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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24 20:53 수정 : 2011.06.24 20:53

고전 오디세이 34
카이사르에 맞선 시인 비바쿨루스

호라티우스의 단편에서 비바쿨루스가 침을 뱉었다는 알프스 산은 카이사르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카이사르에 반기를 든 비바쿨루스 같은 시인들은 정치적 전향을 거부했단 이유로 탄압받았다.

겨울 알프스 산에 감히 침을 뱉은 자는 과연 누구일까?

집정관을 역임했던 로마의 유력 정치가 메살라의 편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푸리우스 비바쿨루스라니, 나는 그 사람,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소. (수에토니우스, <로마의 문법학자들> 제6장)


비바쿨루스(기원전 103~43년 이후)!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기원전 30년 아우구스투스의 후원을 받아 집정관을 지냈던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던 메살라가 그와의 관계를 극구 부인할 정도로 패기 넘쳤던 시인의 이름이다. 아쉽게도 전해지는 작품은 거의 없다. 타키투스나 퀸틸리아누스의 저술에 남아 있는 단편 정도가 고작이다. 먼저, 타키투스의 보고다.

비바쿨루스와 카툴루스의 노래들은 온통 카이사르에 대한 욕설로 넘친다. 하지만 고귀한 율리우스와 고귀한 아우구스투스께서 친히 이 노래들에 관용을 베푸셨고, 이것들이 퍼질 수 있도록 내버려두셨다. (<연대기>, 제4권 35장 5절)

인용은 비바쿨루스와 카툴루스가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비난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들을 지었으나,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넓은 아량과 관용을 베풀어 그 노래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아닌 게 아니라, 위험한 사내였던 것은 분명하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를 비판하는 <갈리아 전쟁에 대한 실상>이라는 서사시까지 지었기 때문이다. 비바쿨루스의 시풍을 추정할 수 있는 단편을 읽어보자.

푸리우스는 하얀 눈으로 겨울 알프스 산에 침을 뱉을 작정이구나!

호라티우스의 <풍자> 제2권에 나오는 구절이다. 푸리우스라는 이름이 눈에 띈다. 이 푸리우스가 저 비바쿨루스일 것이다. “알프스 산에 침을 뱉는다”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어딘가 부적절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호라티우스가 푸리우스를 대놓고 비꼬는 구절임은 분명한 듯하다. 도대체, 이 비꼼의 실체는 무엇일까? 우선, 비바쿨루스 때문에 알프스 산이 욕을 먹고 있다는 정도의 해명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비바쿨루스의 고향은 알프스 산맥의 발치에 자리한 크레모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비바쿨루스가 고향을 욕되게 할 정도로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어야 한다. 과연 그 잘못은 무엇일까?

단적으로, 이는 비바쿨루스의 자유분방한 시풍(詩風)과 폼페이우스나 카이사르 같은 권력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노래들과 연관되어 있다. 비바쿨루스가 카툴루스, 카토, 브루투스와 더불어 카이사르 독재에 반대했던 청년 모임의 핵심 구성원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한 이 모임이 공화정을 지키기 위해 기원전 44년에 카이사르를 암살했으며 나중에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에 맞섰던 정치 세력으로 발전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비바쿨루스가 침을 뱉었다는 알프스 산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비유일 것이다. 아마도, 비바쿨루스가 실제로 어떻게 카이사르를 비판했을 지에 대해 궁금해할 독자가 있을 듯하다. 다행히도, 그의 노래 일부가 퀸틸리아누스의 <수사학 교육>에 단편으로 전해진다.

유피테르는 하얀 눈으로 겨울 알프스 산에 침을 뱉었다.(<수사학 교육> 제8권 6장 17절)

퀸틸리아누스가 좋은 문장을 가름하는 기준인 적절성 항목에서 적절치 못한 사례로 드는 예문 가운데에 하나가 이 인용문이다. 술어인 “침 뱉다”가 로마 최고의 신인 유피테르에게 어울리지 않은 동사라고 한다. 불경스러운 표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장이 과연 부적절한 표현일까? 퀸틸리아누스의 지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이다. 비바쿨루스가 말하는 유피테르는 율리우스의 환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율리우스는 유피테르의 후손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이는, 유피테르(Iuppiter)와 율리우스(Iulius)의 이름에 “법”을 뜻하는 라틴어 ‘Ius’(법)가 공통으로 들어가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율리우스는 카이사르 가문의 씨족명이다. 따라서 유피테르는 율리우스를 지칭하는 환유다. 이런 비유의 배경에 담긴 의미를 생각한다면, 비바쿨루스의 문장은, “카이사르가 하얀 눈이 덮인 알프스 산에 침을 뱉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수사학의 관점에서 보면 비바쿨루스의 문장은 아주 잘 표현된 구문이다. 비판과 풍자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안성맞춤이니까. 이런 이유에서 퀸틸리아누스의 지적은 반만 맞은 셈이다.

