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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에게 물을 붓는 크산티페>, 1655년 블로멘달(Reyer van Blommendael) 작. 애제자인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의 부인인 크산티페의 잔소리가 너무 심해서 견디기 어렵다고 투덜댔다. 소크라테스는 우물에서 도르래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은 참아낼 수 있지 않으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크산티페가 소리를 지르고 난 뒤, 소크라테스에게 물을 붓자, 천둥이 친 뒤엔 비가 오는 법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받아넘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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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구름의 여신들이 떠도는 거대한 허공 카오스와 여신들의 힘을 세상에 구현하는 인간의 혀. 소크라테스에겐 세 가지 이외에 다른 신이 없다. 나머지는 모두 헛소리다, 헛소리.(423~4) 진리고 나발이고, 어차피 그런 것은 없다. 구름처럼 변화무쌍하고 현란한 말재주를 부릴 혀만 있다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사람들이 진리라고 믿게 만들 수 있으니, 세상은 당신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자가 아니다. 언어의 마법, 논쟁과 연설의 교묘한 기술을 가르치며 돈벌이를 하던 소피스테스들과 다를 바가 없다. 순진한 농부인 스트렙시아데스는 그런 소크라테스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에게 페이디피데스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분수도 모르고 말(馬)에 온 정신이 팔린 아들놈 때문에 가산은 바닥이 난 지 오래, 게다가 엄청난 빚을 지고 있었다. 돌파구는 단 하나, 채무 관련 송사에서 무조건 이겨 빚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자기가 법정 연설의 기술을 배워보려고 했지만, 머리가 안 따라준다. 대신 그는 아들을 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보냈다. (요즘으로 말하면 로스쿨쯤 되려나?) 마침내 공부를 끝낸 아들. 소크라테스는 스트렙시아데스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아들 덕에 “이제 당신은 원하는 어떤 소송에서도 벗어날 수 있소.”(1151) 스트렙시아데스는 가슴이 터질 듯 기뻤고 아들이 자랑스러웠다. “쌍날의 혀를 번뜩이는 내 아들, 나의 요새, 우리 집의 구원자, 적들에겐 큰 재앙이며, 아비에겐 엄청난 불행의 해결사”(1160~4) 하지만 그 아들이 날이 선 혀로 아비의 심기를 건드린다. 티격태격 논쟁을 벌이더니, 마침내 아버지를 사정없이 때리고 목을 조른다. 가관인 것은 자기 행위가 정당하다는 항변. “아버지도 어릴 적에 저를 때리셨지요?” “내가 널 때린 건, 좋은 뜻에서 널 걱정해서였다.” 사랑의 매였다 이거지. “좋아요, 그럼 제게 말씀해보세요. 저도 아버지를 좋은 뜻에서 때린다면, 그것도 똑같이 정당한 것 아닌가요? 좋은 뜻을 갖는 것이 때리는 것이라면 말이에요. 어째서 아버지의 몸은 맞아서는 안 되고, 제 몸은 맞아도 되나요? 저도 당당하게 자유민으로 태어났단 말이에요.”(1409~14) 페이디피데스는 이제 어머니도 패겠단다.(1443) 다 사랑하니까! 그제야 스트렙시아데스는 옳지 않은 방법으로 빚더미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며, 동시에 자신을 현혹한 소크라테스에게 불같은 앙심을 품는다. 그에게서 못된 논변을 배웠기에 아들이 엉망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옳게 살 수 있는 인성과 품성의 교육은 없이, 경쟁하는 세계 속에서 남을 무참히 짓밟는 탁월한 생존의 전사를 키워내겠다는 썩을 놈의 교육이렷다. 아, 젊은이를 타락시키는 소크라테스! 그리고 또 하나. “아, 내가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하다니! 내가 정말 미쳤던 거야. 소크라테스 놈 때문에 신들을 내쫓다니!”(1476~7) 그는 소크라테스가 진정한 신들을 모욕했고, 전혀 새로운 구름의 여신들을 끌어들인 불경죄를 지었다고 단언한다. 불경죄와 아테네 청년을 타락시킨 죄, 이 두 가지 죄를 물어 고소를 고려하던 그는, 고소를 포기하고 대신 방화를 택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엄연히 실존 인물이다. 그러면 작품 속의 소크라테스와 실제 소크라테스는 얼마나 같을까? 아니 얼마나 다를까? 만약 다르다면, 아리스토파네스는 참 나쁜 작가다. 위대한 철학자를 터무니없이 모함했으니 말이다. 명예훼손죄로 고소감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그런데 만약 아리스토파네스가 설령 과장은 했을지언정, 진실을 말할 것이라면? 그로부터 24년 후(기원전 399년) 일흔살의 소크라테스는 법정에 선다. 죄목은? “멜레토스가 소크라테스를 상대로 다음과 같이 기소했다. 소크라테스는 옳지 못한 짓을 저질렀다. 나라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새로운 신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것도 옳지 못한 짓이다. 이에 사형을 구형한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 II. 40) 소크라테스도 법정에서의 변론(24b~c)을 통해 자기가 이와 같은 내용으로 기소당했음을 인정했다. 이에 덧붙여진 또다른 비방도 소개한다. “소크라테스는 옳지 못한 일을 저질렀다. 그리고 땅밑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는가 하면, 약한 주장을 더 강하게 만들며, 또한 똑같은 그 내용들을 남들에게 가르친다며 주제넘는 짓을 한다.”(19b~c) 이런 내용이라면 아리스토파네스가 24년 전에 무대에 올렸던 소크라테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스트렙시아데스가 방화 대신 고소를 선택했다면, 기원전 399년 법정에 섰을 때와 거의 똑같은 죄목으로 그때 이미 법정에 섰을 것이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자신에 대한 기소 내용은 물론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이 모두 오해이며 모함이라고 항변한다. 그러면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실제보다 열등하게 그려 왜곡한 것이란 말인가? 그러나 처음부터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아주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상연 이후에도 24년 동안 그 부정적인 인상을 개선하는 데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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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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