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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의 1787년 작품으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그려냈다. 그는 법을 어겨가며 탈옥을 감행하지 않고 담담하고 평온하게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였다. 죽음은 그에게 최후가 아니라, 진정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참모습, 즉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는 영혼의 해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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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오디세이] ⑮ 소크라테스가 일깨우는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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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에는 법을 어기면 이익이 되며, 법을 지키면 손해가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욕망을 충족시키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각자 욕망을 채우려고 하다 보면, 갈등이 일어나기 십상이다. 더구나 한정된 양을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할 때, 서로 먼저, 더 많이 차지하려고 거칠게 다투고 싸울 것이다. 이때 인간은, 홉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에 대해 늑대가 된다(homo homini lupus). 곰곰이 따져본 사람들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 욕망을 조금씩 양보하여 권력자에게 맡기고, 그의 통제 아래 들어가 법과 원칙에 따라 사는 것이 전체적으로 더 낫다는 계산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은 근대 사회계약론의 논리가 플라톤의 <국가>에서도 울린다. 불의를 저지를 때 얻게 될 이익과 불의를 당할 때 입게 될 손해를 비교해보니 손해가 더 크다는 계산이 나오자, 사람들은 서로에게 불의를 저지르지 말자고 합의하고 법을 세운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본성을 갖고 있으니 권력을 위탁받은 사람도 그럴 테고, 따라서 그가 법을 세울 때 자기에게 이익이 되게끔 조작할 것이다. 설령 그가 공정하게 법을 세운다 해도 그 법을 지키지 않으려고 하며, 안 지키고도 법에 의해 처벌이 되지 않게끔 손을 쓸 것이다. 본디 법이라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일정 부분 제어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니만큼, 욕망을 채우려고 하다 보면 법과 부딪치게 되며, 따라서 법을 어기며 욕망을 채우되 법에 의해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셈법이다. 여기에서 나오는 결론은 뻔하다. 가장 지혜로운 처신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의롭게 보이면서, 실제로는 교묘히 법을 어기며 욕망을 채우며 이익을 챙기는 것. 단 불의를 저지를 때는 들키지 않도록 조심할 것. 혹시 들키면, 말로써 잘 둘러대고, 돈을 써서 회유하거나 힘을 써서 협박하여 처벌을 피할 것. 정의롭게 법을 지키며 건실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폼은 좀 나겠지만 실리가 없으니, 영리한 사람이 할 일은 아니다. 정의롭게 사는 건 별로 쓸모가 없다. 그런 삶이 좋다면, 왜 사람들이 틈만 나면 부정을 저지르며 불법을 일삼겠는가? 사람들이 정의롭게 행동하고 법을 지키는 까닭은, 잘못 행동하다 재수 없게 걸리기라도 하면 벌을 받거나 망신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만약 절대로 들키지 않고 불의를 저지를 수 있으며, 부정을 저지르고도 언제나 영원히 처벌을 면할 수 있다면, 과연 사람들은 정직하게 행동하며 정의를 추구할까? 이 문제들과 관련해서 플라톤은 ‘귀게스의 반지’를 소개한다. 옛날 뤼디아 땅에 목동이 있었다. 어느 날 양을 치고 있는데, 천둥 번개가 치더니 땅이 갈라졌다. 깜짝 놀란 그는 조심조심 갈라진 틈 안으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청동으로 만든 말이 있었다. 작은 문이 달려 있어, 그 문을 열어 보니 큰 송장이 누워 있었고, 그 손가락에는 반지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살짝 빼서 가져 나왔다. 그런데 그 반지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반지에 달린 보석을 안쪽으로 돌리면 반지를 낀 사람이 보이지 않고, 바깥쪽으로 돌리면 다시 보였다. 그 반지만 있으면 원하는 때에 언제나 투명인간이 될 수 있었다.(II, 359c~316d) 자, 이제 이 반지를 여러분께 드릴 테니, 마음껏 상상하시라. 그리고 솔직하게 대답하시길. 여러분이 상상 속에서 행한 일들은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뿐인가? 혹시 다른 사람의 것을 몰래 가져오진 않았나? 흠모하던 사람을 건드리며 즐기진 않았나? 처절한 복수극은 얼마나 벌였나? 그 모든 것들이 바로 여러분이 저질러도 들키지 않고, 들키더라도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이 된다면 저지를 일들이다. 여러분이 법을 세우고 집행하는 권력을 갖게 되었을 때, 또는 권력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부패하게 만들고 그 약점을 이용하여 맘껏 주무를 수 있을 만큼 많은 돈과 수완을 갖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이 저지를 일들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트라시마코스에게 소크라테스는 되묻는다. 의사가 진정 의사일 때,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자신에게인가, 아니면 그가 돌보는 환자에게인가? 만약 그가 환자를 위하는 마음보다 자기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 교묘하게 거짓말을 한다면, 그가 의사인가? 의사의 탈을 쓴 강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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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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