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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2.08 15:55 수정 : 2011.12.08 15:55

女과장 S의 오피스 메아리

아…. 올해가 또 이렇게 간다. 뭐 제대로 한 것 없고, ‘수애병’에 걸렸는지 마땅한 기억조차 없다. 매년 쓰는 내년 사업계획서도 낯설고, 내가 쓴 것이 분명한 2011년도 업무 보고서도 새롭다. 올해 변화가 있었다면 이 꼭지의 쓸거리를 생각하기 위해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된 것 정도랄까?

얼마 전 회식자리에서 우연히 혈액형 이야기가 나왔다. 활발한 막내를 보면서, 성격도 좋고 분위기도 잘 맞춘다며 O형 아니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O형이었던 막내가 신기해하자, 회식자리는 전 사원의 혈액형 탐구 시간으로 변했다.

평소에도 한 까탈 하시는 디자이너 이 대리는 누가 봐도 B형이었다. 자기한테 무슨 손해날 상황이라도 생기면 항쟁을 불사하는 불꽃같은 그녀의 성격은, B형의 그 성질 그대로였다. 이 대리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더니, 자긴 소심한 A형이란다. 쉽게 상처 받는 성격이니깐 앞으로는 좀 알아서 심한 말은 자제해 달라시는 게 아닌가? 순간 거짓말하나 싶었지만, 또 한편으로 자기가 화내고 혼자 삐치는 걸로 봐서는 A형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부장이 화두에 올랐다. 하루 종일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말 많고 쪼잔한 부장은 분명 A형일 거라 모두들(말은 안 했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알랑방귀 박 과장이 부장님처럼 자상하고 잘 챙겨주시는 분은 A형이실 것 같다고 말하자, 부장은 미소 지으며, 자신은 흔치 않은 혈액형이라며 잘난 척(?)하시는 게 아닌가? 평소 얼뜬 짓을 잘하는 부장의 행동을 봤을 때, 바보 아니면 천재라는 AB형이 분명했다. AB형은 아웃사이더 성격에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나름 신비한 면이 있는 혈액형인 줄 알았는데, 아침에 먹은 라면이 짜네, 와이프가 어제 10시에 들어왔네, 아들이 이번 시험에서 80점을 받았네 하며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는 부장이 AB형이라니…. 흐흠 왠지 안 어울렸다. 그러면서도 부장의 좌우명 ‘나에게 폐 끼치지 마라, 나도 당신에게 피해 안 주겠다’는 다소 의외의 가치관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 ‘공든탑’이라 부르는 양 대리의 또다른 별명은 ‘욱대리’였다. 평소에는 이런 천사가 없다가 별것도 아닌 일에 욱해서 쌓아놓은 공덕을 무너뜨린다고 해서 생긴 별명이다. 다들 양 대리의 혈액형은 분노의 O형일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성격 좋은 O형은 솔직하고 불의를 못 참고, 경쟁에 강한 모두의 워너비 혈액형 아닌가? 이번에는 맞겠지 하며 양 대리에게 조심스럽게 O형이냐고 물어봤다. 결론은? 역시나 ‘노’였다. 공든탑 양 대리는 B형이었다. 그러면서도 양 대리는 자기가 진짜 O형같이 보이냐며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것이었다. 이 반응은 전형적인 B형에게 나타나는 반응이다. 진짜 B형이 맞나 보다. 그럼 그동안에 보여줬던 건 뭐지, B형의 변덕스러움이었나? 아 정말이지 누군가를 안다고 착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나 보다.

하긴 ‘내 배로 낳았지만, 대체 난 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우리 엄마의 이야기를 굳이 들지 않아도,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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