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1.06.09 10:33 수정 : 2011.06.09 13:46

男과장 S의 오피스 메아리

얼마 전 대학 후배를 만났다. 학창시절부터 넉넉한 성격과 특유의 유머로 항상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친구라 모처럼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술이 적당히 오를 무렵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그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형, 형도 여직원 싸고돌아요?” 팀장이 전화했는데, 그 팀 여사원이 감기 기운이 있어 다음날 병원에 들렀다 오니, 아침 업무 대신하러 일찍 나오라는 지시였다.

“야! 여자고 남자고 아프면 그런 거지.” 가볍게 달랬지만 후배는 한숨을 푹 쉰다. 그의 얘기로는, 1년 전 함께 일하던 남자후배가 회사를 그만두며 신입으로 여직원이 들어왔는데, 예쁘장한 외모에 애교도 있어 본부장이고 팀장이고 무척 귀여워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여직원에게 주어진 팀 막내의 서무·잡무가 있는데, 본인은 이런 허드렛일 하려고 입사한 게 아니라며 안 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일은 ‘내일모레면 과장’인 후배에게 떠넘겨졌다. “다른 팀 후배들 보기에도 창피해 죽겠어요.” 짐 나르기는 기본이고 정수기 물받이와 공기청정기 필터까지 청소하고 있다고. 후배는 입사 뒤 2년 동안 도맡았던 일을 다시 하게 된 셈이었다.

그녀의 ‘여우짓’은 다른 여직원들에게조차 공분을 샀다. 다른 여성들도 맡아서 몇년간 해온 일인데 신입만 임원에게 애교 떨어 특혜를 받았다는 느낌을 준 것. 여직원들이 팀장에게 항의하기까지 이르렀고 부서 분위기는 엉망이 됐다고 한다.

내가 모시던 팀장도 ‘여성 배려형 인간’이었다. 특히 엠티 가면 심해졌다. “자, 이런 데선 남자들이 하는 거야!” 설거지와 청소는 기본이요, 온갖 심부름이 남직원들에게 떠넘겨졌다. 물론 여성 배려형 팀장은 손 하나 까딱 안 했다. 방도 여직원이 우선이었다. 전망 좋고 쾌적한 방은 여직원, 직급 높은 팀장, 차장들이 차례로 차지했고 후배 남직원들은 이불 보관하는 작은 방에서 새우처럼 잤다. 5년간 엠티에서 나를 비롯한 ‘짬 안 되는 남직원’들의 방은 창문 있었던 적이 없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서 여직원들은 허드렛일을 으레 남직원 몫이라고 여기게 됐고 처음에 고마워하던 여직원들도 나중엔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머슴이냐?” 남직원들은 울분을 터뜨리면서도 좀스러워 보일까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상관이 어여삐 감싸주는 여직원들은 선배 남직원을 은근히 무시하기도 한다. 내일모레 마흔인 고교 선배는 20대 중반인 여사원에게 임원이 지시한 물품주문을 전달했다가 본인이 바쁘니 직접 주문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회의실로 불러 주의를 주는데 갑자기 임원이 들이닥쳤다. “무슨 일이에요?” 임원이 자초지종을 묻자, 여직원은 울음을 터뜨렸다. “앞으로는 상사로서가 아니라 동료로서 직원들을 대하세요.” 선배는 임원에게 훈계를 들었고, 여직원은 다시 명랑한 태도로 돌아왔다. 배신감과 울화를 못 견딘 그 선배는 결국 사표를 던지고 경쟁사에 들어갔다.

□□기업 과장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男과장 S, 女과장 S의 오피스 메아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