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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9.01 18:37 수정 : 2014.09.01 23:38

요즘 하루에도 몇번씩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된다. 세월호가 드러낸 여러 민낯이 대개 그렇지만 인간성의 바닥을 보는 느낌 또한 고문 같아서 그렇다. 누군가의 말처럼 곧 가을 소풍인데 봄 소풍 갔던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릿한데 그런 아이의 부모들에게 가해지는 비방과 조롱, 비아냥, 극언, 폭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이미 인간의 말과 행동이 아니다.

혼자만 자식이 죽었느냔다. 자식 팔아 팔자 고치려 한단다. 단식하는 부모에게 차라리 죽으란다. 자식 죽었다고 국가원수에게 막말하면 되느냐며 사과하란다. 단식장 앞에 떼로 몰려가 짜장면을 게걸스럽게 먹는다.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유족을 거리에 패대기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기막혀하면 넌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 실제로 그런 일을 당한 적도 있다.

젊은이들도 일부 있지만 대체로 나이 든 이들이 세월호 막말의 중심에 있다. 노인들은 막말에 행동력까지 겸비해 그 선봉에 있다. 나는 장년층이라기보다 손주가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 쪽이다. 그럼에도 노인들의 세월호 행태는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도저히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 청장년층은 오죽할까.

방금 눈앞에서 자식 잃은 부모보다 수십년 전에 부모 잃은 최고권력자가 더 불쌍하다는 요지경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이해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단순히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비슷한 참사가 있을 때 세월호 막말 같은 2차 트라우마는 결국 우리 모두를 죽음의 상태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나이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이 있다. 말은 멋지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인들에겐 열 지갑은 없고 죽고 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한 질병만 있다. 대다수 노인들은 탈출구가 없다. 따뜻하게 돌봐주는 사람은 물론이고 얘기 붙이는 사람조차 없다. 자식을 포함해 젊은 사람들이 보는 자신들의 과거는 남루하고 가치가 없다. 살아온 세월 자체가 깡그리 부정당하는 느낌이다. 그건 곧 내 존재가 부정당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오이시디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10만명당 자살자 수에서 오이시디 평균이 12명인데 우리나라는 33명이다. 그러나 노인세대로 가면 그 압도적인 숫자조차 하찮다. 우리나라 60대 이상에선 84명, 70대 이상은 117명이다. 좋든 나쁘든 아무 일이라도 터졌으면 좋겠다는 노인들의 체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노인들을 극진하게 대접해서 고가의 가짜 약을 팔아먹는 사기꾼들은 쉽게 뿌리뽑히지 않는다. 제3자의 눈엔 어리석어 보여도 이들은 유일하게 노인의 존재에 주목하는 집단이다. 어렴풋이 사기성을 눈치채도 내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은 내치기 어려울 만큼 노인들의 마음은 피폐하다. 관심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게 악행이든 아니든 상관없다. 생존 본능일 수 있다. 특정한 정치집단이나 사회세력과의 관계에서도 작동원리는 같다. 어설픈 진영논리나 꼰대들의 무식한 일탈로만 상황을 인식하면 우리 사회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지금 같은 지옥도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그 노인들은 모두 우리 누군가의 부모고 할아버지다. 세월호 특별법이 지향하는 안전한 사회에는 당연히 그들도 포함된다. 광화문 동조단식에 모든 국민이 다 나올 수는 없다. 대신 내 부모에게 혹은 옆집 할아버지에게 눈 맞추고 얘기 들어주는 일, 그들의 삶에 잠깐이라도 인간적인 주목을 해주는 일이 세월호 2차 트라우마인 비아냥과 조롱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해법인지도 모른다.

이명수 심리기획자

세월호 유가족 “의지만 있다면, 진상규명 됩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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