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09 11:11
수정 : 2011.06.09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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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녀가 스윙 댄스를 추는 모습. 20~30대 젊은층들은 그저 즐거움을 위해 커플댄스를 한다.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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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악귀의 PLAY 라이프 이즈 라이브]
① 손 꼭 잡고 커플 댄스…즐거운 춤바람 10년
하루는 서울 신촌역 건널목 근처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옆에서 남녀들이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왔다. 그 내용인즉슨, 이랬다. “스윙 해봐. 그거 살 빠지는 데 최고야.” 말로만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하지만 여자는 알아듣는 눈치였다. “내 친구도 그러더라. 글구 재밌다며?” “재밌어. 다이어트에 그거만한 게 없어.”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데?” “동호회에 가입하면 돼.”
여기에서 ‘스윙’(Swing)이라는 말이 ‘난봉질’ 정도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임을 떠올린다면, 앞의 남녀의 말은 가슴이 섬뜩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스윙 한다”라는 말에 “대낮의 신촌에서 무슨 ‘섹스 다이어트’ 이야기냐”며 버럭 화를 낼 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그런 걸 하는 ‘동호회’까지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 됐단 말인가.
다행히도 이게 ‘스윙 댄스’를 줄인 말임을 알아챌 만한 사람이 요즘은 꽤 늘었다. 루이 암스트롱 같은 흑인들의 스윙 재즈 음악에 맞추어 남녀가 손을 잡고 춤을 추는 커플 댄스 말이다. 어느새 동호회가 우후죽순 생겨나더니, 지금은 길거리에서 이런 대화를 쉽게 들을 수 있는 정도가 된 것이다. 이제는 친구의 친구가 스윙 댄스를 춰봤다거나 지금 추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소개팅에 나가서 스윙 댄스 이야기를 하면, “그거요? 친구가 해봤는데 재밌다던데요?”라든가 “친구가 배우러 가자 그랬는데 왠지 안 내켜서 안 했어요” 정도의 대화는 가능해졌다.
20~30대 손잡고 자유롭게 만들어온 ‘젊은 문화’
스윙뿐 아니다. 몇년 전부터 서울에는 살사나 스윙, 탱고 등 ‘커플 댄스’의 세계로 빠져드는 남녀가 늘어났다. 이 세 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는 스포츠 댄스와 달리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문화의 커플 댄스라는 점이다. 누구한테 점수를 받아가며 평가받으려고 추는 게 아니라 그냥 즐거워서 춘다. 둘째는 20~30대 직장인들이 즐기는 동호회 문화라는 점이다. 관심 있는 사람이 동호회를 만들고 먼저 배운 사람들이 동호회 아래 기수를 가르쳐가면서 십시일반 하며 만들어온 문화라고 할까. 셋째는 한국에 정착한 지 이제 10년 정도 되는 젊은 문화라는 점이다. 셋 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국에 들어왔고, 급격히 성장했고, 이제 막 안정화하는 시점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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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윙 댄스 동호회 회원들이 커플 댄스를 즐기는 모습.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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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요점은 이런 새로운 커플 댄스를 즐기고 있는 젊은층의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거다. 이들은 직장이 끝나면 술을 마시러 갈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댄스 슈즈를 집어들고 택시를 탄다.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다. 어디에? 살사 댄서라면 살사 바에, 스윙 댄서라면 스윙 바에, 탱고 댄서라면 밀롱가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웃으며 춤을 청한다. “한곡 추실래요?” 춤추면서 대화도 나누고 “어느 동호회세요?”라며 음악 이야기도 한다. “여긴 음악이 별로인 것 같아요.” 춤을 추다가 친해져서 언니·오빠·동생도 된다. 아는 사람이 대폭 늘어나다 보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서 연애를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다이어트 삼아, 운동 삼아 하는 사람도 있고 푹 빠져서 열심히 추더니 일명 ‘고수’가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 대회에 나간다고 할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도 외국의 관련 춤 행사를 찾아다니는 재미에 푹 빠질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탱고 행사에 참여하려고 휴가를 내고 비행기에 몸을 맡기는 남녀도 결코 드문 케이스가 아니다. 뭔가에 빠진다는 건 그런 거니까. 이런 케이스들이 이런 커플 댄스를 배울지도 모를 당신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운명이다. 중국 출장을 갔다가 중국 현지의 살사 바에서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가능하다. 세계 어디에서나 즐기는 춤이니까.
