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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4 19:54 수정 : 2011.06.07 11:13

그리스 아테네의 향연 장면을 그린 벽화.


고전 오디세이 23 에로스 찬가-플라톤 ‘향연’

아가톤의 비극경연대회 우승축하 향연. 사랑의 찬가들 쏟아졌는데…
돌고 도는 술잔 속에 막판까지 남은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파네스
‘구름’으로 빚어진 7년전 응어리 풀어줄 ‘취중진담’ 오가진 않았을까

“사람에겐 평화를, 바다에는 평온함을,/ 바람들이 쉬어갈 잔잔한 침상을, 근심 속엔 수면을” 가져올 이 누구인가? 혹독한 폭격과 포화의 난동에 깊게 베인 섬과 바다. 전쟁의 소문에 격렬하게 술렁인 한반도. 지난해 조장된 공포의 망령을 과거 속에 묻지 못한 채 돌아서서, 새해를 맞이하였다. 평화에 대한 희망과 믿음 다독이며 묻는다. 두 동강 난 이 땅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이 누구인가?

기원전 416년 그리스 아테네. 아가톤은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향연(symposion)을 열었다. 가깝게 지내던 이들이 초대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그 전날 우승의 기쁨과 축제의 피날레를 즐기며 술에 떡이 되었던 터. 아직 술이 덜 깼다고 너스레를 떨며, 오늘만은 술을 좀 덜 마시자고 입을 맞춘다. 그러면 뭘 하면서 향연을 즐기나, 대안은? 이 자리만큼은 술을 강권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주량껏 마시면서,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향연을 즐기자고 에릭시마코스가 제안한다. 이야기의 주제는? 바로 에로스(Eros), 곧 사랑의 신이다. 어라, 모인 사람들이 모두 좋단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모였기에 이런 담론이 대환영인가?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릭시마코스, 아리스토데모스, 비극시인 아가톤, 일단 여기까지는 여러분들에게 낯선 이름들이겠지만, 나름 당대 엘리트들이다. 여기에 주목해야 할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와 철학자 소크라테스. 그런데 이 두 사람, 아주 불편한 사이였을 것이다. 왜냐고?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이때로부터 7년 전인 기원전 4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大) 디오니소스 제전 희극경연대회장을 찾아가야 한다. 구경을 좋아하던 소크라테스가 그곳에 없었을 리 없다. 객석에 앉아 유쾌하게 희극을 관람했을 소크라테스는,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을 목격한다. 아리스토파네스가 무대에 올린 작품 <구름> 속에 자신이 등장인물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대 위의 소크라테스는 젊은 청년들을 타락시키며, 아테네가 존중하는 신을 거부하는 위험한 교사였다. 게다가 마지막 장면에서는 학교가 불타고, 자신은 쇠스랑을 든 학부모에게 쫓기며 허둥지둥 도망치기까지 한다! 무대 위에서 완전히 망가져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객석에 앉아 있던 소크라테스는 어땠을까? 일단 등에 식은땀 좀 났을 법, 버럭 화를 내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까? 아니면 배포 큰 마음으로 허허 웃으며 아리스토파네스의 익살을 즐겼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쿨한 척, 시끄러운 마음 애써 감추고 견디고 있었을까? 마음속엔 ‘맹랑한 놈, 너 어디 두고 보자’ 앙심을 품은 채?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7년 동안, 두 사람이 어떤 관계로 지냈는지 기록은 없다. 하지만 지금, 아가톤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 플라톤은 <향연>이라는 작품 속에다 이 만남을 재현했는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파악이 쉽지 않다. 소크라테스가 아리스토파네스를 특별히 지칭하는 대목이 있긴 하다. 사랑에 관한 찬사의 향연을 열자는 제안에 대해 그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디오니소스와 아프로디테한테 온통 관심을 쏟으며 시간을 보내는 아리스토파네스도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덧붙인다.(177e) 하지만 그 말이 전부다. 할 말이 많았을 두 사람일 텐데, 더는 아무 말이 없다. 짐짓 그날의 일을 외면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네 번째로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에로스 신의 위력을 찬양하겠다고 나선다. 사랑의 놀라운 치유능력. 그 능력을 암시하는 징표가 인간들의 배꼽에 새겨져 있단다. 왜 인간들에겐 배꼽이 있을까? 그가 소개하는 신화에 따르면, 인간은 원래 지금 모습의 몸 두 개가 결합된 형태였단다. 한 몸에 머리가 두 개, 팔이 네 개, 다리가 네 개, 그리고 거시기 두 개가 달려 있었다는 말. 그리고 결합의 방식은 세 가지, 곧 남남, 남녀, 여녀 쌍이 있었단다. 그림을 그려볼까? 두 개의 머리에 달린 네 개의 눈이 사방을 입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그 힘은 지금의 두 배보다 훨씬 더 세다. 산을 여러 겹으로 쌓아 올릴 정도다. 특히 속도는 장난이 아니다. 여덟 개의 사지를 펴서 수레바퀴 구르듯 엄청난 쾌속으로 달릴 수 있다. 이들이 점점 번성하고 강성해지자, 제우스는 위협을 느꼈고 급기야 없애버릴 궁리를 하였다. 그런데 인간이 사라지면, 누가 제우스를 찬양하며 경배하지? 고민이었다. 인간을 없애버리지 않으면서, 인간의 막강한 힘만을 없애버리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배꼽은 이런 고민에서 만들어진다. 제우스는 불멸의 실을 들고 인간을 반으로 쪼개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동강이 난 인간의 절단면을 추슬러, 고기만두 빚어내듯이 한 군데로 오므려 모아 묶었다. 그것이 바로 배꼽. 배꼽은 인간이 원래 형태에서 둘로 쪼개져 동강났던 아픈 추억의 증표다. 그때부터 인간들은 막강한 힘을 잃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잘려나간 반쪽에 대한 치명적인 그리움, 우울한 허전함으로 모든 의욕을 잃었다. 그때부터 인간들은 동강난 채 어딘가에서 떠도는 나머지 자기 반쪽을 찾는 일에 매달렸다. 떨어져 나간 자기 반쪽에 대한 열망, 그것은 인간에게 가장 강렬한 갈망이 되었다. 마침내 떨어져 나갔던 반쪽을 찾으면, 서로 부둥켜안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해 격렬하게 뒤엉켜 비비고 떨어질 줄 모른다. 에로스는 인간의 조각난 두 쪽이 서로를 갈망하게 하며, 원래의 형태와 본성을 회복하게 해준다. 그렇게 조각난 두 쪽이 만났을 때, 인간은 진정 인간성을 회복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 아리스토파네스의 결론이었다.

