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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1 19:22 수정 : 2012.01.11 19:22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 사람의 영웅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건질 것을 믿고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난세였다. ‘나라가 불행하면 시인이 행복하다’는 말이 있다. 시인은 불의에 저항하고 대의를 갈구하는 의인이었다. 모든 국민이 시인이 되어 구국 영웅의 출현을 애타게 바랐다.

서슬 퍼런 총칼이 국민의 일상을 유린했다. 유신체제의 군사독재, 그들에게도 명분과 논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시바삐 절대빈곤을 탈피하고 국가의 산업화를 이루려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불가피하다는 확신이었다. 후세의 역사가 전면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았다. 과도기에 ‘약간의’ 독재는 필요악이었다고 덮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청년의 혈기와 정의감은 이 모든 것을 독재의 기망으로 여겼다. 민주사회를 염원하는 청년시인에게 군사독재는 절대악이었다.

그 암울하던 시대, 겨울공화국의 하늘에 영롱히 빛나던 세 개의 청년별이 있었다. 조영래, 김근태, 그리고 손학규. 셋은 합쳐서 시대의 희망이었다. 경기고-서울대 세태에 편승하는 것이 특장인, 이른바 ‘케이에스(KS) 라인’의 의인이었다.

어찌 세 사람뿐이었으랴. 그들을 이끌었고 뒤따랐던, 크고 작은 무수한 별들이 있었지만 세상은 유독 포장의 때깔, 요즘말로 스펙을 탐했다. 민주화·민중운동도 철두철미 엘리트의 몫이었다. 새로 출현할 구국의 영웅도 세칭 일류학교에서 찾았다. 겉으로는 깨어 있는 듯해도 기실 몽매하기 짝이 없던 시절이었다.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이더니 웬일인지 별 둘은 보이지 않고 남은 별만 혼자서 눈물 흘리네.” 개사한 동요가 손학규의 심정을 대변할까? 조영래가 먼저 떠났다. 시대가 내다버린 진애(塵埃)에 폐부가 녹았다. 어언 스물하고도 한 해가 지났다. 지난 연말, 김근태도 뒤따라 떠났다. 무참한 고문의 상흔을 육신에 안고서도 정신만은 더없이 맑고 안온했던 샛별이었다.

모란공원 민주열사의 묘역, 두 친구는 생전처럼 지척에 유택(幽宅)을 좌정했다. 홀로 떨어져 남은 별, 손학규는 장차 어디에 묻힐까? 그의 인생행로는 두 친구와 함께하기도, 달리하기도 했다. 그래야만 했었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앞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다. 바뀐 시대, 달라진 상식, 가파르게 쪼개진 민심에 부대껴야 한다. 무릇 살아남은 자는 죽은 동지와 물러나는 세대의 영욕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만 한다.

그동안 세상이 크게 발전했다. 오래전부터 민주주의는 장래의 염원이 아니라 일상적 현실이 되었다. 기아는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었다. ‘한국적’ 또는 ‘민족적’ 민주주의란 오래전에 유통기한을 넘긴 불량상품이다. 일상적 민주화 시대에 영웅은 일상에서 나온다. 스타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예고 없이 나타난다. 더 이상 정치의 세계에서 민족 영웅도, 국민 스타도 탄생하지 아니한다.


손학규는 영웅도 스타도 아니다. 그저 경륜을 가진 한 사람의 정치인일 따름이다. 그와 함께 세월의 파고를 넘은 세대는 대체로 동감한다. 갈라진 세상, 각박한 세태를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새 세대는 달리 생각한다. 그도 이명박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로 구시대의 인물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공도 과도 손학규에게는 득이 되지 않는다.

“참여로 2012년을 점령하라.” 더러는 김근태의 유훈에서 새해의 소망을 걸기도 한다. 그렇다. 정답이다. 문제는 누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이다. 1960년 4월19일 ‘성난 다비데군’들을 거리로 몰고 왔듯이, 어느 스타가 팬들의 열광과 분노에 불을 지펴 투표의 공연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그들을 휘어잡을 언어와 몸동작, 그리고 스토리가 받쳐 주어야만 한다.

아직도 정치는 경륜이다. 그러나 선거는 패션이고 바람이다. 경륜의 정치인 손학규, 아직 할 일이 많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세상은 그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줄 할아버지 역을 기대할 뿐, 함께 새 이야기를 만들어갈 동반자 리더로 여기지는 않는다. 여기에 그와 나의 세대의 탄식과 희망이 함께 교차한다. 우리들의 조바심 속에도 세상이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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