음주가무…춤은 셋째로 중요한 유흥거리
한국의 이 젊은 커플 댄스 문화는 어느 정도 규모일까? 다 세어보기 어려우니 간단히 계산을 내보자. 잘되는 춤 동호회는 두달에 한번, 한 기수에 40명 정도를 받는다. 1년으로 치면 240명, 서울에 크고 작은 살사 동호회가 20개 정도 있으니 240 곱하기 20, 1년에 4800명, 적게 잡아 4000여명이다. 스윙·탱고까지 합하면 1년에 1만2000여명, 10년이면? 12만여명이다. 절반 가까이 이른 시간에 떨어져 나간다 해도 만만한 숫자가 아니다.
왜 이렇게 커플 댄스 문화가 무서운 속도로 정착한 것일까? 살사와 스윙, 탱고를 모두 거친 뒤 현재는 탱고를 가르치는 이인경씨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사람은 춤을 좋아해요. 하여튼 춤추는 걸 좋아하는 건 민족성인 것 같아요.” 그야 그럴듯하다. 송창식의 노래 ‘고래 사냥’ 가사에도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라는 대목도 있으니, 한국인에게 춤은 적어도 세번째로는 중요한 유흥 문화라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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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악귀의 PLAY 라이프 이즈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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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것만으로 다 설명되는 건 아니다. 대기업 무역회사에 다니는 이정수씨는 처음 스윙 댄스를 배우러 갔을 때 기억이 여전히 생생하다. 열다섯이 넘는 여성의 손을 일일이 잡아본 것은 처음이었을뿐더러, 그게 어떤 ‘남녀간의 작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중하게 인사하고 춤을 추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영화 <쉘 위 댄스> 주인공처럼 신이 났으며, 혼자 추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춤을 추는 것이 훨씬 ‘덜 쪽팔린다’는 것도 알았다고. “평생 누군가한테 춤을 신청해본 일이 없잖아요. 그걸 경험해본 건 참 좋은 일이었어요.”
그건 정말 그렇다. 적어도 해본 사람이 안 해본 사람보다 더 행복한 건 분명하다. 회사 경영진 입장에서야 달갑지 않을지 몰라도 절대 야근은 안 한다는 기세로 일을 후다닥 끝내놓고는 슈즈를 손에 들고 퇴근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직장인은 아직도 늘고 있는 추세다. 낮에는 뿔테 안경을 쓴 사무직 여성이지만 밤이면 화려한 살사 퀸…. 이런 영화 같은 캐릭터도 이제는 현실이다.
자유기고가·눈뜨고 코베인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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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놀이평가→커플 댄스
배워두면 좋을걸?
더하기 +
비용지출도: ★★★★
오디오 같은 취미에 비하면 싸기 이를 데 없다. 월 10만~15만원 정도.
현재 확산도: ★★★☆
이미 많이 확산된 편이다. 언더그라운드 문화로서는.
확산 잠재력: ★★★☆
비싸지 않은 취미인데다 춤추기 좋아하는 국민성.
매력도: ★★★★
몸이 좋아진다. 음악도 대폭 많이 알게 된다. 커뮤니티도 생긴다.
빼기 -
편견: ★★★☆
개선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자유부인’에서 비롯된 편견이 적지 않다. 손잡고 춤추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난점: ★★☆☆
모든 연인이 상대가 춤추고 다니는 걸 이해하진 않는다.
합계 ★★★☆
10년에 걸쳐 점점 더 많은 인구를 확보한 취미다. 앞으로 확산 가능성이 크다. 사회가 점점 더 개방적으로 변할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지금 배워 손해날 건 없다. 초기 비용이 적어 잘 안되면 안 하면 그만이니 위험부담도 적다.(★ 네 개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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