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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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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오디세이 ⑨ 함께 부르는 노래의 힘
승리의 환희로 꽉찬 스포츠제전
전사의 용맹을 부추기는 출정식
웅장한 운율의 노래 없었다면…
찬란한 시어로 채색된 영웅들은
대대손손 사람들의 예찬을 받고
시인 또한 길이길이 기억되리니…
광장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흩어진 편린으로 개인을 가두던 원자적인 틀에서 빠져나와 확 트인 공간 속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안절부절못하며 헤매는 군중이 아니다. 함께 할 뜻이 있고, 함께 이룰 꿈이 있기에. 가슴속에 알알이 담아둔 꿈과 욕망은 똑같은 구호를 함께 외치고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를 때, 탐스런 포도송이로 엮여 하나가 된다. 깨져 있던 퍼즐조각들이 꿈틀거리며 거대한 모자이크 그림을 만들어내듯. 권력의 오만과 횡포에 항의하던 촛불들이 어우러져 일어난 우렁찬 함성. 함께 꿈꿀 사람들을 잃은 슬픔을 달래며 부르던 애도의 노래. 그리고 승리를 기원하며 빨간 티를 입고 빨간 뿔을 달고 창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외치던 붉은 악마들의 경쾌한 장단. “대-한민국!” 여전히 귀에 쟁쟁하지 않은가! “오- 필승 코리아-”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개인의 작은 소망들이 공감의 터에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한 욕망으로 분출될 때, 그들은 함께 노래를 부른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리듬과 짧고 간결하게 뇌리에 울려 퍼지는 가사. 감염되듯, 순식간에 번지는 노래는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임을 뜨겁게 확인시켜주는 위력이 있다. 거기엔 시대를 이끌어가는 정신과 군중을 울리는 공감의 정서가 흠뻑 담겨 있다. 그 모임 안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 바깥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가슴 벅찬 감동을 일으킨다. 한 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가 마음을 담아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어찌 이것이 지금 여기의 우리들만의 이야기이겠는가?
서양 문명의 원천을 형성한 그리스에서도 대중들의 축제 마당에는 합창 서정시가 울려 퍼졌다. 기원전 7세기께, 영웅 서사시의 전통에서 벗어나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노래하던 아르킬로코스가 서정시의 세계를 열었을 때, 서정시는 먼저 소규모 집단의 향연에서 낭송되던 일종의 귀족 문화로 자리잡았다. 그의 뒤를 잇는 사포와 알카이오스 등도 역시 독주(獨奏)를 위한 서정시의 작가였다. 서정시가 개인의 독특한 체험과 섬세한 감수성의 표현으로 이해되는 까닭을 주로 그들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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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5세기 그리스에서 제작된 것을 로마인들이 복제한 핀다로스의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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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리스의 서정시는 내용의 서정성에서뿐만 아니라, 형식의 음악성에서 더 큰 특징을 나타낸다. 서사시의 장중한 운율에서 벗어나 경쾌하고 다양한 운율이 개성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서정시다. 서정시인을 일컫는 ‘뤼리코스’(lulikos)는 뤼라(lura)라는 악기와 관련이 깊다. 특히 서정시가 독주의 공연 형태에서 벗어나 합창 서정시로 발전하면 음악성은 더욱 고조된다. 뤼라를 비롯한 다양한 악기 반주가 가사에 덧붙고, 나아가 몸으로 그려내는 춤사위의 리듬이 연극적인 볼거리까지 제공하면서 관객들의 몸을 근질거리게 만든다.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아낸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그리스 세계가 에게해의 주도권을 차지할 즈음, 세 명의 탁월한 합창 서정시인들이 등장한다. 시모니데스(기원전 557~451년), 바퀼리데스(516~451년) 그리고 핀다로스(520~440년경)다. 그들은 축제와 제전을 즐기기 위해 거리로, 광장(agora)으로, 극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위해 노래를 지었고, 흥겨운 연주와 공연을 주도하였다. 한판의 유쾌한 난장을 위해 대중들은 노래가 목말랐겠다. 특히 사람들은 전쟁터로 향하는 젊은 전사들의 사기를 북돋워주는 한편, 전쟁의 승리를 노래하는가 하면, 영웅적인 전사자를 애도해야 했다.
스파르타는 도시국가의 규율을 강화하고 강력한 단체정신을 강화하기 위해 일찍부터 합창서정시의 전통이 있었다. 전쟁터로 나가는 전사들을 향해 “방패를 들고 오든가, 방패에 실려 오라!”라고 참전가를 불러주던 그들이었다. 시모니데스는 그 정신을 살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과 300인의 전사들의 용맹함을 기리는 비문을 서정시의 운율(Elegia)에 담아 새겨 넣었다. “오 이방인이여. 라케다이몬인들(=스파르타인들)에게 전해다오, 이곳에/ 우리가 누워 있다고. 그들의 명령을 오롯이 따랐노라고.” 그의 시에는 영웅을 찬양하는 옛 서사시의 장엄한 주제가 흐른다.