그렇다면, 소위 “카이사르가 알프스 산에 침을 뱉었다”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을 지칭하는 것일까?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 출판과 관련되어 있다. 기원전 55년에 카이사르의 정치적인 맞수였던 키케로가 <연설가에 대하여>를 출판한다.

그러자 이에 대응하여 카이사르도 <갈리아 전쟁기>의 출판을 서두르게 된다. 일설에 의하면, 알프스 산맥을 넘어오면서 책을 저술해서 출판했다고 한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알프스 이북의 유럽 지역을 정복하는 과정과 자신의 전공을 자랑하는 업적록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황제로 등극하려는 카이사르의 야심이 바탕에 깔린 텍스트이다. 카이사르의 이런 야심을 정확하게 알아본 사람이 비바쿨루스였을 것이다. 그는 <갈리아 전쟁에 대한 실상>을 노래로 지어 폭로했기 때문이다. 제목에서도 얼른 알 수 있다. 퀸틸리아누스의 예문도 실은 이 서사시에서 가져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비바쿨루스의 “유피테르가 하얀 눈으로 겨울 알프스 산에 침을 뱉었다”는 풍자는 카이사르가 알프스 산맥을 넘어오면서 저술한 <갈리아 전쟁기>가 알프스 산을 욕되게 했다는 풍자일 것이다. 한편 호라티우스의 입담도 비바쿨루스에 지지 않는다. 이는 비바쿨루스를 부르는 호라티우스의 호칭에서 잘 드러난다. 비바쿨루스의 씨족명인 푸리우스(Furius)는 음성적으로 원래 “도둑놈”을 뜻하는 fur나 “광기”를 뜻하는 furor를 연상시키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름 풀이를 해보면, 푸리우스라는 이름은 “도둑놈”, 혹은 “미친놈”, 아니면 “미쳐 날뛰는 도둑놈”을 뜻한다. 그렇다면 알프스 산은 카이사르가 되는데, “한 미친놈이 감히 카이사르에게 침을 뱉고 있구나” 정도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메살라가 비바쿨루스와의 관계를 극구 부인하려는 이유가 이쯤에서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메살라에게 비바쿨루스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위험한 시인이었고, 가까이 하고 싶지도 않았던 시인이었을 것이다. 이는 실제로 메살라는 호라티우스, 티불루스, 오비디우스와 같이 모두 체제순응적인 시인들을 후원했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서양 문학이 소위 참여와 순수 전통으로 갈라지는 순간이 여기서 포착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요컨대 비바쿨루스와 카툴루스와 같은 “새로운 시인”들이 소위 “참여 문학”을 표방했다면, 호라티우스나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시인들은 이른바 “순수 문학”이라 일컬어질 수 있는 시풍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금 긋기가 성급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참여”와 “순수”로 문학 전통을 나누는 기준이 정치적인 것이라면, 그리 성급한 일도 아닐 것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요컨대 메살라가 후원했던 호라티우스나 티불루스가 아우구스투스의 재정 담당 비서였던 마이케나스의 후원을 받은 시인들이었고, 그들이 제정을 옹호하고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문인들이었던 반면, “새로운 시인들”은 대개 공화정을 수호하기 위해 싸우다 죽은 청년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이 시기까지의 문학 전통은 교훈을 강조하는 시풍과 즐거움을 강조하는 시풍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했다. 하지만 공화정 말기에 이르러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 문학은 참여 문학과 순수 문학으로 나뉘었다.

또한 소위 “참여” 문학을 선호하는 시인들이 사상적 혹은 정치적인 전향을 요구 받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다. 이 요구를 받아들여 전향한 대표적인 시인이 호라티우스였다. 어쩌면 여기에서 비바쿨루스에 대한 호라티우스의 비난이 해명된다 하겠다. 어찌되었든 정치적으로 전향을 거부한 대부분의 시인들은 큰 탄압을 받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비바쿨루스였다. 단지 겨울 알프스 산에 침을 뱉었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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