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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09 18:27 수정 : 2014.06.09 18:27

이명수 심리기획자

세월호 얘기를 하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사람이 많다. “정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잊지 않을 수 있을까.” 진심과 불안이 뒤섞여 있다. 벌써 무뎌지는 거 같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잊지 않기 위해 와신상담의 고사처럼 가시나무와 곰 쓸개를 동원할 수도 없고 영화 주인공처럼 매번 자기 몸에 문신을 할 수도 없다. 잊지 말자는 다짐이나 잊지 않아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다시 그럴 수 없지만, 아이가 엄마 볼에 여드름투성이의 자기 볼을 비비던 기억을 엄마는 잊지 못한다. 잊혀질 기억이 아니다. 기억의 속성은 안 잊는 것이 아니라 못 잊는 것에 가깝다. 못 잊는 기억마저도 기억용량의 한계로 시간이 지나면 퇴색한다. 깜빡할 때도 있다. 그러니 당사자가 아닌 이들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세월호 참사로 일상이 휘청일 만큼 많이 울고 분노하던 어떤 이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했다. 언제까지 잊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일상을 전폐하고 무언가를 계속 기억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 기억이 내 일상의 한 풍경이 되어야 잊지 않을 수 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거리에 나서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천만인 서명 운동을 벌이는 모습은 눈물겹다. 천만명이 기억한다는 걸 보여주면 정부도 쉽게 넘어가진 못할 거 같아 나섰단다. 제대로 된 특별법이 제정되면 잊지 않은 것의 결과로 영문도 모른 채 죽은 이들의 억울함이 풀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바뀐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세상 떠난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할 수 있게 된다. “고맙다. 우리가 너희들 덕분에 바뀐 세상에서 산다. 이제는 억울한 사람이 더 이상 없게 됐다.” 그렇게 아이들의 죽음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잊지 않게 된다. 그때까지 잊지 않으면 된다.

생후 1년도 안 된 아기를 잃은 엄마가 있었다. 사람들은 애초에 인연이 아니었다며 마치 아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빨리 잊으라고 위로했지만 엄마는 그런 말에 분노만 더해졌다고 했다. 엄마가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던 건 사연을 알게 된 어떤 이가 처음으로 아기의 이름을 물어본 다음이었다. 그러고 나서 아이가 얼마나 그리운지, 아이 없는 세상이 얼마나 아득한지를 충분히 말하고 나니 엄마도 자신의 일상을 되찾고 아이도 더 길고 편안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런 게 애도다.

아기 이름을 물어봐주듯 그리운 이름을 잊지 않도록 잘 보살펴주는 일도 세월호를 잊지 않는 한 방법이다. 통증으로만 기억되면 회피하게 된다. 편안하게 기억돼야 잊지 않을 수 있다.

곧 월드컵이 시작된다. 거리응원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찬반이 있다. 그럴 수 있다. 거리응원 하자. 대신에 빨리 소풍 간 아이들을 예술적인 방법으로 형상화해서 맨 앞자리에 앉히자. 꽃일 수도 있고 리본일 수도 있고 깃발일 수도 있고 그림일 수도 있다. 광장에 있는 형들이, 언니들이, 삼촌들이, 아빠들이 아이들과 함께 환호하고 아쉬워하자. 아이들도 위로받고 우리도 위로받는다. 각자의 가슴에 통증으로만 존재하던 아이들이 광장에서 편안한 기억으로 함께 부활할 수 있어서다. 그렇게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잊히지 않는다.

눈앞에서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보면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기억 속에서마저 그렇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 그렇게 보내면 남아 있는 이들이 제대로 살기 어렵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 아이들을 편안하게 기억하고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우리의 의무인 동시에 우리가 사는 길이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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