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7.07 10:48
수정 : 2011.07.0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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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진의 턴 온 더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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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진의 턴 온 더 뮤지컬
화장실에서 소리 지르던 그녀는 응급실에 실려갔다
보통 지방 공연을 다니다 보면 공연팀 전체가 그 지역 모텔에서 머물곤 한다. 그날도 공연차 지방 한 모텔에서 티브이를 보다, 영화 골라 보기 서비스로 개봉관에서 빨리 내려 놓쳤던 영화 <여배우들>을 찾아냈다. “그냥 볼만해”였던 주변의 평가와 달리 나는 웃겨 죽을 뻔했다. 영화 보는 내내 깔깔깔. 특히 고현정·최지우의 아주 치사한 싸움과 그 상황은 ‘주성치의 코미디’ 이상이었다.
뮤지컬 공연을 하다 보면 여배우들 사이의 끝 모를 시기와 질투를 자주 목격한다. 거의 매일 <여배우들>을 연습실과 공연장에서 라이브로 감상하고 있는 셈이다. 원래 배우는 무대에서 가장 빛나고 싶어하는 일이어서 그러려니 이해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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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더스필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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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 ㄱ은 뮤지컬 경력이 어느 정도 됐고, 여배우 ㄴ은 대중적 인지도는 있지만 뮤지컬 경력은 비교적 짧았다. 둘 사이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그다지 좋지 않았다. 서로 견제한다는 느낌이랄까? ㄴ은 나이도 어리고 후배였지만 왠지 주도권을 쥐고 싶어하는 듯 보였고 주변 남자배우와 스태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ㄱ의 눈에는 그 모습이 걸렸던 모양이다. 연습 도중 이들은 결국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 “너 뮤지컬 몇 년이나 했어?”, “너 몇 살이야?” 화장실에서 ㄱ이 소리 지르자, ㄴ은 분에 못 이겨 소리 지르다 기절해 응급실까지 실려갔다. 뭐, 기절한 척한 것도 같지만 다들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더블캐스트(번갈아 연기하도록 한 배역에 두 배우를 선정)가 되면 더 심해진다. 대체로 싸움이 나 서로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역을 맡는 나 같은 남자배우들은 그녀들의 ‘뒷담화’ 들어주기에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ㄷ과 ㄹ도 더블캐스트됐다. ㄷ은 당시 뮤지컬 신예스타로 떠오르고 있었고, ㄹ은 연예인 출신의 톱스타였다. 그날 ㄷ은 낮 공연이었고 ㄹ은 저녁 공연이었다. 낮 공연 뒤 우리나라에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뮤지컬 제작사 대표가 분장실을 찾았다. 소식을 접한 ㄷ. 급히 분장실 문을 열고 대본 읽는 척하다가, 그 대표가 지나가자 맨발로 뛰쳐나왔다. “바쁘신 대표님이 이렇게 제 공연을 보러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엄청난 감동의 소용돌이에라도 빠져든 듯 눈물까지 흘려가며 반겼다. 하지만 그 대표는 ㄹ의 저녁 공연을 보러 왔다가 시간이 일러 잠시 분장실에 들렀던 것.
ㅁ과 ㅂ은 비슷한 나이에 경력도 비슷해 문제가 생긴 경우다. 보통 더블캐스트일 경우에는 한 사람이 목 상태 등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배우가 대신 공연한다. 그날 ㅁ은 상태가 무척이나 안 좋았다. 하지만 ㅂ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둘 모두 “공연 같이 못 하겠다”며 울어댔다.
얼마 전 <블랙 스완>에서도 내털리 포트먼의 소름 끼치는 연기에서 ‘여배우’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쇼걸>에서는 계단에서 밀어버리기까지 하지 않던가? 물론 모든 여배우들이 다 그렇진 않지만, 적어도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음악창작단 ‘해적’ 대표·뮤지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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