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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01 16:55 수정 : 2011.12.01 18:46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최근 온라인에 화제의 글이 떠돌았다. 일곱살짜리 김민석의 글씨로 민석이 물었다. “내가 엄마 말 잘 들어야 엄마 오래 살아?” 엄마가 “그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민석은 “그러면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라고 답했고, 놀란 엄마가 “왜?”라고 물으니, 민석은 “엄마 말 잘 들으려면 엄마 하라는 대로 해야 되는데 밥 먹으라면 밥 먹어야 되고 공부하라면 공부해야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해야 되는데 그러면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얼핏 보면 귀여운 글이지만 무서운 이야기이다. 회식 자리에서 회자되는 ‘강남 괴담’은 꽤 무서운 버전이다. 고등학생 아들이 엄마를 부르기에 나가보니까 아들이 본드를 발라놓은 벽으로 엄마를 밀어서 엄마가 벽에 붙어버렸다고 한다. 아들은 벽에 붙은 엄마를 보고 비식 웃었고, 엄마는 얼굴이 망가진 채 병원에 가서 대대적인 성형수술을 받아야 했다는 끔찍한 이야기이다.

괴담은 현실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만들어진다. 입에 담기에도 거북한 괴담이 나도는 사회는 문제적 사회이며, 그 경고를 무시한 채 현실을 방치하면 괴담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현실을 만나게 된다.

지난주에 고3 수험생이 공부를 강요하는 모친을 살해한 사건이 알려져서 우리를 경악하게 했다. 그는 시신을 어머니 방에 그대로 둔 채 8개월을 아무 일 없었던 듯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고 수능시험까지 치렀다고 한다. 언론은 어머니의 완벽주의와 성적에 대한 집착, 충동 조절 못하는 요즘 아이들의 성향, 순탄하지 않은 부부관계, 자녀의 가능성을 보지 않고 오직 성적에만 집착하는 현상을 이야기했고, 공부에서 밀려나면 끝장이라는 일반적 인식, 부모 자식 간의 소통 부재, 그리고 패자부활전이 없는 무한경쟁 사회를 탓했다. 그런데 이 정도 이야기로 이 사건이 납득이 되는가?

범행을 한 지군은 자기가 잘되라고 그랬던 어머니 마음을 이해하며, 아빠까지 자기를 버릴까 봐 두려워 말을 못했다고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도 수차례 했지만 뻔뻔하게 살아있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지군의 고모는 지군이 “엄마한테는 나밖에 없는데” 순간적으로 “엄마가 없어야 내가 산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정말 엄마를 죽였고 엄마가 죽었다는 것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엄마가 죽은 것이 아니라 옆방에 간섭하지 않고 조용히 계신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모자 외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소년은 삶도 죽음도 초월한 어떤 시공간에서 살고 있었던 것 아닐까?

열여덟살이 된 소년이 쉽게 가출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곳은 정상사회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에게는 부모 외에도 도움을 받을 친척과 이웃과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다. 지금은 핵가족이 육아의 모든 것을 고스란히 맡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학교 무상급식 제도를 열렬하게 지지한 것도 실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푸짐하게 한끼 밥을 먹을 수 있고 부모와 반목하더라도 자신이 살아갈 환대의 장소가 있음을 일러주기 위함이었다. 이 사건은 원초적 가족관계를 성숙시켜낼 여타의 관계와 제도가 철저하게 붕괴한 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모자관계는 자폐적이거나 도구적 관계로 변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유일한 아군인 엄마와 단둘이 참담한 전쟁을 치르다가 일어난 이 사건은 합리로 풀어낼 선을 넘어버린 광기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인 것이다.

이런 극단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 선조들은 굿을 하고 살풀이를 하고 위령제를 지냈다. 정성을 모아 기도를 하고 신탁을 기다렸다. 공동체 전체가 참회하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인간다운 질서를 찾아가는 성찰과 결단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대통령과 교육감과 교장과 교사, 대학 총장과 교수와 사교육계 종사자들, 세상의 모든 부모된 사람들이 모여 이 사건을 두고 모성 회복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야 하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사회적 존재’로서의 감각을 회복하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될 때 괴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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