타격왕·신인왕 다 받았는데 첫 시즌 시작될 때 긴장하지 않았나요?

양준혁 긴장했죠. 무척 두렵더라고요. “프로는 아마추어와 다르다”고 하도 주변에서 겁을 줘서 오히려 속으로 “그래 한번 해보자, 얼마나 대단하냐”라고 되뇌었어요. 일부러 조금 깔보는 듯한 자세가 되려고 노력했죠. 다행히 첫 경기에서 잘 쳤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쫙 달릴 수 있었습니다. 겁먹으면 안 돼요. 붙어보자, 이런 싸움닭 같은 투쟁적인 근성이 있어야죠.

김신호 기록을 많이 세우면서 건방져진 적은 없나요?

양준혁 프로 데뷔 초창기 때는 내가 야구를 잘하니 세상이 다 내 것 같고 그랬어요. 근데 어떤 일이든지 오래하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무조건 겸손해야 해요. 그걸 깨닫는 데 시간도 좀 걸렸고 대가도 치렀죠. 연예인들도 보면 스타가 됐다고 잘난 척하고 그러면 금방 인기가 떨어지더라고요. 항상 주변에 감사하고 머리 숙이며 살아야 오래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다음에는 자꾸 뒤돌아보며 내 자신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며 살아요.

김신호 저는 현재 야구부에서 주장을 맡고 있는데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아요. 양준혁 선수도 선수 시절 주장이었을 때 팀내 스타 선수들도 많았는데 안 따라줘서 힘든 적은 없었나요?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주장 시절, 아래로 20년 차이 나는 후배까지 연령이 다양했어요. 하지만 안 따라줘서 힘들거나 이런 것은 없었죠. 주장은 자꾸 팀원들에게 다가서야 해요. 팀원들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 눈높이에 맞추면서 먼저 관심을 가져주고 정성을 들이면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죠. 강압적으로 이끌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에게 오도록 마음을 움직여야 따라와요. 안 따라올 때는 뭔가 마음속에 불만이 있는 거니까 그게 뭘지 생각해봐야죠. 무조건 따라오라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신호 야구에서 공격과 수비, 주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양준혁 수비가 가장 중요해요. 공격이 제일 재밌고 빛이 나죠? 하지만 중요도 순으로 보면 수비가 먼저고 그다음이 주력, 마지막이 공격이에요. 타격은 확률이 3할밖에 안 되잖아요. 수비는 9할 7~8푼이에요. 공격은 70%가 실패지만 수비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공격 아무리 잘해도 수비가 안 되는 선수는 시합에 나갈 수 없습니다.

후배들은 공부하며 운동할 수 있길

오윤경 대학교 3학년인데 아직도 진로를 정하지 못해 요즘 슬럼프에 빠져 있습니다. 양준혁 선수도 2002년에 슬럼프였다고 하던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양준혁 첫째로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해요. “나는 할 수 있다, 다만 지금 잠시 슬럼프일 뿐이다”라고 생각해야죠. 해도 해도 안 될 때가 있거든요. 슬럼프가 왔다는 것이 느껴지고 아무리 해도 안 되면 아예 바닥으로 페이스를 더 떨어뜨려버려요. 물에 빠져 허우적댈 때 계속 허우적대면 더 힘들잖아요. 차라리 밑으로 들어가 바닥을 치면 위로 올라올 수 있죠. 때를 기다린다는 기분으로 공부 대신 학과 일을 돕는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해보면 좋아요. 저 역시 슬럼프를 겪을 당시 구단 내의 궂은일을 맡아서 하고 나 대신 나가는 선수에게 파이팅도 외쳐주고 했더니 오히려 주변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어요.

오윤경 스포츠 마케팅이나 스포츠 기자 쪽에 관심이 있는데 미래가 불안하다 보니 자꾸 안정적인 길에 안주하고 싶어져요. 도전이 쉽지 않아요.

양준혁 제 경우 ‘만세타법’을 하나 만드는 데도 수천번의 실패가 있었어요. 그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돼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안정적으로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한 단계 이겨내보세요. 명함 하나로 코끼리를 죽이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명함으로 코끼리 한 군데만 계속 찌르는 거예요. 스포츠 마케팅을 하기 위해 전력투구해봤어요? 완전히 몸을 던져서 해보세요. 생각으로만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떻게 할까 하지 말고요.

김신호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양준혁 될 때까지 하는 거죠. 남들과 똑같이만 해서는 절대로 안 돼요. 이승엽 선수가 지금 최고의 타자가 됐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에요. 이승엽 선수는 한 게임에서 잘못 치면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연습하는 사람이에요. 마음만 있어서는 안 되고 직접 몸을 던져야 해요.

홍혜영 양준혁 선수의 멘토는 누군가요?

