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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2 19:57 수정 : 2011.06.02 19:57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진다.”(10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34조 1항) 우리 헌법의 금과옥조들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한 시대를 이끌었던 노동운동의 격문이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닌 국민이라면 외면하기 힘들었던 절규였다. ‘공돌이’ ‘공순이’도 헌법의 품으로 안아달라는 애소였다.

그동안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 생산하는 기계, 조립된 부품에 불과했던 노동자들도 이제 웬만큼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기계 세상이다. 우리의 학교는 기계들의 각축장이다. (다수의) 공부하는 기계와 (소수의) 운동하는 기계들의 집합소다. 부모와 나라가 앞장서서 기계들을 양산했다.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청소년은 미래의 자산이다. 기계훈련만 받은 젊은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기계 노릇밖에 못한다. 너무나도 요연하게 보고 있지 않는가. 획일적인 가치관의 신봉자들이 주도하는 세상의 모습이 어떤가를. 기계세상의 가장 큰 비극은 오로지 최상의 기계만이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잠시 동안. 성능이 처진 기계는 즉시 도태된다.

우리의 운동선수들만큼 가련한 인간기계들이 또 있을까. 운동선수를 장래 목표로 선택하는 순간부터 비극은 예정된 것이다. 기초학력과 정상수업은 헛된 소망이다. 소풍, 수학여행, 학원은 극도의 사치다. 합숙훈련은 군대의 축소판이다. 훈련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폭력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합숙 중에 행여 책이라도 펴드는 아이는 ‘왕따’당하기 십상이다. 술·담배도 일찌감치 배운다. 여자아이는 성폭력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해야만 한다. 오로지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입증해야만 한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서럽게 울어야만 한다.

애초 국제 스포츠는 전쟁의 대용품으로 등장했다. 국력의 경연장이었기에 나라마다 기를 쓰고 올림픽에서 국력을 과시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른바 ‘스포츠 강국’이라고 해서 곧바로 선진국 대우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한때 인간기계의 왕국임을 과시하던 동구제국들이 줄줄이 몰락한 사실을 보라. 상설 선수촌에서 배양된 ‘국가대표선수’의 기량이 국민 건강의 척도가 될 수 없다. 이제 우리도 웬만큼 알려진 나라다. 금메달을 하나 더 딴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국위가 한층 선양되고 ‘국격’이 더욱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금메달과 국방의무를 맞바꾸는 비상식적인 국가스포츠 제도가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될 뿐이다.

올림픽헌장은 인간의 균형 있는 개발과 존엄을 구현하는 평화사회의 실현을 이상으로 천명한다. 그래서 ‘스포츠는 인권이다’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박지성과 김연아의 성공에 열광하는 우리는 쉽게 잊고 애써 외면한다. 스타기계가 되지 못하고 주저앉은 수만, 수십만의 인간기계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단계별 학교를 거치면서 선수의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진다. 그래도 성공한 축에 속하는 2급 프로선수도 박봉 때문에 범죄의 유혹에 빠지는데 무수한 중도탈락자들은 도대체 무얼 하며, 어떻게 살까. 이렇다 할 통계자료조차 없다. 일부는 조폭이나 일용직 철거반과 같은 어두운 지하세계에서 청춘을 죽이고 있을 것이라,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영어 간판을 읽지 못해 데이트 장소를 놓쳤다는 ‘대졸’ 운동선수의 기막힌 청춘고백에서 체육강국의 이지러진 허상을 본다.

자유사회, 민주사회는 인간이 기계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세상이다. 운동선수는 기계가 아니라 엄연한 인간이다.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가 목전에 보인다고 한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온 나라가 목을 매달 일은 아니다. 화려한 외형의 이면에 가려진 어둠의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연전에 스포츠계의 인권유린을 고발한 티브이 프로가 사내 검열에 걸려 희석되었다. 인권위의 개선 권고를 매국적 망언이라며 비난하던 체육회 간부들이 승승장구하고 있는 현실이다. 언제까지 우리 사회는 스포츠 신화, 집단광기의 포로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일부 국민이라도 과감하게 공범에서 탈출해야 할 텐데, 작은 소망조차 두렵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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