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1.17 19:24
수정 : 2011.11.17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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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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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권력의 디딤돌이다.’ 예로부터 전승되어 오는 상식이다. ‘법학은 밥학이다.’ 또 하나의 실용적 상식이다. 세속적 권세와 물질적 안정은 법률가 직업의 매력이다. 그래서 어느 사회에서나 법률가는 인기 직종이다. 권세에 멀고 일상이 주린 사람일수록 법률가의 삶을 동경한다. 일제 때 ‘내지’(內地)에 유학한 반도청년의 절대다수가 법과생이었다는 통계가 있다.
지난주와 이번주 토요일, 전국의 25개 대학은 분주하다.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의 최종 단계인 면접시험이 시행된다. 2000명의 예비법률가를 선발하는 의식인 것이다. 대입 수능시험에 비견할 수야 없지만 많은 젊은이의 인생과 나라의 장래가 걸린 일이기도 하다.
오랜 논란 끝에 법학전문대학원이 출범한 지 3년, 내년 벽두에 1기 졸업생이 시험을 치른다. 입학정원의 75%가 변호사자격을 얻게 된다.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구제도에 따라 사법연수원생도 배출된다. 2017년, 사법시험과 변호사시험의 병존체제가 마감하게 되면 전문대학원 단일체제로 전환된다. 신질서가 구질서를 대체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이다.
법학과 법실무 서비스의 수준을 높여 나라의 장래를 대비하자고 만든 것이 전문대학원 제도이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의 지식 위에 법이라는 제도적 이성의 논리를 연마하는 종합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창달한다. 그리고 복잡다기한 현대 국민생활의 전 영역에 걸쳐 수요에 부응하는 법률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것이 법학의 교육주체를 전문대학원으로 승격한 근본 취지였다. 서울과 지방의 균형발전이라는 정치적 이상도 가미되었다. 국가 인력의 적정한 배분이라는 부차적인 목적도 있었다. 암울하고 미개했던 시대에 지극히 낮은 합격률에 편승하여 주택복권의 신화처럼 많은 국민의 헛된 꿈을 부추기면서 무수한 ‘고시낭인’을 양산하던 폐해를 청산하게 된 것은 천만다행이다.
대학원 차원의 법학교육은 학사과정의 법학과는 ‘질적’으로 달라야만 한다. 법학 지식을 제외하면 학생의 실력이 선생을 압도한다. 이들의 지식체계를 법학과 융합시키는 지적 탐구가 절실하게 요청된다.
그런데 이러한 제도개혁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역사의 발전보다는 목전에 걸린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집단, 심지어는 애써 과거에 목을 매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여전히 기성 법조계는 변호사시험의 합격자 수를 축소하려 안달이다. 정원 축소가 버젓이 변호사협회장의 선거공약으로 등장한다. 졸업생의 진로에 대해서도 새로운 장애물을 설치하고 있다. 일부 로펌들은 전문대학원 졸업생의 연봉을 연수원 수료생보다 대폭 낮추기로 담합했다.
대학교육에서도 자율의 폭은 극도로 축소되었다. 교과과정이 시험과목 중심으로 편성되는 것은 어쩔 도리 없다고 치자. 그러나 기초법 등 실용성이 뒤지더라도 뿌리가 되는 과목은 시장에 외면당하지 않도록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연수원을 본받았다는 엄격한 상대평가는 교육기관의 수치다. 수강생 3인 중 1인은 반드시 C학점을 주도록 강제한다.
도대체 이렇듯 유치한 발상으로 얻고자 하는 교육적 효과가 무엇인가? 장래 어떤 경로를 통해 학자를 양성해야 할지도 막막하다. 새로운 시대에 우리는 어떤 법률가를 필요로 하는가? 다시 한번 찬찬히 되짚어보자. 그리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는 데 고심하자. 백년이야 몰라도 최소한 10년, 20년이야 눈만 들면 내다보이지 않는가? 이들 중에서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주도할 통상전문가, 반도체 소송을 수행할 하이테크 율사, 원칙과 소신에 사는 검사가 배출될 것이다. 더욱 장기적으로는 법조문에 함몰되지 않고 나라 전체의 균형을 잡을 사법철학의 소유자인 대법관과 헌법재판소 재판관도 나올 것이다. 그뿐 아니다. 공익소송·환경소송 전문가, 가난한 사람의 한숨을 달래줄 법률구조 전문가도 탄생할 것이다. 제대로 된 정치가도 나올 것이다. 시대가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두가 다짐해야 한다. 때때로 이해관계와 의견이야 다를지라도 절대로 역사의 추를 되돌리지는 않겠다고. 지난달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투표성향을 보고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든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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