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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21 20:39 수정 : 2011.06.07 11:01

악티움 해전

고전 오디세이 ⑥ 문명과 제국 : 아이네아스의 방패





고전 오디세이
세계를 지배하려던 로마제국
정의와 불의의 담론 밀어내고
‘문명과 야만’이란 이분법 구사

문명충돌땐 ‘악의 축’ ‘환상’ 조작
외부의 적 활용 내부의제 덮어
지금도 정치이데올로기로 ‘유효’

“평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즐겨 만들어 내는 것이 악마라는 환상이다.” (2010년 5월15일치 <한겨레> 사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이 ‘환상’이 서양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환상은 문명과 야만의 구분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원래 ‘야만’(barbarism)은 본래 야만과는 거리가 먼 말이다. 그리스어 ‘바로바로스’(barbaros)는 이해하기 어려운 외국어를 지칭하는 의성어였다. 야만에 해당하는 단어는 촌스러움을 뜻하는 ‘아그리오스’(agrios)라는 말이었다. 이 말 대신에 ‘바르바로스’를 사용한 사람은 이소크라테스다. 그는 “공통 혈통이 아니라 아테네의 교양(paideia)을 지닌 이를 헬레네인이라고 칭하자”고 주장한다. 범그리스를 아우르는 통합 기치로 혈통이 아닌 교양을 들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기준은 본래는 교양이었다. 그런데 ‘헬레네’는 ‘페르시아’에 대비되는 말이기도 했다. 비극시인 아이스킬로스의 말이다.

신성한 트몰로스 산자락에 사는 주민들은/ 예속의 멍에로 헬라스를 위협하고 있노라. (<페르시아인들> 49~50행)

‘헬라스’라는 표현은 페르시아제국에 맞서기 위해 하나로 뭉친 범-그리스를 지칭한다. 그런데 이소크라테스의 헬레네인이 교양인을 지칭했다면, 아이스킬로스의 헬레네인은 ‘자유’(eleutheria)와 ‘민주주의’(democratia)를 지키려는 시민이었다. 그때까지의 문명 담론은 그런대로 받아들일 만하다. 본디 그리스 말에는 문명이라는 표현은 없었고, 대신에 교양이라는 말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페르시아와 전쟁을 거치면서 아테네의 문명 담론은 국내 차원이 아니라 국제 차원의 담론으로 전환한다. 범헬라스주의가 페르시아제국과 충돌하면서 제국주의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제국의 성립과 함께 문명 담론의 성격도 달라진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다. 그는 <아이네이스> 제8권에서 ‘아이네아스의 방패’에 로마를 세계의 통치자이자 우주사의 집행자로 새기면서 문명사적으로 로마가 세계의 지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장면 하나를 읽어보자.


한중앙에 자리하고 있던 여왕은 아이귑토스 방울로 전함들을 지휘하는구나,

아직은 등 뒤에서 노려보고 있는 쌍둥이 뱀들을 보지 못하도다./ 온갖 괴물 형상을 한 신들과 개의 머리를 하고 짖어대는 아누비스가/ 넵투누스와 베누스에 맞서서, 미네르바에 맞서서 무기를 들고/ 덤벼들고 있구나. (…) 갈기갈기 찢긴 외투를 두른 불화(不和)의 여신도 즐기고 있구나./ (<아이네이스> 제8권 697~702행)

백미에 해당하는 장면이다. 전경에는 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가, 배경에는 넵투누스, 베누스, 미네르바, 마르스 신과 같은 로마 신들과 이집트의 아누비스를 포함하여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종류의 괴물들이 우주사적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소위 ‘문명 세계’의 신들이 ‘야만 세계’의 괴신들과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맞서고 있다. 문명과 야만의 대결은 이렇게 해서 본격화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건국 이래 로마를 괴롭혔던 불화의 여신이 이 전투에 함께하고 있다는 언급이다. 원래, ‘안토니우스’와 ‘아우구스투스’는 모두 카이사르의 양아들이자 처남-매부 사이였다. 그래서 이 전쟁은 본시 혈육지쟁이자 동족상잔이고 명백한 내전이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에 클레오파트라가 전면으로 등장한다. 야만과 악의 상징으로서 말이다. 이 전쟁이 내전이 아니라, 천상의 세계를 대신하는 정의의 세력과 온갖 악과 불의의 세력 사이의 전쟁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로마 제국은 이런 문명 담론을 배경으로 선과 정의의 집행자, 곧 세계의 지배자로 정당화되었다. 베르길리우스 본인의 말이다.

