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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10.14 20:28 수정 : 2011.10.14 20:28

비토리오 리에티(1898~1994)가 신고전주의 기법으로 만든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조각.

고전 오디세이 42 - 라틴어의 파수꾼들 ‘포르켈루스와 바로 이야기’

언어도 아프고 병이 든다. 그 실례가 라틴어다. 이 글은 라틴어가 몹시 아팠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아픈 라틴어를 살리기 위해 심지어 목숨까지 걸고 싸운 사내가 있었다.

포르켈루스는 라틴어를 지키기 위해 온몸을 바친 파수꾼이었다. (중략) 법정에서 변론하는 상대방의 비문(非文) 사용을 고발할 정도였다. (중략) 심지어 그는 황제의 연설에서도 문법 위반을 찾아내어 비난했다. 카피토가 황제의 말은 라틴어 문법에 맞는 표현이고, 설령 문법에 어긋난다 할지라도, 황제가 말하는 그 순간부터 올바른 라틴어가 될 것이라 옹호하자, 포르켈루스는 “카피토가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카이사르여, 황제께서는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수는 있지만, 단어들에게까지도 시민권을 부여하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응수했다.(수에토니우스, <로마의 문법가들> 중에서)

단어의 ‘시민권’에 대한 포르켈루스(서기 1세기)의 언급이 흥미롭다. 문법을 법률의 한 종류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법을 일종의 법률로 바라보았던 이들의 원조는 바로(Varro, 기원전 116~27)였다. 그의 대표작 <라틴어에 대하여>가 세상에 나오게 된 상황은 이랬다. 바로가 활동했던 로마 공화정 말기는 당시 소위 개별 단어 오류와 문장 오류 때문에 라틴어가 몹시 아팠던 시대였다. 의사 불통 문제도 심각했고, 로마의 제국화에 따른 언어 혼탁 현상도 심각했다. 이 현상은 크게 다섯 가지 유형이었다. 고어와 현대어의 충돌, 로마 말과 지방 방언의 충돌, 사회 계급 간의 그리고 세대 간의 의사 불통, 수사학적 표현과 문법 규칙의 충돌, 외국어와의 충돌 등이 그것들이다. 이것들은 실제 언어 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이고, 따라서 국가적 차원에서도 그 해결이 절실하게 요청되었던 문제들이었다. 이에 대한 대안을 학적으로 강구한 이가 키케로(기원전 106~43)다. 그의 대표 저술인 <연설가에 대하여>에서 그는 “라틴어답게 말하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는 수사학자였다. 다시 말해, 그는 라틴어의 문법성보다는 표현의 심미적인 가치와 설득의 효과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수사학자였다. 이런 키케로의 입장에 대해 대각의 날을 세운 이가 <갈리아 전기>로 유명한 카이사르(기원전 100~44)다. 그도 <유추론>이란 문법서를 출판했다. 아쉽게도 이 책은 몇 개의 단편만 전해진다. 카이사르가 엄격한 문법 준수를 강조하는 유추론에 대해 어떤 입장으로 어떤 이론 체계를 전개했는지, 최고 통치자로서 어떤 입장을 갖고 언어 정책을 전개했는지는 직접적으로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그의 후계자인 아우구스투스(제위기간 기원전 27년~서기 14년)의 입장을 통해서 로마의 통치자들은 대체로 자유로운 표현을 선호하는 수사학보다는 엄격한 규칙 준수를 중시하는 문법학을 중시했다는 점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문법학이 어떻게 시작했는지를 궁금해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해서, 단도직입적으로 문법학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바로의 입장을 소개하겠다. 핵심은, 아픈 라틴어의 치료와 관련해서 개별 시민들의 언어 생활에 있어서 그것을 통제하고 언어 세계에 벌어지는 각종 범죄와 오류를 교정하고 지도할 수 있는 문법의 입법자로서의 권한은 오로지 보편 인민에게만 있다는 바로의 일갈일 것이다.

