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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31 11:22 수정 : 2011.06.02 16:29

‘골프’는 좌석공간이 넓고 해치백이라 공간활용성이 좋은 실용적인 차다. 경유차임에도 주행시 소음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매거진 esc] 이경섭의 자동차 공인중개소
골프와 미니의 딜레마…정답은 당신 마음속에

‘골프’가 좋은가, ‘미니’가 좋은가. 세상에 이렇게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라니.

직업이 직업인지라 주변사람들로부터 “어떤 차가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많다. 좀 그럴듯하게 포장해 자동차 구매 관련 컨설팅이라고 해두자. 이런 의뢰를 받을 때마다 알량한 지식을 자랑하고파 안달이 난다. 연비는 어떻고 승차감은 어떻고 핸들링은 어떻고 필요에 따라선 감가상각에 따른 중고차 가격이나 유지관리에 관한 비교 차트까지 인용하면서 좔좔 읊어댄다. 그리고 화룡점정. “결론적으로 말해 가격 대비 가치로 봐도 이게 딱이지. 에헴.” 명쾌한 컨설팅 끝. 하지만 이런 무료 상담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 무릎팍 도사를 찾아온 연예인처럼 흔쾌히 “고민 끝~!”을 외치는 게 아니라 상담자들은 듣는 와중에는 고개를 주억거리다가도 뭔가 미진한 얼굴로 입술을 꽉 깨물며 돌아간다. 그러고는 상담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차를 사서 끌고 다닌다. 상담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분명 문제가 있다. 바로 이런 문제다.

연비·승차감·가격 줄줄이 읊어도, 글쎄…

어느 날 후배가 찾아왔다. 패션잡지 기자로 일하는 20대 후반의 여성. “선배, 미니하고 골프 중에서 뭐가 나아요?” 옳거니! 이런 질문쯤이야. 나는 곧 능숙한 셰프처럼 재료를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탕탕 자르며 완벽히 준비된 컨설팅을 시작한다.

골프가 좋을 거 같은데? 골프는 작지만 실은 중형차 못지않게 좌석공간도 넓고 해치백이라 실용성 면에서는 두말할 나위도 없지. 분할 폴딩이 가능한 뒷좌석을 접으면 짐 싣는 공간은 거의 경트럭 수준이 된다고. 너처럼 빅백에 잡지며 자질구레한 소품을 잔뜩 넣고 다니려면 공간 활용성이 좋은 차를 골라야 한다는 건 알지? 서스펜션은 독일차들이 대개 그렇지만 단단한 편인데 아주 딱딱한 정도는 아니니까 그다지 불편은 없을 거야. 경유차라서 시끄러울 거 같다고? 모르는 소리 하지도 마. 공회전 소린 좀 시끄러울지 모르지만 실제 달리는 동안엔 전혀 느끼지 못한다고. 게다가 요즘 같은 고유가 시대엔 연비 좋은 디젤이 대세야. 뿐만 아니지. 디젤은 토크가 좋아서 시내에서 차선 바꿀 때 순간 가속이 얼마나 재밌는데. 토크와 마력이 어떻게 다른지는 알지? 뭐 어려우면 그런 건 몰라도 괜찮아. 운전하고 다니는 데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

‘미니’는 귀엽고 앙증맞아 보여도 사실상 스포츠카에 가깝다. 예쁜 걸로 따지면 이만한 차도 없지만 서스펜션은 딱딱하고 시트는 불편한 편이라고 한다.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미니? 그래. 예쁘긴 하지. 예쁜 걸로 따지면 그만한 차도 없어. 그러니 강남 패션 피플들은 죄다 미니를 끌고 다니지.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지. 미니는 사실상 스포츠카라고. 그저 귀엽고 앙증맞은 여성용 차가 아니란 말씀. 미니 혈통엔 레이싱카의 디엔에이(DNA)가 흐르고 있어. 너, 실제 타보기나 하고 하는 얘기야? 하긴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그 딱딱한 서스펜션에 불편한 시트, 네 가냘픈 손목으로 운전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거라고. 남들 시선 따위가 뭐가 중요해? 어차피 차는 내가 타고 다닐 건데. 그래서 말인데… 골프는 지금까지 무려 3000만대나 팔린 차야. 실로 대단한 베스트셀러지. 많이 팔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니겠어? 요즘은 너무 많이 팔려서 좀 시크한 맛은 떨어졌지만 불과 3년 전만 해도 진짜 레어 아이템이었는데. 뭐, 그래도 괜찮아. 여전히 합리적이고 개성있는 사람처럼 보이거든. 게다가 좀 영리해 보인달까. 그런 이미지가 풍기지. 모양도 질리지 않고 중고차 값도 괜찮으니까 가격 대비 가치로 따지자면… 응? 왜 그래.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 거야?

후배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뭔가 마뜩잖아한다. 가격 때문인가? 잘나가는 패션기자께서 무슨 걱정. 게다가 이번엔 승진 기념으로 아빠가 사준다면서? 후배를 돌려보내고 내가 그런 상담을 해준 사실조차 잊어갈 무렵. 회사 주차장에는 언젠가부터 못 보던 빨간색 미니가 출몰하기 시작한다. 컨설팅 실패.

주인장 마음 헤아리고 팩트로 설명 마무리

조금만 생각해보면 실패는 예견된 거였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면서 ‘객관적’이랍시고 훈계만 늘어놨으니. 정신과 의사의 첫번째 할 일이 잘 들어주는 거라던데, 떠벌리기만 하는 컨설턴트라니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다. 입장을 바꿔보자. “뭐가 더 좋을까요?”라고 묻는 사람은 “이게 더 낫지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는 어느 쪽. 그쪽에 대해 확인 도장만 잘 찍어주면 되는 거다. 여기엔 ‘객관’ 따위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상대의 선택에 일말의 의심도 없는 확신을 심어줘서 날 듯한 기분으로 그 차를 사게 만드는 것. 이거야말로 자동차 구매 컨설턴트가 지녀야 할 모범 자세다. 세상에나, 이런 직업이 없기 망정이지. 하긴 백화점 피팅룸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이 옷 어때? 아까 그게 좀 더 낫지?”라고 묻는 아내에게 잔뜩 피곤한 얼굴로 “그래. 괜찮네”라거나 “그게 그거 같은데”라고 대답하는 한심한 주제이고 보면 컨설팅이 다 뭐야.

둘 중 하나 골라달라는 질문은 개와 고양이 중에 뭐가 낫냐고 묻는 것과 같다. 개는 귀찮고 고양이는 털이 날리니 뭐가 좋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몰티즈와 치와와 중에 뭐가 낫고 러시안 블루와 스코티시 폴드 중에 뭘 권해줄 건가 말이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다. 마음에 내키는 것을 사라고 권하는 것. 그래, 그거예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세요.

미니쿠퍼 vs 골프 2.0 TDI
두개 중 어떤 게 좋겠냐는 질문 외에도 “이거 어때요?”라는 상담에도 마땅히 대답은 같아야 한다. “이야, 눈썰미 좋은데!”라거나 “그래. 바로 그 차가 너한테 딱이야”라고 대답하는 것.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그게 좋은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팩트를 가지고 설명해야 한다는 것. 수많은 실패 사례를 겪고 보니 그렇더란 말이다. 골프를 사야 할지 미니를 사야 할지, 수입 소형차를 사야 할지 국산 중형차를 사야 할지, 이런 질문은 정말이지 너무 쉽고도 어려운 일이다. 어차피 드림카는 각자 마음속에 있는 거니까 말이다.

글 이경섭/월간 <모터 트렌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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