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0.20 19:20
수정 : 2011.10.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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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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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날을 맞는 사람마다 되살아나는 소회가 있고, 새로이 거는 소망이 있다. 그날만은 여느 날과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반드시 달라야만 한다는 조바심도 든다. 헛된 바람일 수도, 근거 없는 망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달력은 권력’이라는 말도 있다.
길게 보면 허망하기 짝이 없는 것이 권력이다. 그레고리력은 1년 365일이 기준이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은 일월진성(日月辰星)이 더디게 움직이기 바란다. “내게 세월을 다스릴 힘이 있다면 3년에 한번씩 새해가 오도록 하겠다.” 일상이 답답한 사람은 정반대다. 변화를 열망하고 스스로 변화를 도모하는 결의를 다지기도 한다. “우리에게 뜻이 있다면, 지구를 돌릴 뜻이 있다면, 오늘부터 당장 힘을 합하여 1년에 세번씩 새해가 오도록 할 수 있다.”(김광규, <태양력에 관한 견해> 1983)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10월26일에 잡힌 것도 공교롭다. 안중근(1909)과 김재규(1979)가 쏜 총소리에 경천동지했듯이 선거가 끝나면 커다란 지각변동이 따를 것이다.
한나라당의 나경원과 무소속의 박원순, 양자 대결로 치르는 서울시장 선거는 나라 전체의 정치기상도의 축도가 되었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내년 봄의 총선, 겨울의 대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과 기대는 상식에 속한다.
같은 법률가 출신이지만 두 후보자의 인생 노정은 확연하게 대비된다. 정치철학도 물론 다르다. ‘비주얼’ 시대의 중요한 요소인 이미지마저도 다르다. 생김새, 걸음걸이, 유권자를 응시하는 눈빛, 성별의 차이를 감안하고서라도 신언서판이 어찌 그리도 대조될까. 상대를 향해 던지는 네거티브 흠집내기용 언어도 강도와 품격이 다르다. 그러니 지지하는 사람들의 성향과 취향이 다를 수밖에.
의사 안중근의 총에 쓰러진 거물 일본 정치인을 기리는 한국인이야 있을까마는, 김재규의 총에 생을 마감한 한국 현대사의 거인을 추모하는 세력은 변함없이 이 땅의 주류로 건재하고 있다.
10월26일, 누가 이기고 지든 거센 후폭풍이 뒤따를 것이다. 반드시 변화가 따라야만 한다. 시대는 바뀌고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니까. 설령 나 후보가 이긴다고 해서 곧바로 한나라당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안철수, 박원순, 그리고 중도에 접었지만 이석연, 느닷없는 ‘시민후보들’이 출현과 동시에 급부상한 원인이 무엇일까?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보수 주도의 정당정치에 위기가 도래했다는 엄연한 징표가 아니겠는가. 문자 그대로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은 내년 선거에서 치욕을 맛볼 것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한테도 위기는 엄연하다. 승리의 관건은 거대한 보수여당에 맞서는 진보야당의 연합전선이 어느 정도로 견고하게 구축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설령 박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되더라도 임기 내내 정당정치를 외면할 수는 없다. 그의 승리가 곧바로 시민사회의 승리도 아니다. 시정은 정치가 아니라 행정이라지만 큰 그림을 그려야 할 서울시장은 정치와 행정을 아울러야만 한다.
10·26 후에 닥칠 일들,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뻔히 알면서도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는 게 인간지사요, 특히 정치다. 새 시대를 향한 중대한 전환점을 맞는 이때 새삼 반세기 전의 시가 떠오른다. 시인은 시대의 예언자요 비공식적인 입법자라지 않는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던 4·19 민주혁명, 그 시대를 산 한국인이라면 응당 머리와 심장에 남아 있어야 하는 구절들이다. 그 위대한 사건을 역사로만 접한 후세인도 수시로 되새겨야 할 구절들이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김수영, 1960년 4월26일)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의 절규에 후렴을 댄다. ‘이젠 10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라고. ‘아, 신화 같은 다비데 群들’ 서울시민이여, 젊은이여, 오는 10월26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손에 손을 잡고 투표장으로 가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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