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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21 19:34 수정 : 2011.07.21 19:34

고성자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어렸을 때 집안사정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쳤다가 뒤늦게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주부 고성자(46)씨에게 ‘글을 알게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고씨는 글을 배운 뒤 달라진 자신의 삶을 편지지 두 장에 적어 보내왔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가 틀린 부분은 그대로 싣는다.

나의 삶은 칙칙하고 우울했다. 그런데 요즘은 주변분들이 나의 표정이나 얼굴빛이 많이 밝아졌다고들 하신다.

어려서는 부모님이 안계시다는 것에 힘들었고 청소년기엔 마음의 갈등도 많았다. 누구하나 나를 위해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는데 그냥 막 살다 죽어버릴까?

그렇게 살기엔 내 삶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를 바로 세우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죽지 않으려고 외로움과 싸웠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용기를 주고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삶은 고난의 연속이였고 외로움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생각에 나는 남보다 결혼을 일찍하게 되었다. 정이 그리웠던 나는 남편의 부모님 아니 남편의 모든것이 다 좋았다 그리고 감사했다. 시부모님들께선 정이 많은 분들이셨다. 그 정때문에 남편의 가난함은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남편보다도 남편의 부모님이 더 좋았다 시어머니께서는 내게 엄마의 정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셨고 나 역시 노력했다 어머니와 밭에 앉아 어머니의 처녀적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의 친딸이 된것같았다. 나를 믿어주시고 정을 주신 어머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일은 남편과 딸 우리 세식구가 잘 사는 것이라 믿고 살았다. 하지만 나의 행복은 남편의 갑작스런 사고로 내 삶은 다시 우울해져갔다. 글을 모르는 내겐 세상은 암흑과도 같았다 남편은 내가 글을 모른다는 것을알고 세금이며 은행에 가는 일들은 모두 남편이 해 주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해야하는데 모든 것이 두려웠다.

내가 배우지 못 했음이 한스럽고 슬펐다. 특히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서류에 학력을 적어 내야 하고 숙제를 봐줘야 하는데 나의 무지함이 아이에게 어떻게 보일지도 걱정이었다 동사무소에서 서류을 떼려고 할때도 내 이름 석자 쓰는것도 손이 떨리고 등에선 진땀이 나고 글씨는 엉망이 되곤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지금도 조금은 떨리고 아주 잘 쓰는 글씨체도 아니지만 공부를 하면서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몇년전 춘의복지관에서 공부를 배우기 시작했고 공부를 하면서도 힘이 들때면 내가 이 공부를 해서 뭐한다고 이 고생인지 하고 회의가 들때도 많았다.

못 배웠어도 그냥저냥 살아왔는데 머리아프게 해서 뭐하나 하고 포기도 하려했다.

하지만 복지관 선생님들을 봐서라도 그만둘수가 없었다. 힘들때마다 격려로 힘을 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것같다 지금은 나 스스로 놀랄때가 있다. 알파벳도 모르던 내가 영어간판을 읽고 한자시험도 보고 게다가 초,중학교 검정고시 시험에도 합격하여 졸업장도 받았다. 내가 자랑스럽다.

딸도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초,중보다 많이 어렵다 쉽지는 않겠지만 나의 삶이 그러했듯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라면 언젠가는 되지않겠는가 하고 감히 생각해본다 기회만 된다면 대학도 가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그나이에 공부해서 뭐하냐고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모르고 사는 것보다. 알고 사는 것이 더 좋고 더 많이 들리고 더 많이 보이고 생각도 넓어진다. 그리고 나보다 못한 분들게 도움을 줄수있는 일이 더 많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달라졌음을 느낄때 가장 좋다.

춘의복지관 선생님들께 늘 감사하다 그리고 본받고 싶다.

인내와 끈기 없이는 힘든 일일텐데 언제나 웃으면 맞아주시는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공부보다 선생님들 보는 것이 더 좋을때도 많다.

그것이다 어머님들의 마음까지 알아주시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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