기억하라! 로마인이여, [굳건한 기강(紀綱) 위에 세워진] 국권(國權)의 힘으로 인민들을 다스리는 것, (이것은 너희들만의 기술일진저!) 평화의 법도를 수립하는 것, 곧 순종하는 자에겐 관용을, 오만한 자들에겐 징벌을 내리는 것을. (<아이네이스> 제6권 851~53행)

세계에 평화의 법도를 수립하는 것이 제국 로마의 천명이라고 한다. 근대 제국주의의 기원이 여기에 있다 하겠다. 어찌되었든 ‘아이네아스의 방패’는 문명 담론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다른 장면 하나를 더 보자.

바로 여기에 아우구스투스가, 이탈리아인들을 독전하는 카이사르가 (…)/ 높이 솟은 고물에 우뚝 서 있도다. (…) 맞은편에 야만(barbarica)의 전리품과 다양한 무구(武具)와 함께 안토니우스가,(…)(아! 저건 아닌데) 아이귑토스에서 만난 애인도 함께 있도다. (<아이네이스> 제8권 678~688행)

호각지세의 긴장이 팽팽하다. 하지만 베르길리우스는 지극히 편파적이다. 한쪽은 정의를 수호하는 선의 축인 반면, 다른 한쪽은 불의를 숭상하는 악의 축으로 새기고 있기에. 전자는 문명 세력으로 격상하고, 후자는 야만 세력으로 격하한다. 제국의 정당화를 위해서다. 이를 위해 베르길리우스는 ‘전쟁과 평화’, ‘선과 악’,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을 구사한다. 물론, 그가 ‘정의와 불의’, ‘신의와 배신’, ‘자유와 억압’, ‘불화와 화합’과 같은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로마 공화국의 역사를 다룰 때에는 이들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국의 묘사에서 그는 ‘정의와 불의’의 담론을 ‘문명과 야만’의 하위 개념으로 격하시켜버린다.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새로운 제국 성립은 어쩔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정의와 불의’ 개념 쌍은 도시국가 규모로 운영되었던 공화국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와 외교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에 요청되는 기준과 규범들이었다. 그러나 이 개념들은 제국 로마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감당할 만한 크기와 범위의 덕목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도시국가 로마의 내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동원되었던 가치와 덕목들로는 이미 규모 면에서 실질적으로 지중해의 모든 나라와 종족을 지배하고 통치해야 하는 위치로 성장해버린 로마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도시국가 로마의 주요 담론 패러다임인 ‘정의와 불의’ 담론의 상위에 ‘문명과 야만’ 담론을 위치시킨다. 이와 같은 정치의제의 조정을 통해서 로마제국은 정의와 선과 문명의 수호자로 태어난다.

그런데 잠시, 이 대목에서 문명 담론의 위험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지금도 문명 담론은 정치 이데올로기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국의 대내외 정책에서 동원되는 구호들과 그들의 외교정책 전략을 보라. 사태는 이럴 때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른바 ‘문명의 충돌’ 맥락에서 미국과 중국이 서로 자신의 문명이 우월하다고 논쟁할 때 말이다.

안재원/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아니, 우리 사회 안에서도 실은 문명 담론과 같은 부류의 이분법적 구분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요컨대 외부의 적을 통해서 내부를 단결시키기 위해 선의 축과 악의 축과 같은 대립 구조를 이용해서 ‘악마 환상’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지금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마 환상’은 대내적으로는 공동체 내부의 많은 사회적 의제들을 덮어 버리는 동시에 남한과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이 서로를 ‘악의 축’이라 부르는 상황으로 몰고 갈 수도 있기에 위험한 괴물이라 하겠다. 이러한 이유에서 이 괴물이 처음 잉태되는 장면을 소개하였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문명 담론이 학문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정치적으로는 위험한 물건이라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류는 1000년에 걸쳐서 기독교 중심의 서구와 이슬람교 중심의 아랍이 서로를 악의 축이라 부르며 싸웠던 역사와 지금도 다투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른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기에 말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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