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청소기 신화’ 한경희 대표의 성공비결 “길거리 나앉을 각오 없으면 창업하지 마라”
‘엄마들의 스티브 잡스.’
각 가정마다 소리 소문 없이 마루 한편에 놓이게 된 신기한 물건이 있다. 그 물건의 용도에 대해 남편은 몰랐다. 아들도 몰랐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만 알았다. 한국의 여성들을 무릎 꿇고 하는 걸레질에서 해방시킨 스팀청소기가 바로 그 물건이다. 이웃과 통화하면서 “좋더라”를 연발하는 엄마들은 자처해서 전도사가 됐다. 곧이어, 구겨진 옷을 걸어 놓은 채로 ‘쓱쓱’ 문지르기만 하면 ‘쫙쫙’ 펴주는 스팀다리미까지 나오면서 엄마들의 환호성은 더욱 높아져갔다. 엄마들에게 스마트폰보다 더 소중한 제품을 만든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 대표를 만났다.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그 좋다는 5급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나온 한 대표는 발로 뛰어다니며 스팀청소기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창업 12년째인 지금 직원수 150여명, 연매출 천억원대의 ‘알짜’ 기업이 됐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지 않은 자수성가형 여성 사업가 가운데는 단연 독보적이다. 청년 인터뷰어로는 대학생 창업동아리 ‘시너지’에서 활동하는 대학생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경희 대표가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신과 같은 위치’라고 했다. 한 대표는 인터뷰가 끝난 뒤 이번에 나온 자서전에 일일이 사인을 해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학생들 입이 귀에 걸렸다.
사업은 장난이 아니다
일동 안녕하세요.
한경희(이하 한) (환하게 웃으며) 와, 다들 예쁘게 생겼네. 다들 너무 젊고 좋을 때다. 엄마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얘기해요. 저는 늦게 결혼해서 이제 애가 중학생인데, 일찍 결혼했으면 여러분들만한 자식이 있었을 거예요. 제가 뭘 도와드리면 될까요.(웃음)
조민정(이하 조) 창업동아리에서 활동하다 보니, 창업이 최대 관심사예요. 이미 몇 차례 실패 경험도 있고요.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한 사업, 너무 힘들죠. 저도 처음에 시작할 때, ‘이거 만들기만 하면 사람들이 줄서서 살 거야’라는 환상이 있었어요. 무작정 뛰어들어서, 스팀청소기 개발하는 데만 2~3년이 걸렸죠. 그런데 만들어 놓고 나니, 제품을 팔 유통망이 없었어요. 유통망을 개척하는 데 또 2~3년이 걸렸죠. 직원들 월급 밀렸던 적도 있고 너무 힘든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위기 때마다 ‘확신’이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버틸 수 있었어요. ‘이 제품은 된다’는 굳은 심지였죠. 이거 하나에 평생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해요. 길거리에 나앉아도 좋다는 각오로 했으니까요.
조 자신감 넘치는 성격이신 거 같아요.
한 자신감보다는 고집이 세죠. 하하. 주변 사람들의 생각을 의식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그러니 제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힘들지 않았던 거죠.
김은지(이하 김) 앞서 창업한 선배들 보면, 거의 다 실패해요. 대학생들의 창업을 어떻게 보세요?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경험해보는 것 자체로도 좋지 않을까요.
한 비즈니스라는 것, 창업이라는 것은 절대 장난 삼아 재미로 할 일은 아니에요. 젊은 대학생이기 때문에 경험 삼아 할 수는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렇게 해선 성공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이 세계가 전력투구를 해도 쉽지 않은 곳인데, 경험 삼아 해본다고 달려들면 실패할 확률이 높죠.
김 창업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를 관두는 건 어떻게 보세요. 주변에 실제 그런 친구들도 있고요.
한 일단 도저히 내가 학업과 사업을 병행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서야죠. 하지만 가능하면 학업은 끝냈으면 좋겠어요. 저라면 사업이 커져 수익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 수익을 직원을 고용하는 데 쓰고 남는 시간에 학교에 다닐 거 같아요. 모든 수익을 다 인건비에 쓴다 해도 말이죠. 저도 학교 다닐 때 너무 독립이 하고 싶어서 타히티에 공장이 있는 외국계 회사에 취업을 했어요. 해외로 취직하면 보내주시겠지 생각한 거죠. 그런데 아버님이 딱 한 말씀 하시더라고요. “공부는 한번 중단하면 다시 시작하기 힘들다.”고요. 결국 그때도 주저앉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맞는 말씀이셨던 거 같아요. 학업을 중단하는 것은 인생에서 정말로 큰 결정 중에 하나거든요. 사업을 시작했다고 쉽게 관둘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학업하고 병행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말고, 잠 줄여가면서 해보세요. 젊으니깐 할 수 있잖아요. 그 정도 열정이 없으면 사업하지 말아야죠. 잘 거 자고 놀 거 놀면서 돈도 버는 건 가능하지 않아요.
