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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오디세이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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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오디세이 ③ 기원전 1200년경 ‘트로이아 전쟁’의 숨겨진 진실
파리스의 헬레네 유혹 사건인가
풍요를 탐한 그리스의 침략인가
진화된 형태의 해적질인가 서구인들 상상력의 모든 것
‘일리아스’와 ‘오뒤세이아’
‘아이네이스’ 탄생의 모태로 기원전 1200년경, 전쟁이 터졌다. 10만여명의 그리스인들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1186척의 배를 타고 트로이아 해안으로 진격했다. 저항의 동맹이 구성되어 이에 맞섰다. 신의 아들이라 불리는 쟁쟁한 영웅들이 격돌한 별들의 전쟁. 수많은 전사들이 죽어 새와 개들의 먹이로 쓰러져 갔다. 그렇게 10년 동안 계속된 전쟁은 그리스 연합군 쪽의 목마 작전 한 방으로 끝났다. 트로이아는 불에 타 폐허가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참히 학살되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은 절망 가운데 배에 올랐고, 새로운 트로이아를 건설하겠다며 고향을 떠났다. 반면 승리를 거둔 그리스 연합군은 막대한 전리품을 챙겨 고향으로 뿔뿔이 흩어져갔다. 바로 트로이아 전쟁 이야기다. 10년이 지나 돌아온 용사들을 맞이한 고향 땅에선 환영과 위로의 축제가 벌어졌겠다. 그들은 푸근하고 얼큰한 분위기에 취해 몸과 맘에 짙게 새겨진 전흔을 무용담으로 펼쳐내었을 터. 사람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이야기를 들었겠다. 시간이 지나 역전의 용사들은 모두 죽었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세대에게 전설로, 신화로 뭉게뭉게 피어나 꾸준히 전해졌다. 그렇게 400여년. 마침내 기원전 8세기경, 전설의 완결편이 나타났다. 호메로스는 전쟁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 초점을 맞춘 후, 전쟁 전체를 엮어 <일리아스>를 썼고, 전쟁이 끝난 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도착한 오뒤세우스의 모험을 <오뒤세이아>에 담았다. 두 작품은 대단하다. 플로베르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은 <일리아스>이거나 <오뒤세이아>다.” 두 작품 안에는 서구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깃들어 있다는 말. 이런 말도 전해진다. “호메로스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을 시작하며 점차 어른으로 자라날 때 곁에 서 있고, 우리가 활짝 피어날 때, 함께 피어난다. 우리는 늙을 때까지 결코 그를 싫증내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곁에서 치워두자마자 곧바로 그를 향한 갈증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호메로스가 갖는 한계만큼이 우리 삶의 한계라고.” 대체 트로이아 전쟁은 왜 일어났을까?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가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를 찾아갔다가, 그의 아내 헬레네를 유혹하여 도주하자, 아내를 빼앗긴 메넬라오스가 아가멤논과 그리스 연합군을 구성하여 트로이아를 공격하면서 전쟁이 터졌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트로이아 사람들이 온통 파리스다. “트로이아인들과 멋진 경갑을 찬 아카이아인들이 저런 여인을 두고 기나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었다 해도 비난할 게 없소. 정말 놀랍지 않소?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니, 죽음을 모르는 여신을 닮았소이다.” 성채로 올라오는 헬레네를 보고 트로이아의 원로들이 한 말이다. 그렇다면 참으로 어이없다. 한갓 애송이의 사랑놀음이 나라를 존망의 위기로 몰아넣다니! 트로이아의 최고 영웅 헥토르는 파리스를 엄하게 꾸짖는다. “못난 녀석, 겉모습만 잘났지, 계집에 정신 나간 사기꾼 같으니! 넌 태어나지 않았어야 했다. 결혼을 하기 전에 죽었다면 좋았다! 힘도 없고, 폐부 속에 투지도 없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네놈이 믿음직한 전우들을 다 모아,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 전함들을 타고 대양을 건너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창잡이 용사들의 며느리를 머나먼 땅에서부터 이리로 데려왔단 말이냐? 아버지에게, 이 도성에, 모든 백성에게 크나큰 고통을, 그리고 악의를 품은 원수들에게는 기쁨을, 너 자신에게는 치욕을 가져온 것이란 말이냐?” 호메로스는 이 전쟁을 사랑에 빠져 신의를 저버리고 나라를 위태롭게 한 얼간이와 죄악을 벌하려는 당당한 용사의 맞짱 대결로 그려놓았다. 메넬라오스는 이렇게 외친다. “수호신 제우스여, 저에게 먼저 못된 짓 한 자에 대한 앙갚음을 허락하소서! 지체 높은 파리스를 제 두 손으로 쓰러뜨리게 하시고, 나중에 태어날 사람들 중 그 누구라도, 손님을 정중히 맞이하여 우의를 베풀어 준 사람에게 못된 짓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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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년 필립-로랑 롤랑이 조각한 호메로스 상.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뒤세이아〉는 본디 해적이었을지도 모를 인물들을 불멸의 영웅으로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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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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