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3.07 17:06
수정 : 2012.03.07 17:06
[매거진 esc] 女과장 S의 오피스 메아리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저 능력자가 왜 여기 있는 걸까? 대한민국 명문 사립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교환학생으로 아메리카에서 2년씩이나 능력을 갈고닦은 인재다. 얼굴까지 예쁜데다 성격도 싹싹하다. 아니 이런 우수한 인재가, 우리 부서에, 그것도 나 같은 만년 찌질이 과장한테 어울리는 신입사원인가?
의구심이 ‘대체 왜 회사에서는 저 신입사원을 우리 부서에 배치했을까? 나를 쫓아내려는 계략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으로 확장될 무렵, 나와 같은 시기에 신입사원을 배치받은 박 과장에게 호출이 왔다.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심지어 박 과장네 신입사원은 토익 980점에, 무슨 경시대회에서 1등 하고, 대학 동아리 때 무슨 마케팅공모전에서 상도 받고, 뭐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박 과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드디어 떠날 때가 되었나봐, 나의 소임은 이 친구가 나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때까지겠지?”라며 볼살을 출렁이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잘하면 울겠다 야~ 뭐, 빈틈만 안 보이면 되지 뭐”라며 박 과장을 다독였지만, 나도 뭐랄까, 저 신입사원이 밀고 들어오면 난 조용히 떠나리라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됐다.
몇 주 뒤 박 과장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자기가 매운 닭발을 쏘겠다며 회사 앞으로 나오라는 거였다. 갔더니 벌써 거나하게 취한 박 과장이 신이 났다. “푸하하, 우리 신입사원 있잖아~. 그 친구 별명 생겼다. 뭔지 알아? 오타의 왕자야. 보고서에 오타는 기본이고, 숫자 확인도 제대로 못해서 내가 매번 보고서를 두세 번이나 확인해 줘야 한다고. 얼마 전에 부서 워크숍을 갔는데, 휴대용 가스버너 사오라고 했더니, 딱 가스버너만 사왔더라. 부탄가스는 당연히 같이 사와야 하는 거 아냐? 그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하하하.”
스펙의 왕자에서 하루아침에 오타의 왕자로 떨어진 신입사원 덕분에 그동안 박 과장을 옥죄어 왔던 불안감이 안도감으로 바뀌었나보다. “아우, 쟤를 언제 가르쳐서 사람 만드니. 나 아직 5년은 문제없다고, 하하하하하.” 술에 취하니 박 과장의 말이 바뀐다. “문제없을 거야, 흑흑. 문제없어야 한다고, 흑흑.”
그래 제발 문제없어야 한다. 능력자 신입사원들아 천천히 따라오라.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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