정재화(이하 정) 스팀청소기나 스팀다리미 등 히트 상품을 많이 만드셨잖아요.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시나요.
한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에 대한 관심인 거 같아요. 그냥 지나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좋게 만들까, 더 편하게 만들까 고민하는 거죠. 우리들 모두 생활하면서 여러 불편함을 느껴요. 하지만 그것을 직접 고치는 사람은 드물죠. 스팀청소기는 제가 직접 무릎 꿇고 걸레질을 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어요. 우리 회사의 모토가 ‘창의와 열정으로 고객 삶의 질을 높이는 회사’예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관심이 중요한 거죠.
아이디어는 10%, 과정이 90%
정 아이디어만 가지고 사업을 하기란 힘든 거 같아요.
한 사람들이 이런 말 많이 하죠. 어떤 신상품이 나왔을 때, ‘어, 저거 내가 생각했던 건데’라고요. 아이디어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해요. 사업에서 아이디어는 10%고, 90%는 과정이에요. 아이디어만 가지고 결코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어요. 스팀청소기라는 아이디어가 나빠서 초반에 그런 고생을 한 게 아니거든요.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해요. 이 실행과정에서 엄청난 고통이 따라와요. 자기가 생각했던 것의 3~4배의 고통을 참을 각오가 있어야 해요.
조 여성 눈높이에 맞는 제품을 잘 만들어 내는 이유가 있을까요.
한 구체적인 연구는 연구소의 연구원들이 하지요. 저희 연구소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에요. 전기와 물을 동시에 쓰는 가전제품은 흔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렵기 때문에 최고의 기술이 필요해요. 다만 연구원들은 남성이 많기 때문에 제품의 최종 사양은 여성 소비자의 검증을 거쳐요. 기술자 중심이 아니라, 소비자 중심인 거죠. 그래서 더 만족도가 높은 거고요.
조 저는 대학교 3학년인데요, 이제 사회 진출할 시기가 찾아왔어요. 졸업 뒤 진로가 고민 돼요.
한 제가 대학교 다닐 때의 꿈은 ‘자유독립 만세’였어요.(웃음)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래서 첫 직장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 갔는지 몰라요. 일단 꿈은 이뤘던 거죠. 너무 큰 꿈 말고, 가장 시급한 작은 꿈을 먼저 이뤄보는 건 어때요?
김 나중에는 공무원(교육부 사무관)을 하다가, 창업을 하셨잖아요.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을 왜 관두신 건가요.
한 확신 때문이에요. 대한민국 여성들을 걸레질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절실했어요. 그리고 ‘세상 모든 여성들이 이 제품을 사도록 하겠다’는 포부도 있었죠. 직장을 관두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정 기업 이름에 본인 이름을 내세우셨잖아요. 요즘은 세련된 기업 이름도 하나의 경쟁력이라고 보고 있는데, 왜 본인 이름을 사용하신 건가요.
한 원래 거론됐던 회사 이름이 ‘싹스팀’, ‘스티미’ 이런 식이었어요. 제품에 관련된 이름이 붙은 거죠. 그런데 저희 회사가 스팀청소기를 만들자마자, 국내외에서 유사품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대기업에서까지 유사품을 만들더라고요. 고생 고생해서 이 분야를 개척했는데 억울하기도 하고, 무언가 차별화를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죠.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고요. 결국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고자 이름을 내세우게 된 거예요. 소비자들의 반응도 매우 좋았어요.
조 항상 성공만 하기는 힘들잖아요. 혹시 사업을 하면서 잘못된 결정으로 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한 이번에 새로 론칭한 ‘한경희 뷰티’가 대표적인 사례예요. 원래는 ‘오앤’이라는 별도의 브랜드로 사업을 했거든요. 실적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의외로 한경희생활과학의 자회사라는 사실을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과감하게 ‘한경희 뷰티’라고 사명을 바꾸게 된 거예요. 3년여의 시간을 잃어버린 측면이 있어요.
사회적 성공보다 인생 성공이 더 중요
김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시지만, 그 전에 한 가정의 ‘엄마’시잖아요. 가족들하고의 관계는 어떻게 조율하세요.
한 아무래도 회사일 때문에 가족들과 지낼 절대적인 시간은 부족하죠. 하지만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해놓고 지키고 있어요. 아이들 잠들기 전에 책 읽어주기, 저녁 약속 되도록 잡지 않기, 주말에는 가족과 보내기 등이죠. 그렇게 불만들은 없는 거 같아요.(웃음)
조 자녀 교육에는 어떤 신념이 있으세요. 아, ‘고집’이라고 해야 하나요. 하하. 또 자녀들이 사업을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한 성실하기를 바래요. ‘머리 좋은 사람이 엉덩이 무거운 사람 못 이긴다’는 말이 있죠? 성실한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가장 중요한 것이 본인이 잘할 수 있고, 즐길 수도 있는 분야를 찾는 것인데, 우리 가족도 그게 고민이에요. 그 분야를 빨리 찾으면 좋겠죠. 사업을 한다면, 지원을 해줄 거 같아요. 본인이 열심히 하려는 분야를 찾는다면 말이죠. 물론 정신적인 지원만요!
