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과장 S의 오피스 메아리
말은 말로 들으란 말이다
여자 ㄱ, 여자 ㄴ, 남자 ㄱ은 지금 수다중이다.
“지난 주말에 뭐했어?”, “ 요새 캡슐커피가 인기던데 말야~.” 시시콜콜 희희낙락 어쩌고저쩌고~.
그때다. 남자 ㄴ이 다가온다.
“다들 안녕~ 주말 잘 지냈어? ^^ 수고들 해!”
사라져 버린 남자 ㄴ의 뒷모습을 보며 여자 ㄱ이 말한다.
“와! 남자 ㄴ, 요새 운동하나봐. 몸 좋아졌는데~!”
얼마 뒤 여자 ㄱ은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 여자 ㄱ이 남자 ㄴ에게 반했다는 둥, 실은 오래전부터 여자 ㄱ이 남자 ㄴ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둥, 나이도 많은 여자 ㄱ이 젊은 남자를 밝힌다는 둥…. 꼬리를 무는 소문으로 여자 ㄱ은 꼼짝없이, 나이도 많은 주제에 남자 몸이나 밝히는 색녀가 돼버린 거다.
모든 문제는, ‘남자’ ㄱ의 이상한 언어해석 능력과 가벼운 입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아무리 ‘화성에서 온 남자님’이시지만, 대체 “몸 좋다”라고 말한 팩트를 상대방과의 ‘섬싱’을 바라는 상상력으로 해석해 버린 건 지나친 비약이다. 게다가 ‘금성에서 온 여자님’에게는 크나큰 상처가 되기도 한다. 남자 ㄱ한테 따지러 갔더니, 변명이 더 가관. 사람이 말로 전달하는 것은 전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의 20%밖에 안 된다나. 나머지는 뭐 “뉘앙스가 어쩌고, 분위기가 어쩌고, 태도가 어쩌고” 하며 이건 완전히 적반하장이다. 그날 이후 여자 ㄱ은 남자 밝히는 여자에서 한발 더 진보(?)했다. 남자한테 따지고 드는 드센 여자에, 동료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교성 없는 막막한 여자로 낙인찍혔다.
남자 ㄷ의 사연도 기가 막히다. 얼마 전 부서 직속 후배로 여자 ㄷ이 들어왔다. 남자 ㄷ은 싹싹하고 활기찬 여자 ㄷ이 착해 보이기도 하고, 막내 시절 서럽고 힘들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래서 여자 ㄷ에게 잘해줘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술 먹자고 하면 부담스러울 거 같아서, 기회를 봐 차나 한잔하자고 말을 건넨 것이 화근이었다. 그 다음날 회사에 남자 ㄷ은 순진한 여자 신입사원에게 흑심을 품고 있는 늙다리 바람둥이로 소문이 쫙 나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진짜 흑심이나 품고 있었으면 억울하지나 않았겠다는 남자 ㄷ이다. 직장인의 80%가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신다는데! 차 마시면서 회사생활 이야기도 하며, 어려움도 헤아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했다는데. 차 한잔하잔 소리가 어떻게 작업 멘트로 들린단 말인가? 내가 이상한 거야? 아! 이 세상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자 언어, 여자 언어를 다시 배워야만 하는 걸까? 한글 뗀 지가 언젠데, 이제 와 다시 화성말과 금성말을 배우려니 힘들다. 님들아, 제발 말을 말뜻으로만 이해하자. 왜 자꾸 깊은 의미들을 부여하고 그러십니까?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아직도 우리에겐 해결 못한(안 하고 있는 게 더 맞겠다) 많은 언어들이 있지 않습니까? 한국말, 좀 편하게 쓰고 삽시다. 제발. ○○기업 과장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