하지만 합창 서정시의 절정에 있는 사람은 역시 핀다로스다. 그는 서정시의 최고 경지에 올랐고, 다른 사람들이 더는 서정시로 시를 지을 맘을 갖지 못하게 할 만큼 화려하게 다양한 운율을 구사하였다. 그리스 서정시의 운율을 모방하여 라틴어의 고유한 음악성을 모색하던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기원전 65~27)는 핀다로스에 관해 이렇게 노래했다. “핀다로스와 겨루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율리우스여, 다이달로스의 솜씨로 밀랍으로 빚어 만든/ 날개를 달고 날다가 팔랑이며 떨어져 투명한 바다에다/ 그 이름을 주고 말리라.”(IV.II) 다이달로스는 최고의 솜씨를 자랑하던 그리스 신화 속의 장인이다. 그는 아들인 이카로스에게 밀랍과 깃털을 빚어 만든 날개를 달아주었다. 바다를 날아 건너가던 이카로스는 태양에 가까이 다가가다 날개가 녹아 떨어져 죽었다. 그가 빠져 죽은 바다는 이카로스의 이름을 따서 이카리아가 되었다. 호라티우스는 핀다로스의 문체가 산 위에서 거침없이 흘러내리며 둑을 무너뜨리는 거대한 격류, 몰아치는 소나기와 같다고 노래했다. 그는 감히 핀다로스의 리듬과 문체를 흉내 내지 못한 채, 핀다로스에 대한 경외심만을 그저 사포의 운율에 담아야 했다. 그런 핀다로스가 훨훨 날아 대양을 건널 수 있는 앨버트로스라면, 핀다로스에게 도전하는 시인은 인공의 날개를 달고 바다를 건너다가 추락하고 말았던 이카로스의 운명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
그는 시인의 역할을 가장 잘 이해한 그리스 시인이었다. “사람들에게 그 무엇보다도 바람이 더/ 필요할 때가 있지, 또 어떨 땐 촉촉한 하늘이,/ 구름이 낳은 비 내리는 딸들이 필요할 때도 있지./ 하지만 누군가가 고생 끝에 훌륭한 일을 해낸다면, 꿀처럼 달콤한 찬가가/ 먼 훗날 이야기될 명성의 시작이리니,/ 위대하고 탁월한 일에 대한 믿음직한 맹세이리니.”(올륌피아 찬가 11) 어차피 죽을 인간이라면, 죽으면 끝나는 인생이라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영원히 살 수는 없을까? 불멸의 명성을 얻는 것이 어쩌면 그 유일한 방법이리라. 내가 죽은 뒤에도 자손들과 온 인류가 내 이름을 기억해준다면, 나는 그들의 기억 속에 대대로 이어져 살아남는 것이 될 테니. 인생은 짧지만, 명성은 긴 것. 호메로스의 영웅들이 그의 노래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들의 의식 안에 살아 있듯이. “승리의 환희는 힘든 경기가 끝난 뒤에 찾아오는 가장 좋은/ 의사. 그리고 뮤즈들의 지혜로운 딸들인 노래는 매혹적인 손길로 그를 위로하나니./ 따뜻한 물이 팔다리를 풀어주는 것을 어찌/ 포르밍크스 반주로 울리는 찬가에 비교하리오./ 언어는 행적보다 더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 은혜의 여신들이 베푸는 행운을 입어/ 혀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퍼 올리는 것.”(네메아 찬가 4)
호메로스가 전쟁의 영웅을 노래했다면, 핀다로스는 당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성대했던 네 개의 스포츠 제전(올륌피아, 네메아, 퓌티아, 이스트미아)의 우승자들을 노래의 대상으로 선택했다. 누굴 선택했는가는 다르지만, 그들은 모두 영웅을 만들고 예찬했다. 밋밋한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들은 바라보고 경탄할 영웅을 갈망한다. 핀다로스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대중들을 앞에 두고 부르는 웅장한 합창 서정시를 지어 대중을 열광시켰고, 승리자의 영광을 한껏 띄워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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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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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전부일까? 거기엔 고도의 노림수가 있다. 영웅이 노래되고, 대중들이 열광하는 동안, 영웅과 더불어 그 노래의 시인도 함께 대중들의 뇌리에 기억된다는 사실. 영웅들은 시인의 언어로 채색되지 않는 한, 불멸의 빛깔을 간직할 수 없다는 사실. 그렇게 시인은 신비로운 존재로 영웅의 창조자가 되어 영웅과 더불어 불멸하게 된다는 사실. 핀다로스는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훗날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노래했다.
“내 작품은 완성되었다…/ … 내 이름은 불멸하리라./ 로마의 힘이 정복된 나라들로 펼쳐지는 어디든,/ 민중들의 입으로 내 시가 읽히리니, 온 세대를 지속하는 명성으로/ 나는 살리라, 영원히…”(<변신이야기> 15.871~879)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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