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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문 3대손, 미국 간 까닭. 남궁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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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김민아의 플레이어스
‘세계 야구 견문록’ 도전하는 전 두산 연습생 남궁훈 지난해 9월 두산 베어스는 남궁훈(27·사진)을 방출했다. 남궁훈? 야구팬조차 생소한 이름. ‘신고선수’(이른바 연습생)로 두산에 3년간 있었던, 말 그대로 ‘무명선수’다. 그의 수식어를 찾는다면 우리나라 ‘유일’의 3대를 잇는 야구선수 정도? 그런 그가 지금 미국 독립리그에서 새 꿈을 향해 뛰고 있다. 그의 작은할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언더투수 남궁택경(작고·철도청 야구단 출신). 아버지 남궁성우(51·홍익회 야구단 출신)도 언더투수로 활동했다. “2대는 종종 있지만, 3대는 드물죠. 아무래도 두분 덕분에 대학, 상무에 두산까지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미국에서는 누구 아들도 아닌 그저 투수 ‘HOON’이에요. 방출되니 외려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해지더라고요. 머릿속엔 ‘야구와 영어’라는 단어만 떠올랐죠.” 7년 전 대만 대학국제대회에 참가했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대만 거지가 길에서 그를 붙들고 떠들어댔는데, 영어였다. 그것도 아주 유창한. 곧바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대만 거지 때문에 영어에 빠져든 이 괴짜는 지난해 홀연히 응시료 3500달러를 내고 애리조나 윈터리그를 찾아, 미국 독립 3부 리그인 텍사스 노스 아메리칸 리그 소속 화이트윙스와 계약을 맺었다. 190명이 응시했지만 30명만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보직은 미들. 중간계투. 처음으로 아버지·할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난 느낌이었어요.” 한국에서 야구선수로 성공 못한 그는, 왜 미국까지 가서 다시 야구공을 잡았을까. “바라는 건 딱 한가지예요. ‘마흔’까지 야구 하는 거. 돌아와서는 책을 쓸 생각이에요. 이 나라는 이런 야구 스타일이다, 하는 걸 직접 느끼고 글로 써보고 싶어요. 최대한 여러 나라를 가야죠. 야구 여행자? 야구 견문록? 내년엔 이탈리아에 있을지도 몰라요.” 최고구속 135㎞를 던지던 연습생 투수. 공은 결코 빠르지 않지만, 배짱 있게 더 느린 커브를 던지고 더 과감하게 떨어지는 싱커를 던진다. 그의 인생 같다. 더 느리게 가려는 인생도, 역회전에 걸려 떨어지는 싱커처럼 거꾸로 가는 인생도 이제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다른 사람과 삶의 속도 비교하기를 멈추자 그에게 행복이 찾아왔다. 야구공 하나를 벗 삼아 세상에 발을 디딘 셈이다. “미국에서 인터넷을 연결하고 나니 쌓였던 이메일이 쏟아지더라고요. 제가 사회인 야구의 희망이 돼 있더라고요. 사업에 실패한 아저씨부터, 윈터리그에 대해 물어보는 사회인 야구선수, 그리고 팬레터 보내는 고등학교 여학생까지. 이미 저는 그들에게 삶의 증거가 되고 있는 거죠.” 그는 미국에 가서야 최고구속 142㎞를 찍었다. 10년 뒤, ‘마흔살’ 남궁훈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엠비시 스포츠플러스>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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