장 서점에 가보면 청춘에 관한 책이 많잖아요. 무언가를 하라고 주문하는 책도 있고요. 지금 대학생들은 무엇을 경험해야 할까요.
한 취직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취직은 하루 몇 시간 잠깐잠깐 일하는 아르바이트가 아니에요. 물론 취업난이라고는 하지만 큰 회사, 작은 회사를 따지지 않는다면 일할 곳은 정말 많아요. 방학 동안에 두어 달만 정말 풀타임 회사원처럼 일할 곳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방학이 끝나 일을 관둔다고 했을 때 그 조직에서 절대 놓아주지 않을 사람이 되어보세요. 아마, 사회생활 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거예요.
조 동아리 회장직을 맡으면서, 여러 편견에 시달려요. 리더는 남자가 낫다는 시각 같은 것들이요. 쉽게 말해 카리스마가 없다는 거죠. 여성 시이오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한 결국 실력인 거 같아요. 저도 카리스마 있는 성격이 아니라서, 직원들을 휘어잡는 리더십은 없어요. 그런 성격은 타고나는 거라서, 저는 어쩔 수 없다고 봐요. 생긴 대로 살아야죠. 하하. 하지만 실력이 있으면 존중을 받는 건 확실해요. 시이오라는 자리는 권리행사보다 일종의 의무를 강하게 느껴야 하는 자리예요. 그 의무를 해내려면 실력이 필요하고,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는 거지요. 카리스마, 없어도 됩니다.
조 최종 목표가 무엇인가요.
한 (잠시 생각한 뒤) 우리 회사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모이는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회적 성공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의 성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거 같아요. 직원들이 가족들과 행복하게 보내며, 인생의 성공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회사로 만들고 싶어요.
진행·정리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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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창업동아리 학생들을 만나 자신의 성공 비결과 청년 창업에 대한 조언을 들려주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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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해법, 유레카!
창업동아리 여자 회장으로서 꼭 한번은 대표적인 여성 시이오를 만나뵙고 싶었는데, <한겨레>를 통해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 가장 물어보고 싶었던 점은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 확신을 어떻게 유지하는지였다. 나도 모바일창업·인터넷창업을 해보았지만, 결국 이러한 점이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생각보다 투지가 강해 보였고, 길바닥에 나앉을 각오까지 했다는 자신감 가득찬 말에 독보적 여성 시이오의 ‘존재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한경희 대표는 경험 삼아 해보겠다는 청년창업가에게는 창업을 권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창업을 통해 수익이 난다 할지라도 꼭 학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인생을 길게 봤을 때 옳은 일이라고 추천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의 큰 고민이 바로 ‘학업인가 창업인가’이지만, 학업 또한 인생에서 마지막임을 알고 마무리를 짓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이들이 놔주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 되라’는 일침은 내 대학생활 고민의 명쾌한 솔루션이었다. 가정에서도 행복한 성공을 이루어야 한다는 마인드는 또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내 자신이 창업에 적합한 사람인지, 자질에 의심이 많았었다. 하지만 한 대표가 선물로 주신 자서전에 나오는 것처럼 콤플렉스는 곧 기회라는 생각으로 자질과 상관없이 자신을 믿고 우직함으로 가는 것이 정답임을 깨달았다. 나는 값진 만남으로 값진 사람으로 거듭났다. 조민정
완벽함을 추구하는 고뇌가 보였다
한경희 대표를 만나고 여성 사업가라서 더욱 완벽을 추구해야만 했던 그의 고뇌가 보이는 듯했다. 아직 1학년이지만 ‘내가 대학생활을 너무 여유롭게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란 반성도 하게 됐다. 이제부터는 꿈을 위해 내 삶에 박차를 가해야겠다. 자신의 인생을 찾으라는 한 대표의 말을 들으며 ‘과연 진짜 내 인생은 무엇일까’란 물음표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정재화
자신감과 겸손함을 동시에
자신감 넘치고, 동시에 겸손함을 지닌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어찌 보면 상반된 두가지 면이지만, 그것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고 있는 듯했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회사를 키우기 위한 열정이 인터뷰 내내 느껴졌다. 또 자신만의 룰을 만들어 엄마로서의 역할까지 동시에 수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화장품과 기계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뷰티’라는 새 영역을 개척한 것도 끊임없는 혁신의 모습이었다. 앞으로 쭉 응원하게 될 것 같다. 파이팅!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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