보편-인민의 차원과 개별-시민의 그것은 전혀 다르다. 개별-시민의 차원에서도 연설가와 시인의 그것은 서로 차이가 있다. 이들에게 부여된 권한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편-인민은 모든 단어에서 규칙을 준수해야 하고, 만약 그것에 오류가 있다면 스스로 교정해야 한다.(<라틴어에 대하여> 제9권 5장)

언어 세계에서 보편-인민의 등장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보편-인민의 등장으로 인해 인류가 처음으로 ‘문법’의 입법화를 선언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라틴어를 각종 언어적 범죄와 오류로부터 지켜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보편-규칙의 체계화를 시도한다. 한데, 문법 위반 현상들은 대체로 언어 사용자들이 개별적으로 범하는 구체적인 오류들이다. 아마도 이 대목에서 저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라틴어의 엄격한 수호자 포르켈루스와 라틴어 문법을 체계화한 바로 사이에 있는 그 차이가 말이다. 바로는, 포르켈루스처럼 언어 사용자들의 개별 오류들에 대해서 그렇게 엄격한 입장을 취하지는 않는다. 이런 개별 오류가 언어의 본성 자체를 직접적으로 해치지는 않으며, 다만 이런 오류를 범하는 사람의 무지를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 바로의 기본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로가 문법의 체계화를 시도한 것은, 라틴어를 지키기 위함 말고 또다른 이유 때문이었음이 분명하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이는 문법을 바라보는 바로의 관점에서 해명된다. 그러니까 바로에게 문법은 언어 교육의 핵심 수단이었다. 이는, 바로가 문법을 체계화하려 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라틴어 문법 위반을 감시하고 처벌하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라틴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교육에 도움을 제고하기 위함에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외워서 암기해야 하는 단어들은 가능하면 적어야 한다. (중략) 이로 인해 유추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좀더 쉽게 단어들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틴어에 대하여> 제8권 5장)

언어 습득에 있어 외워야 할 것은 가능한 한 적어야 한다고 한다. 대신에 인간에게 주어진 이성과 언어의 유추 능력을 통해서 단어와 표현들을 확대재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외워야 하는 단어들은 비연속적이지만, 반면에 유추는 연속성과 항상성이 보장되기에 이 유추 능력을 통해서 언어는 무한정 재생산이 가능하고 또한 언어 자체도 성장하기 때문이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바로가 언어 세계를 체계화하려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즉 라틴어의 성장을 위해서 라틴어의 표현 기제를 범주화하는 것, 그것이 문법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 말에 ‘~다움’에 해당하는 표현 기제가 라틴어는 ‘~tas’이다. 요컨대, 우리 말의 ‘아름다움’, ‘사람다움’에서 ‘~다움’이 사태 일반을 추상화하는 표현 방식이듯이, 라틴어 ‘~tas’도 라틴어에서 추상 명사를 만드는 표현 규칙이다. 예컨대, humanitas(인문학 혹은 인본주의)도 humanus(인간다운)에서 추상화된 단어다. 요컨대, 동사의 인칭 활용, 시제, 법의 활용 형태 및 동사의 명사화(분사), 명사의 동사화(동명사), 형용사의 부사화(부사), 전성명사, 동사 만들기 등은 언어로 세상을 담아내기 위해 혹은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체계화된 라틴어의 표현 기제들인데, 이것들을 규칙화하는 것이 문법이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문법은 언어가 세상을 반영하고, 심지어는 세계를 창조해 나가는 도구 아니 능력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유추(similitudo)라는 계산-능력을 강조한다. 이는 요컨대, 한글의 ‘~다움’이 혹은 라틴어 ‘~tas’가 무한정한 유추-운동을 통해서 추상 세계를 넓혀가는 언어의 생산 기제라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이런 의미에서 유추는 언어의 조어능력 혹은 창조 능력인 셈이다. 바로는 심지어 유추에 입각한 언어 창조 능력을 무한정한 무엇으로 본다.

안재원 서울대 에이치케이 연구교수
문법의 유추 능력을 통해서 주어진 단어를 이용하여 새로운 단어들을 무한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기에. 어찌되었든, 라틴어는 바로의 이런 노력 덕분에 체계적이고 독자적인 사유와 독창적인 학문 세계를 전개할 수 있는 언어로 성장한다. 결국 아픈 라틴어를 근본적으로 치료한 것은 엄격한 감시와 처벌은 아닌 셈이다. 그것은 라틴어가 스스로 건강해지고, 스스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표현 기제의 정비였을 것이다. 어쨌든 라틴어는 바로의 노력을 통해서 세상을 담아낼 수 있는 혹은 세계를 창조해 나갈 수 있는 표현 체계를 갖추게 된다. 또한 덕분에 라틴어는 단순한 생활 언어가 아닌 학문 언어로 더 나아가 새로운 문명의 창조 언어로 성장하게 된다. 안재원 서울대 에이치케이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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