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1.27 19:04
수정 : 2014.01.27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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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수 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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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 경제 수장이라는 이의 말을 듣는데 스포츠카처럼 뚜껑이 열리는 느낌이다. 염장 제대로다. 얼마나 염장 대박인지 여야 정치권까지 한목소리다. 첫날엔 금융당국 책임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국민들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질타하더니 둘째 날엔 개인들이 정보제공에 동의할 때 좀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훈계한다. 동의를 하지 않으면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환경이라는 사실 자체를 모르지 않고서야 저런 발언을 할 리 없다.
이런 정보 대량유출은 초유의 사태라지만, 비슷한 종류의 일이 있을 때마다 목격하게 되는 중요 의사결정권자들의 대응 행태는 데자뷔에 가깝다. 오만과 무지가 마리 앙투아네트 급이다. 똥 싼 놈이 성내는 건 기본이고 외려 피해당한 이들을 나무라고 계몽질한다. 자신에겐 그럴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전지전능감이 하늘을 찌른다. 돈 좀 있거나 권력이 있거나 재능이 승하면 쉽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엔 전지전능감을 조장하는 문화가 있다. 사람의 전체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재능이나 권력, 재물을 전인격적으로 확대해석한다. 딱 그만큼만 인정하고 존중하면 되는데 과도하다. 결국 과도한 인정과 과도한 의미부여가 사람의 눈을 가리고 판단을 흐리게 한다. 서울대 출신은 정력도 좋을 것이라는 명제가 말도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대접은 정력까지 좋은 사람에 준하는 식이다. 인기 절정의 연예인은 자신이 미다스의 손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고백한다. 사업을 시작해 팬들이 내 제품을 하나씩만 사줘도 망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에 휩싸인다. 그래서 시작한 이들은 결국 다 망했다.
노래를 제일 잘한다고 인격적으로 가장 성숙한 사람은 물론 아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그 집단에서 가장 뛰어난 판단력을 가졌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나이가 많다고 그의 말이 곧 삶의 지혜일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드라진 외형적 조건 한 가지를 기준으로 나머지도 그러하리라고 결론 내린 뒤 그에 맞춰 행동한다.
기장의 반대를 무시하고 자신의 판단대로 악천후에 헬기를 띄우라 명령하는 회장님은 자신을 전지전능 그 자체로 인식한다. 참모들의 육아와 취미생활조차 자신의 방식대로 밀어붙이는 장군은 다재다능한 리더로 추앙받는다. 과도한 의미부여와 과도한 존중, 그로 인한 전지전능감에서 비롯하는 부작용이다.
굼벵이와 치타가 10분간 온 힘을 다해서 이동하는 거리는 다르다. 그렇다고 굼벵이와 치타의 시간의 가치가 다른가. 아니다. 같다. 사람도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 자기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주당 6억원을 받는 운동선수와 주당 60만원을 받는 봉급자의 시간은 똑같이 가치가 있다. 우연히 어떤 재능이 뛰어나서 현실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재능을 전방위적으로 과도하게 인정하면 양쪽이 다 망가진다. 한쪽은 괜히 주눅들고 한쪽은 턱없는 전지전능감에 오버가 일상이 된다. 내가 특별한 사람이니 두 손 모으고 모든 문제에서 내게 주목하라 요구한다.
특정한 지위에서 내부인들에게 과도하게 대접받는 권력자들은 전지전능감이 몸에 배어 현실감각이 심각하게 무뎌질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모든 사람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배고픔을 호소할 때 절식이 몸에 얼마나 좋은지 아느냐며 혀를 차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다. 답답한 마음에 호통까지 친다. 오만과 무지가 부록처럼 동반된다.
전지전능감에 휩싸인 정책결정자들의 오만과 무지를 보면서 염장 질리는 일은 이제 그만 사양하고 싶다. 정신건강에 얼마나 안 좋은지 당해보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트위터 @mepr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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