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8.04 11:24
수정 : 2011.08.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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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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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악귀의 PLAY 라이프 이즈 라이브
③ 바람 가르며 달리면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된다
30대 중반의 김봉준씨는 최근 친구의 권고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일반인들이 주로 뛰는 10㎞ 코스로, 그가 신청한 종목은 ‘미팅런’이라고 남녀가 각각 번호가 적힌 풍선을 받은 뒤, 같은 번호의 풍선을 든 사람과 짝지어서 달리는 코스다. 쉽게 말해서 추첨 미팅이고 말 그대로 달리기와 미팅이 결합한 코스였는데, 본래 달리는 것에는 영 젬병인 그가 이 대회에 참가한 중대한 이유였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던 그와 달리 상대 여성은 달리기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김봉준씨였지만, 한강 주변을 달리는 와중에 어느새 무척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 100m도 달리지 않는 것이 현대사회의 보통 인간이고 보면 10㎞를 달린다는 것이 결코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물론 힘들었지만 여러 사람과 함께 달리다 보니 버틸 만했고, 또 평소에는 차만 타고 다녀 볼 수 없던 풍경이 피부에 닿고 스쳐 지나갔다. 1시간3분의 기록으로 10㎞를 완주했다. 무려 1시간 동안 자발적으로 걷고 달린 것인데 그의 일생 동안 없던 일이었다. 참가는 미팅 때문이었지만 완주를 해냈을 때 느낀 뿌듯한 기분은, 본래의 불순한 의도를 넘어선 무엇인가를 그에게 안겨줬다.
사람들 사이를 달리며 일탈과 명상의 경지로!
주변을 돌아보면 ‘달리기’라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공원에서 경보에 몰두하는 아주머니부터 시작해서, 각종 시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여전히 이 ‘달리기’라는 취미는, 하는 사람만 왜 좋고 할 만한지 알 뿐 안 하는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취미인 것 같다. 스쿠버다이빙은 고가의 장비를 착용하는 멋스러움이 있고, 또 바다라는 낭만이 있다. 탱고나 살사 같은 취미는 음악에 춤을 춘다는 본래 멋진 판타지가 있다. 그런데 달리기라는 행위는, 글쎄, 멋진 옷을 입을 수도 없고 고가의 멋진 장비를 ‘구매’하는 것도 아니어서 마니아적인 소비욕구를 풀어주지도 않으며 보기에 힘들어 보이고 실제로도 힘들다.
어릴 때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가 있다. 구한말 금발의 외국인 선교사 둘이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조선 양반이 뒷짐을 지고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힘든 일은 노비들 시키지 왜 직접 하고 있소? 어리석긴….”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이런 말을 꽤 듣는다고 한다. “건강 때문에”라고 하면 나름 설명이 되긴 하는데, 달리기에 매료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건강이 목적’이라고 딱 자르기에는 불분명한 부분이 있었다.
20대 후반의 여성 이유진씨는 1년 전 한 신문사에서 주최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다. 강변북로를 도는 코스가 마음에 들어서 덜컥 신청을 했지만 10㎞를 달릴 걱정에 동네 근처에서 3번 정도 실전 연습을 했다. 만만치 않았다. 자신의 체력으로는 800m도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대회에서 달리기 시작하자 평소에는 사람이 갈 수 없는 도로 위를 달리는 일탈적인 느낌이, 몸으로 바람을 가르는 느낌이 즐거웠다. 각종 음료수를 주면서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리는 리듬을 유지하면서 자신의 몸에 집중한다는 것에는 묘한 정신적인 감흥이 있었다고 한다.
1시간 동안 인터넷 서핑도 하지 않고 문자도 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반복적인 한 가지에만 몰두한다는 것은, 우리가 의외로 전혀 하지 않는 일이다. 처음에는 ‘내가 왜 여기에서 이러고 있지?’ 등등 온갖 잡념이 들었지만, 점차로 호흡과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달리는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자신이 하는 생각들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몸에 말없이 귀기울이게 되더라고. 이건 마치 명상에 잠긴 승려의 이야기 같지 않은가? 이렇게 ‘건강을 위해서 달린다’고만 볼 수 없는 복잡한 매력 때문에 각종 마라톤 대회가 끊임없이 개최되고, 또 그 인구가 늘고 있는 듯하다. 단순한 행위라고 해서 보상도 단순하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삶의 풍요를 위해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고
각종 마라톤 대회뿐 아니라 집 근처 공원 등에서 달리기라는 행위를 정기적으로 유지하는 사람들도 물론 적지 않다. 달리기 애호가인 정원진씨가 쓴 책 <서른 살에 처음 시작하는 달리기>(북하우스·2011)를 보면, 우리나라의 달리기·마라톤 인구는 400여만명에 이르고, 1년 동안 200여회의 각종 마라톤 및 건강 달리기 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 뛰어야 해’라는 강박 때문이라면 이렇게 애호가들이 많을 리 없다. 체험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달린다는 행위는 일종의 문화적 행동인 듯했다. ‘삶을 풍요롭고 살아있게 하는’ 어떤 행위라는 것. 건강이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지만. 생각해보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검프도 건강해지려고 달렸던 것은 아니지 않은가? 검프가 달리기로 미 대륙을 횡단했던 것은 사상과 정치에 휘말려 죽은 그녀를 애도하기 위한 것이었고 반전운동을 비롯한 이것저것 복잡한 것이 잔뜩 엉켜 있는 시대를 단순하게 인식하기 위한 행위이기도 했다.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며 복잡한 상념을 떨쳐버릴 수 있다고 한다. 달리기는 삶을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단순하게 인식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행동인 것이었다.
각종 달리기 대회는 꽤 자주 열리므로 참가는 그리 어렵지 않다. 보통 2만~3만원 정도의 참가비를 내고 사전 신청을 해야 한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다양한 대회의 정보와 날짜를 볼 수 있고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해도 된다. 바다 코스를 달리거나 경마 경주로를 달리는 등의 각양각색의 마라톤 대회가 많다. 더운 여름이지만 당신도 일단 10㎞ 완주부터 목표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자유기고가·눈뜨고 코베인 보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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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별★ 놀이 평가 → 달리기
더하기 +
비용지출도 ★★★☆
처음에는 그냥 시작하면 된다. 자주 하게 되면 러닝화를 하나 장만하는 것이 필수라고. 다른 취미에 견줘 현격히 저렴하다.
현재확산도 ★★★☆
많다. 지금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취미는 아니지만, 달리기의 매력을 발견해가는 사람은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확산잠재력 ★★☆☆
폭발적으로 성장할 시기는 아닌 듯하다. 그게 뭔지 아예 모르는 사람은 보통 없으므로. 그 매력이 재인식될 때일지도.
매력도 ★★★☆
단순한 행위라는 점은 약점이지만 또 그만큼의 장점과 매력이다.
빼기 -
난이도 ★★☆☆
자신의 몸에 맞게 뛰면 된다. 어려울 것은 없다. 누구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므로. 마라톤 대회도 등수가 목표가 아니다.
편견 ★★☆☆
그게 뭐가 재미있겠느냐는 인식. 반드시 재미있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는 소비 품목이 넘쳐나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묵묵하고 단순한 행위로 보이는 이미지.
합계 ★★★☆
가장 기본적인 몸의 템포부터 찾아가자.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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