양준혁 김응룡 감독은 제가 정말 힘들었을 때 손을 내밀어주신 분이에요. 과거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를 출범시킨 뒤 8개 구단이 담합해서 저를 선발하지 않기로 해 선수 생명이 끊길 뻔한 상황에서 김응룡 감독이 절 팀으로 데리고 가주셨죠. 김성근 감독에게는 마음가짐 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예능프로그램을 하면서는 이경규 형님이 많이 챙겨주시고요.

김신호 선수협 출범 당시 어려운 일에 나서셨는데, 이후 야구선수 환경이 많이 달라졌나요?

양준혁 야구선수들이 구단과 맺는 계약서를 보면 불합리한 조항이 너무나 많죠. 요즘 얘기 나오는 연예인 노예계약 이야기는 새 발의 피예요. 초상권도 구단이 100% 다 갖고 있어서 계약대로라면 광고를 찍고도 한 푼도 받을 수 없죠. 프로야구 세계에서 법을 바꾸는 것은 8개 구단 사장이 모여서 해요. 구단의 이익을 추구하니 불합리한 것이 많죠. 그래서 선수협 출범을 추진했는데 인정받기가 너무도 힘들었죠. 지금은 선수들이 직접 불합리한 조항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성과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 믿어요.

홍혜영 나중에 자녀가 야구를 하겠다고 해도 지지해줄 건가요?

양준혁 물론이죠. 대신 우리처럼 해서는 안 돼요. 우리 때는 중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수업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어요. 야구선수를 키우겠다고 어릴 때부터 엘리트 스포츠로 가는 것은 좋지 않아요. 야구를 통해 박찬호·이승엽도 키우지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같은 리더십 있는 인물도 키워야죠. 공부만 하는 아이는 야구만 하는 아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밖에 모르는 거예요. 앞으로는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좋은 교육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진행·정리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앱 이용 후기 슬럼프 잊게 한 위풍당당 ‘양신’

그는 생각보다 더 큰 사람이었다. 몸집뿐만 아니라 생각과 행동까지. 야구 복장이 아닌 말끔한 정장까지 어울리는 다양한 매력을 가진 선수였다. 왜 많은 팬들이 수년간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청소년기, 좋은 수능 성적과 이른바 ‘스카이 대학’이 인생의 목표이자 지루한 공부를 견디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인생의 목표도 희미해지고,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했다.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똑같은 일상의 연속이었고 그 일상 속에서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과 같은 슬럼프가 찾아왔다. 기나긴 슬럼프 속에서 자신감은 잃어가고 포기가 빨라지면서 변화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삶을 추구했다.

양준혁 선수의 답은 명료했다. ‘자신을 신뢰하라’. 그는 인생의 전부를 한 분야, ‘야구’에 쏟으면서 어려움을 겪고 그것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 그 인생의 교훈을 어렵지 않은 말과 비유를 통해 깨알 같은 조언을 해주었다. 그 조언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했다.

‘양신’이라는 타이틀과 정상의 위치에서 겸손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양 선수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할수록 인생의 길을 먼저 닦아 나간 선배로서의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호탕하고 편안한 성격의 양 선수를 인생의 멘토로 삼고 싶었다. 편안한 큰오빠와 같은 양준혁 선수와의 인터뷰 속에서 어두웠던 기나긴 터널 속에서 좀더 빨리 빠져나갈 방법을 얻었다. 오윤경

변화를 두려워 말자

뼛속까지 야구인인 양준혁 선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진짜 사나이구나, 분명 지금부터의 인생도 잘 살아나갈 것이다’란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그 많은 두려움들을 이겨내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을까? 답은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될 때까지 하는 것.

난 지난 3년 동안 개인적으로 아이가 많이 아픈 시간들을 견디면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지냈다. 그리고 지금 워킹맘으로 직장에 복직해 순간순간 변화가 두렵고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에서 그를 만난 것은 참으로 행운이었다. 배움, 끈기, 노력, 자신감, 정성 그리고 양준혁 선수에게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겸손까지 무엇 하나 놓칠 것이 없었다.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일도 모레도 결코 최선을 다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그런 배움을 준 양준혁 선수에게 감사하며 그의 앞날을 축복한다. 홍혜영

나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운동하리

텔레비전이나 야구 경기장에서만 보던 유명 선수를 실제로 만나니 정말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렵고 부담스러웠는데 양준혁 선수께서 대화를 편하게 해주시고 농담도 해주면서 진행하셔서 긴장도 풀리고 질문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양준혁 선수께서 항상 집요하게 될 때까지 핑계를 대려고 생각 말고 악착같이 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 때문에’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생각하신다는 말씀이 너무 멋있어서 저도 이제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김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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