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4.30 19:35
수정 : 2012.04.30 19:35
|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구속, 기소는 시간문제다.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오래전부터 공공연히 세간에 떠돌고 있던 풍자였다. 서울구치소에 방을 예약해 두었다고.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구치소 대신 병원을 예약했다는 소식이다. 그럴 법도 하다. 펄펄 설치던 권력자가 몰락하면 없던 병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게 권력의 속성이다.
정권 말기에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드러나는 것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되던 일이다. 대한민국 검찰은 교활하리만치 유능하다. 정치적 독립과 줄타기의 묘기를 적재적소에 보이며 세월의 파고를 타고 넘는다. 검찰의 이중 기준에 따라 레임덕 대통령의 희비가 교차한다. 국민의 실망과 분노의 강도, 그리고 새로 들어설 권력의 태도가 적잖은 변수가 된다. 너무나도 뻔한 귀결을 알면서도 좀체 피할 수 없는 게 권력의 운명이다. 이미 입실, 좌정한 사람에다 앞으로 합류할 사람을 더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퇴임 후 비서실을 너끈히 꾸릴 수 있을 것 같다. 사필귀정, 새옹지마라지만 서글픈 일이다.
18대 국회의 마지막 임시회의가 소집되었다. 6000여건의 법안이 미결로 남아 있다. 이 중 몇건이나 막차를 탈까. 의원마다 오로지 생색내기, 실적내기의 목적으로 제출한 분별없는 법안도 많다. 그러나 응당 제정되었어야 할 법도 적지 않을 것이다. 여야가 입을 모아 부르짖던 ‘민생법안’들도 숙고하여 처리해야 한다. 국제적 망신살이 뻗친 야만국회를 탈피하기 위한 ‘몸싸움 방지법안’의 귀추도 관심사다.
어쨌든 한 달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폐기될 법안의 숫자나 비율이 역대 최고가 될 것이다. 현역 의원 60%가 짐을 싸야 한다.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원로, 중진도 없진 않으나, 대부분 밀려서 내쫓기는 신세다.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것이 전직 의원 신세다. 불체포 특권, 발언 면책특권 등 헌법이 보장한 각종 특권에 더하여, 각종 특혜와 대접을 받는다. 그래서 자리에서 물러나면 엄청난 금단현상에 시달린다. 오죽하면 여의도 쪽을 쳐다보는 것조차도 불편하다고 할까. 흔히들 말한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고. 전국의 공원마다 붙어 있는 표어다. 떠난 자리가 깨끗한 시민이 문화시민이라고. 마지막까지 근신,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과거의 관례로 보면 떠나는 선량들의 성의가 아쉬웠다. 임기 동안 무책임하게 내던진 쓰레기를 분리, 수거할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와는 달리 국회에는 업무의 원활한 승계를 도와줄 ‘인수위원회’가 없다. 새로 구성될 국회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만 한다.
총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의 지도자 박근혜 위원장은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백일 이내에 총선공약을 실천하는 입법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보다도 먼저 압도적 다수를 점한 18대 국회를 깔끔하게 파장해야 한다. 야당은 개원과 동시에 이명박 정부의 심판에 총공세를 펴겠다고 벼른다. 12월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작전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의 심판보다 건설적인 국회 풍토를 세우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과도기일수록 장래를 위한 토대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설령 야당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여당은 입지와 역할이 다르다. 비록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새누리당의 뿌리는 한나라당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책은 청와대와 내각만의 잘못이 아니다. 한나라당에도 공동책임이 있다. 그러니 새누리당이 국정의 깔끔한 마무리 작업을 주도해야 한다. 행여나 정치적 타산 때문에 당의 뿌리조차 부정하는 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
새 국회의 구성에 앞서 현 국회의 청산이 더욱 중요하다. 이미 바뀐 세월과 민심을 핑계 삼아 되돌아보기를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대통령 선거,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새 대통령의 취임일자 기준으로는 무려 열달이다. 후보 경선과 선거유세, 나라가 소용돌이칠수록 일상을 챙기는 안정된 지혜가 요청된다. 대선 결과로 행정권이 교체되든 연장되든 그보다 현상의 깔끔한 마무리가 더욱 중요하다. 국민은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유롭고 밝은 삶을 위한 정치를 갈구하는 것이다. 그걸 모르면 선거도 지게 되어 있다.
안경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