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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30 19:31 수정 : 2011.06.30 19:31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사태’가 ‘정상화’되었다고들 한다. 법인화의 무효를 주장하며 한달 가까이 행정관을 점거하고 있던 학생들이 지난 일요일에 자진해산했다. 대학당국의 김빼기 작전도, 방학을 요긴하게 써야겠다는 학생들의 초조감도 사태의 일시봉합에 한몫했다. 의기양양한 대학당국은 걸음을 재촉하며 2012년부터 법인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하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결코 ‘정상화’된 것도 아니다. 앞길이 순탄하지 않다. ‘법인화’는 서울대가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고 이미 국회에서 법률까지 제정된 마당에 새삼스레 무슨 ‘원천무효’ 시비냐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법인의 포장이 아니라 내용물이 문제다.

이 법은 이명박 정부의 연례행사인 연말 예산안 날치기 통과의 부산물이다. 극심한 논란 속에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상임위원회의 심의는 물론 단 1분의 토론도 없이 의사봉을 두드려 만든 것이다. 정부안에 대해 대학이나 국민이 우려하던 쟁점이 즐비했지만 그대로 묻혀버렸다. 야당의 참여 없이 여당 의원만으로 통과된 법을 국민과 국회의 ‘합의’의 산물로 볼 수 있을까.

애초부터 민영화를 극렬하게 반대한 서울대 교직원들은 즉시 천막을 치고 엄동설한 속에 농성을 이어갔다. 전국의 지지단체가 줄을 이었고 지방 국립대학의 대표들도 동참했다. 동장군과 방학이 아우성을 삼켰다. 계절의 훼방인가, 투사의 태업인가. 국립대 민영화는 서울대만의 일이 아니다. 정부의 기본방침이기에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도대체 법인화, 민영화의 핵심이 무엇인가? 두말할 나위 없이 자율과 예산의 문제로 압축된다. 대학은 자율과 재정지원은 극대, 규제와 간섭은 극소를 바란다. 정부는 정반대이다. 대학 안에서도 학문 분야에 따라 경쟁과 보호의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시장과 경쟁 원리의 극대화를 추구할 영역이 있는가 하면, 낮은 인기와 수요 때문에 더욱 보호·육성해야 할 분야가 있다. 무릇 대학은 회사원, 산업역군만 생산하는 곳이 아니다. 기초과학, 인문, 예술 등 현실적 경쟁력과 효용이 낮은 분야일수록 인적자원을 육성하는 것이 국립대학의 책무이다. 국가 인력의 적정한 배분을 유념하는 것이 국립대의 존재 이유이다. 국립의 지위를 상실하면 민간과 시장의 논리가 지배하기 마련이다.

문제의 법은 예산 보장은 극소인 반면 대학의 자율성은 크게 손상할 소지를 안고 있다. 시행령을 통해 어떻게 보완될지 미지수지만, 대학이 원하는 수준의 자율은 난망이라는 것이 상식이다. 재원의 압박을 받으면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반값 등록금’ 논란이 나라를 흔들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더 걱정이다. 그나마 서울대는 사정이 낫다. 반세기 이상 누린 각종 특혜 속에 이룬 성과가 바탕이 되어 자생력이 높다. 그렇기에 설령 서울대의 법인화가 성공한다고 해도 다른 대학의 본보기로 삼을 수는 없다. 최근 유수한 지방국립대에서 줄지어 법인화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반면 서울대의 실패는 다른 대학의 실패로 확산되기 십상이다. 그것은 법인화 자체가 갖는 취약점 때문이다. 서울대 민영화에 온 국민이 관심을 쏟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칫 잘못하면 이 시점에서 서울대의 법인 전환이 이명박 정부 경제·복지정책의 축소판이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만약 학문의 세계에 빈익빈 부익부가 가속되면 지성세계에 균형이 무너진다.

그간 서울대 당국이 보여준 자세에서도 이런 위험이 감지된다. 애초 법인설립추진단을 구성하면서 교직원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대학이 어디 교수만의 것이랴. 뒤늦게 하부기구인 분과실무위원회에 면피성 참여를 허용하였으나 이미 계급적 폐쇄성을 드러낸 뒤이다. 학장단과 보직교수의 발언과 태도도 ‘권위’의 강조 일변도였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의 교수들의 집단행동을 백안시했고 학내통신도 규제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나마 그간의 소통부족을 사과하고 새로운 대화협의체를 구성하여 총의를 수렴하겠다는 오연천 총장의 ‘담화문’에 애써 기대를 걸어본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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