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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3 10:59 수정 : 2011.10.13 10:59

女과장 S의 오피스 메아리

야밤에 걸려온 친구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아, 회사 더 이상 못 다니겠어. 비전이 없다.” “취했냐? 아주 배가 불러 헛소리하는구먼. 먹고살기도 어려운 판에 비전은, 빨랑 집에 가서 발 닦고 잠이나 자셔.” 혀를 차고 전화를 끊긴 했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짐작이 돼서였다. 그는 나와 동갑인, 알 만한 대기업의 여자 과장이다. 얼마 전 그 회사 회장님께서 여성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위한 특별 행사로, 계열사의 여자 과장 이상 직원들과 점심회동을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친구는 오히려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8개 계열사에서 모인 여자 과장 이상의 임직원은 15명이 채 안 됐다. 최고 직책은 부장이고, 그나마 그분은 회장의 먼 친척뻘이었단다. 승진에 목매는 것은 아니지만, ‘여자로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선배와 친구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남 얘기가 아니다. 너네 회사는 어떠냐”며 여자가 회사에서 살아남은(?) 경우의 수를 따져봤다. 진짜 없다. 간혹 이사님, 상무님이 한 분 계시지만 오너의 딸 아니면 친척이 대부분이다. 사원부터 시작해서 임원이 된 사례는 정말 드물다. 오죽하면 여성 임원이 되면 뉴스거리가 되겠는가?

선배는 나에게 ‘배터리 이론’을 아느냐고 물었다. 사랑도 배터리가 다되면 채워주듯이, 사람도 일할 때 필요한 배터리가 있는데, 그게 남자보다 여자가 쉽게 고갈된다는 거다. 더 많이 집중하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은 분명 일 잘하는 여자의 장점이다. 그러나 배터리 안배를 잘 못한다. 힘이 다되어가는 것 같으면 알아서 충전도 하고,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잘 관리를 해야 하는데,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확실히 그런 힘 조절이 부족하다는 거다. 한껏 일하다, 한순간에 방전. 뿐만인가, 여자는 힘쓸 곳도 많다. 직장에서 집에서 시가에서 여자들의 배터리는 쭉쭉 닳는다.

그럼, 배터리가 방전되면 어떻게들 하시나? 그렇다. 새 배터리로 갈아 끼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방전되어 있는 배터리를 신경쓰기보다는 빨리 새 배터리로 교체한다. 세상에는 젊고, 신선한 아이디어 가득한 건강한 새 배터리들이 널렸다. 어느 조직이 방전된 배터리에 신경쓰겠는가? 좀 울적하다.

답답한 건 그게 아니다. 문제는 새 배터리를 언제 갈아 끼울 것인지, 어느 배터리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선택하고 고르는 사람 대부분이 남자라는 것이다. 여자들한텐 그런 선택권조차 없다는 게 답답하다는 거다. 선배는 그게 ‘남자들의 정치’라고 했지만 선뜻 동의하기 어려웠다. 선배의 해석은 더 가관이었다.(참고로 선배는 남자다.) 여자들은 눈앞의 일에 집중하고 남자들이 더 거시적으로 본다나? 그래서 큰 그림 보는 정치는 남자들이 더 잘하는 거란다. 음… 그래서, 우리나라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인 건가? 어쩜 남자들은 여성이 정치도 더 잘할까봐 처음부터 배제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것도 안 하면 남자들은 할 일이 없지 않은가. 왠지 음모론이 당기는 날이다.

00기업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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