희극시인의 이야기는 우리 마음속에 커다란 비극적 울림을 남긴다. 두 동강 나 있으면서도 서로를 향해 애틋한 사랑을 키우지 못하고, 으르렁거리기나 하는 요즘, 에로스 신이 떠나간 살벌하고 황폐한 이 땅에 살며 전쟁의 불안과 공포를 강요당하기 때문이리라. 아리스토파네스 다음 차례에 비극시인 아가톤이 노래 한 구절을 들려준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위대하도다! 그는 “사람에겐 평화를, 바다에는 평온함을,/ 바람들이 쉬어가는 잔잔한 침상을, 근심 속엔 수면을” 가져오는 까닭에.(197c) 이 노래 또한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절절하다. 그래, 바로 사랑. 사랑이 없다면 그 어떤 미사여구도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지?

마지막 차례는 소크라테스였다. 에로스에 관한 독특한 생각을 언어에 담아 풀어내자 다른 이들이 감탄을 쏟아낸다. 그런데 갑자기 문을 박차고 술에 꼭지가 확 돌아버린 알키비아데스가 들어왔다. 그의 등장으로 유쾌한 언어의 고급스런 향연은 제대로 된 걸쭉한 술판으로 확 바뀐다. 술이 돌고 또 돌고, 하나둘 돌아가는 술잔에 나가떨어지더니, 끝으로 세 사람만이 남아 술을 계속 돌린다. 누구? 집주인인 비극시인 아가톤과 두 사람, 곧 아리스토파네스와 소크라테스였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전체 향연을 전해주는 아리스토데모스는 기억이 없단다. 그때 돌던 술에 취했던 탓. 비극과 희극의 창작 기술에 관한 논의였던 것 같다고 어렴풋이만 전한다. 그건 세 사람 사이엔 아주 자연스런 주제다. 아가톤은 비극시인이고,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시인이며, 소크라테스는 시를 사랑하는 철학자니까.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을까? 7년 전 무대 위에 올랐던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 <구름>이 그들 사이에 새삼 화제가 되지는 않았을까? “술 속에 진실이 있다(en oinoi aletheia)”는 알카이오스의 시구처럼, 이들은 술의 힘을 빌려 가슴에 묻어두었던 섭섭함과 미안함을 허심탄회하게 내놓지 않았을까? 더구나 주제가 사랑의 신 에로스였으니. 그러나 플라톤은 세 사람 사이에 오고간 대화의 필름을 끊어놓았다.

술에 취한 아리스토파네스와 아가톤이 졸음을 못 이겨 힘겨워하자, 소크라테스가 이 두 사람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잠자리를 마련해 준 후, 마지막 술판을 정리하고 자리를 떴다는 그림만 그려줄 뿐. 마치 스승이 객기 어린 제자들을 돌보는 것처럼. 그다음 날 아침, 소크라테스의 손길이 닿은 잠자리에서 아리스토파네스가 깨어났을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인생이란, 생각하는 사람에겐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겐 비극이다.” 호러스 월폴의 말이다.

김헌/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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