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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10 20:18 수정 : 2011.06.10 20:21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마이클 푸츠리처드의 작품. 죽은 아내를 살려내기 위해 지하세계로 간 오르페우스는 노래로 플루토 신을 감동시켜 아내를 돌려받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 때문에 아내를 다시 잃었다.

사랑을 노래한 가인 오르페우스
영웅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을 때 오르페우스가 노래를 부르면 모두들 싸움을 중단하고 노래의 매혹에 푹 빠졌다. 용장의 힘이나 지장의 전략에 못지않은 신비로운 위력이 그의 노래에 있었다.

고전 오디세이 33

긴 시간이 필요 없다. 4분 남짓. 단 한 곡의 노래만으로도 가인(歌人)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음악을 타고 흐르는 시는 우리의 감각을 새롭게 열고, 세상을 다르게 느끼게 한다. 아. 감탄과 탄식.

세상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으로 전부가 아니다. 음악을 타고 흐르는 시의 상상력이 없다면, 세상은 단조롭고 지루하다. 그것은 하나의 허울이다.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의 오류다. 가을이 와서 마음이 쓸쓸한 것이 아니듯. 마음이 쓸쓸하기 때문에 비로소 가을이 닥치는 것이듯. 사랑이 떠났기에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살갗을 할퀴는 것. 노래는 삶의 진실을 보게 한다.

그러니 음악이 없다면 보이는 모든 현상은 껍질일 뿐, 세상은 하나의 오류일 뿐.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전쟁 같은 사랑”을 담은 노래는 우리가 겪었던 숱한 사랑과 엇갈림과 이별을 새로운 세계 속에서 깨어나게 한다. 우리는 그런 줄 몰랐다. 그렇게 느낄 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우리의 잠든 감각을 새롭게 깨우고, 세상은 우리에게 다른 모습으로 열린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불현듯 깨닫게 된 진실이다.

기원전 3세기께, 아폴로니오스는 황금 양털을 찾아 모험을 떠난 영웅 이아손의 이야기를 서사시에 담았다. 이아손이 타고 간 배의 이름이 아르고호라서 작품의 이름은 <아르고호 이야기>가 되었다. 이아손은 혼자가 아니었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하여 총 54명의 영웅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아폴로니오스는 이 영웅들을 소개하면서 오르페우스를 가장 먼저 소개하였다. 오르페우스는 아홉 명의 뮤즈 여신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칼리오페의 아들로서 전설적인 가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힘이 세거나 칼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략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쟁쟁한 영웅들을 뒤로하고 맨 앞에 언급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게는 가재 편이라더니, 시인에게는 가인이 가장 탁월한 사람으로 보였나 보다.

아폴로니오스는 오르페우스의 능력을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들은 말하지, 그가 노랫 소리로 산중의 굳은 바위들도, 또 강의 흐름들도 홀렸다고. 야생의 참나무가 그 노래의 증거라네. 그 나무들은 지금은 트라키아의 조네 곶에 번성하여 질서 있게 빽빽이 줄지어 있지만, 그의 수금 연주에 취하여 피에리에로부터 이리로 줄곧 이끌려 내려온 것이라네.”(1권 26~31행)

그의 노래는 대단했다. 영웅들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을 때, 오르페우스가 노래를 부르면 모두들 싸움을 중단하고 노래의 매혹에 푹 빠졌다.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며 노를 젓다 지친 영웅들은 그의 노래를 듣고 새 힘을 얻었다. 오르페우스의 위력은 세이렌을 만났을 때 절정에 이른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처녀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날아다니며 달콤한 노래를 불러 선원들의 넋을 빼앗아 파멸시키는 요괴들이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세이렌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세이렌의 유혹으로부터 영웅들을 지켜냈다. 용장의 힘이나 지장의 전략에 못지않은 신비로운 위력의 노래. 오르페우스가 없었다면, 이아손 일행의 모험은 하나의 오류였을 것이다.

노래의 힘으로 모험에 활력을 불어넣고 돌파구를 열어나갔던 오르페우스에게 사랑하는 아내가 생겼다. 그녀의 이름은 에우리디케. 어느 날, 그녀는 풀밭을 거닐다가 뱀에게 복사뼈를 물려 죽었다. 아내를 잃자, 오르페우스는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넋을 잃고 헤매다, 마침내 죽음의 세계 하데스로 내려갔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그곳을 다스리는 플루토에게 아내를 돌려달라고 오르페우스는 애원했다.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 클레랑보는 그의 애절한 사연을 이렇게 노래했다. “어두운 왕국을 다스리는 폐하, 보이시나요, 신실한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자신을 불태웠던 유일한 사람을 빼앗긴 것이? 오, 이런! 이럴 수가! 사랑으로 누린 행복이 저의 고통을 더욱더 잔인하게 만들다니! 저의 눈물에 마음을 열어주소서. 고통스러운 운명의 장난을 돌이키소서. 저의 사랑하는 에우리디케를 돌려주소서. 저희들의 두 심장을 갈라놓지 마소서.”

