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9.29 14:19
수정 : 2011.09.29 14:19
[매거진 esc] 男과장 S의 오피스 메아리
모든 기업은 미래 발전을 위해 혁신과 열정을 강조한다. 하지만 직원이 바라보는 혁신활동들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단연 으뜸은 사람, 특히 임원이다. 조직은 위로부터 변화하지 않으면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보통 40대 중반 이후의 베테랑들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고, 대개 슬하에는 대학생이나 수험생 자녀들을 두고 있다. 현재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과를 거뒀으며, 대외적으로 표출하는 충성심도 남다르다. 문제는 이들이 높은 지위에 오른 뒤, 모험을 두려워하고 자리 지키기에만 매진한다는 데 있다. 이런 임원들을 ‘간장게장’이라고 부른다. 맛있어서 ‘밥도둑’이라고 불리는 간장게장과 달리 이들은 그냥 ‘월급도둑’이다.
소비재기업의 마케팅 임원인 박 상무는 신제품 개발에 유독 예민하다. 신제품을 내놓으려면 개발비와 광고비, 판촉비 등 큰 규모의 자금이 투입되는데, 수익성은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실적을 달성하지 못해 본인이 책임을 지게 되므로, 신제품 기획안이 올라오면 트집 잡기에 혈안이 된다. 경영진이 신제품 개발에 대해 물으면 박 상무는 실무 직원들의 무능함만을 탓한다.
비전문가가 아는 척 고집을 부려 일을 지연시키는 경우도 있다. 중공업 기업에 근무하는 오 이사는 인사담당 임원인데 어쩌다 보니 올해 사회공헌 업무를 함께 맡게 됐다.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실무진 앞에서 꿀리기 싫었고 예산 마련도 부담스러웠다. 실무 직원이 활동 기획안을 낼 때마다 오 이사는 ‘사회공헌의 의의가 뭐냐’는 원론적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본인이 답하는 걸 즐겼다. 처음에는 경청하던 직원들도 그의 선문답을 들으며 “예산 마련 두려워 통과 안 시키는 것 뻔히 아는데,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것 봐주기도 지겹다”고 푸념한다.
가장 골치 아픈 임원은 업무에 대한 눈높이는 에베레스트인데, 예산은 청계산인 경우다. 의류기업의 커뮤니케이션실을 담당하는 원 이사는 기업홍보 관련 영상, 웹사이트, 책자 등을 최고 수준으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실무진이 고생 끝에 그에 맞는 외부업체들을 접촉하자 이번엔 금액을 과도하게 후려치라고 지시했다. 돈 투자한 만큼 품질이 나오니 할인금액은 수위를 조정하자고 팀장이 건의했다. “그렇게 주인 의식 없이 회삿돈을 함부로 쓰니 매번 예산이 구멍나는 것”이라는 면박이 돌아왔고,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치자 이번엔 업체 관리를 못했다고 팀장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갈등이 단순히 현상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복지부동형 눈치제일주의’ 기업문화를 만든다는 데 있다. 이를 해소할 방법은 단 하나다. 사주(오너)나 최고경영자나 수시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임원의 역량과 실적을 체크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소신 있는 부하 직원들이 장렬하게 내부고발하는 수밖에 없다. 자살특공대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
□□기업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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