오르페우스의 간절한 노래는 죽음의 세계에 있던 모든 혼백들조차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마침내 저승의 신 플루토도 그 노래에 감동하여 에우리디케를 되돌려주었다. 하지만 죽음의 왕국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는 절대로 아내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부활과 재회의 순간을 바로 앞에 둔 순간, 오르페우스는 참지 못하고 아내를 돌아보고 말았다. 순식간에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손에서 빠져나갔고, 다시 플루토의 세계로 미끄러져 빨려 들어갔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 후로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의 언덕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변신이야기>에서 생생하게 전해준다. 오르페우스가 노래를 부르자, 수많은 나무들이 깨어나 그곳으로 옮겨왔다. 들짐승들과 새들이 떼 지어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고, 심지어 바위들도 그 뒤를 따랐다.

“사랑은 난파된 배를 탄 거지. 부서진 조각을 찾다 죽어가는 것.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아름다운, 꿈같은 것”이라 했던가?(임재범, <아름다운 오해>)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려는 듯, 꿈같은 사랑의 달콤함과 난파된 사랑의 사연을 절절히 노래했다.

사랑하는 수사슴을 죽게 만들고, 그 슬픔과 가책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죽은 소년 키파리소스. 아폴론은 그를 삼나무가 되게 하였다. 아폴론이 사랑하던 또다른 아름다운 소년 히아킨토스. 그는 아폴론이 던진 원반에 잘못 맞아 죽었고, 사랑을 잃은 아폴론은 그를 자줏빛 히아신스 꽃으로 살아나게 하였다. 피그말리온은 상아를 깎아 아름다운 소녀상을 만들었는데, 그만 그 조각상에 반해 사랑에 빠졌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시들어가던 피그말리온. 그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베누스(Venus) 여신은 그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이 되게 하였고, 피그말리온은 마침내 사랑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파포스가 태어나고, 파포스에게서 키니라스가, 키니라스에게서 미르라가 태어났다. 그런데 미르라는 자기 아버지를 너무도 사랑했다. 용납될 수 없는, 금지된 사랑. 이보다 더 치명적인 사랑이 있을까?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 미르라는 속임수를 써서 끝내 아버지와 사랑을 나누었다. 아버지의 아이를 몸속에 안고 집을 떠나 떠돌던 그녀는 나무로 변했다. “그녀의 뼈는 단단한 나무가 되고, 가운데 골수는 그대로 남고, 피는 수액이 되고, 팔은 큰 가지, 손가락은 잔가지가 되고, 살갗은 딱딱한 나무껍질이 되었다. 자라나는 나무는 어느새 그녀의 무거운 자궁을 감고 그녀의 가슴을 덮고 그녀의 목을 덮었고 … 그녀는 나무껍질에 얼굴을 묻었소.”(492~8행) 나무가 된 그녀에게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녀의 눈물은 향기로운 몰약이 되었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 연구교수
이렇게, 오르페우스는 나무와 꽃과 돌과 새들에게 애절한 사랑의 사연을 하나씩 심어 주었고, 그의 노래에 매료된 숲과 야수들과 바위들이 그의 노래를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오르페우스의 노래는 사랑(Amor)이 주제였다. 그것은 오르페우스의 노래를 상상한 시인 오비디우스의 주제이기도 했고, 나아가 오비디우스를 키운 로마 문화의 커다란 주제이기도 했다. 로마(Roma)를 거꾸로 읽으면 그대로 사랑, 즉 아모르(Amor)가 되니 말이다. “Roma Amor(로마는 사랑)!” 오비디우스는 신화적 상상력을 통해 사랑으로 가득한 세상을 새롭게 그려주었고, 그의 노래에 따라 세상은 새롭게 태어났다.

세상은 우리의 무딘 눈으로 보는 그대로, 과학의 문법으로 서술되는 대로만은 아니다. 사랑을 하면, 세상은 달리 보이니까. 그리고 가인의 노래는 우리의 마음과 감각을 새롭게 뜨게 하니까. “음악이 없다면, 삶은 하나의 오류다.” 니체의 말이다.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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