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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04 19:21 수정 : 2011.08.05 10:10

‘지하방’에서 사는 사람들

하수구·정화조와 같은 높이 삶
습기·냄새·곰팡이·벌레는 일상
부부관계 하는 소리까지 들려

자본은 땅을 파고들어갔다.

1980년대 들어 판자촌과 개량 한옥이 사라지면서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동네를 점령했다. 집주인들은 한층이라도 더 지어 세를 놓기 위해 지하를 팠다. 정부는 지하층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며 거들었다. ‘토지 효율’이란 명분이었다. 사회에서 내몰린 이들은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찾아 지하로 찾아들어갔다. ‘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지하주거자’들이 생겨났다. 문제는 심각했다. 좀도둑을 막고자 설치한 방범창이 오히려 안에 사는 사람들을 가두어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습기와 탁한 공기 때문에 장판·벽지는 곰팡이 그 자체였다. 지하층 생활이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연 이러한 ‘지하주거 모델’은 타당한 것인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논의는 활발했다. 진보 성향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관련 연구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연구도, 관심도 끊긴 상태다. 최근 중부권의 수해로 인해 다시금 지하주거자들의 생활환경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화조와 하수구를 베개 삼아 지내는 그들을 찾아갔다.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람 살 곳이 아니다’라고.

김희순(46·여)씨는 지금도 빗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이번 중부권 폭우로 자신이 살던 서울 관악구 서림동 다세대 주택 ‘지층 2호’가 폐허로 변했다. 당시 상황을 얘기하면서 손과 입술을 떨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지난 7월27일 아침 8시17분, 급여 60만원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지역자활센터에 출근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는 중이었다. 방학인 딸은 늦잠을 자고 있었다. 난데없이 ‘슉’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 유리가 깨지더니 ‘폭포’가 쏟아졌다. 발목까지 차오른 물은 순식간에 무릎, 그리고 목까지 차올랐다. 키 152㎝인 김씨는 필사적으로 현관문을 열려고 했다. 수압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살려주세요”라며 고함을 질렀다. 자고 있던 딸이 허우적거리며 나왔다. 119에 전화했다. 받질 않았다. “엄마, 화장실!” 딸이 고함을 질렀다. 유일하게 방범창이 없는 곳이었다. 1m30㎝ 높이에 있는 변기를 밟고 올라가 좁은 환기창으로 탈출했다. 김씨는 평소 같았으면 못 빠져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살려고 하니깐 그 좁은 데로 몸이 나가지더라”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이내 “괜히 산 거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가 지하주거자가 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편의점과 식당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하나뿐인 딸을 위해 교육에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하지만 남편 사업이 실패하고 빚더미에 올랐다. 갈등이 커져 이혼까지 하게 됐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7평 지하층을 겨우 찾았다. 처음 겪어보는 지하층은 악몽이었다. 악취는 기본이었다. 위층에서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심지어 ‘부부관계’ 하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사방에는 곰팡이투성이였다. 화장실 변기에 앉으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정화조가 화장실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정화조·하수구와 같은 높이에 사는 셈이다. 김씨는 “투정 한마디 안 한 고3 수험생 딸이 고맙다”며 또 눈물을 흘렸다.

“이제 지하방 없어져야 해요. 여기가 사람 살 곳인가요. 당장 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김씨는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다. 나가려면 계약을 중도 해지하고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설사 나간다 하더라도, ‘지상층’ 방은 보증금 1000만원 이상에 월세가 최소 45만원은 돼야 한다. 전세는 꿈도 못 꾼다. “살면 뭐해요. 이제 숟가락 하나 없는데.” 그의 볼엔 또 하나의 눈물길이 더해졌다.

폭우 때 물에 잠겨 필사의 탈출
나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이런 주거형태, 과연 옳은가

지하주거자들에게 방범창은 감옥의 쇠창살이기도 하다. 김희순씨가 수해 당시를 회상하며 상념에 잠겨 있다.(왼쪽) 김희순씨 모녀가 탈출한 화장실의 환기창. 평소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높은 변기’ 덕에 목숨을 구했다.
이순자(62·여)씨는 ‘초보’ 지하주거자다. 올해 3월14일 이사를 왔다. 서울 사당동에서 낙성대로 넘어가는 까치산 언저리 전세 6000만원 11평 지하방이 이씨의 집이다. 이씨는 원래 서울 강남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아온 주부였다. 58평 아파트에 살며 자녀 셋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문제의 시작은 남편의 외도였다. 1997년 구제금융 즈음해서 남편의 사업이 무너졌다.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그래도 남편의 외도는 그치지 않았다.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이혼을 결심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우면산 기슭 비닐하우스촌에 정착했다. 비닐하우스촌은 그래도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어 스트레스가 덜했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들이 모아놓은 책도 버리지 않고 잘 보관해 두었다. 잘 살아오나 싶더니, 갑자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에서 비닐하우스촌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현 정부의 공약사항인 ‘보금자리주택’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보상금으로 1900만원을 받았다. 그 돈으로 서울에서 집을 얻기란 불가능했다. 토지주택공사에서 그나마 전세자금을 연 2% 금리로 대출해 주었다.

반지하방은 온통 곰팡이 천지였다. 그나마 같이 살던 막내딸은 친구 집으로 가버렸다. 틈새란 틈새엔 모두 물이 스며들어서 신문지로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아직 짐 정리도 못해 집이 아니라 창고 같다. 아이들이 다 흩어져 살아 도와줄 일손도 없다. “말도 못해요. 이게 사는 겁니까. 죽지 못해 사는 거지요. 비닐하우스가 훨씬 나아요.”

이씨는 지금도 14년째 항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 여기에 고지혈증·당뇨병약까지 먹는다. 최근엔 ‘철 결핍성 빈혈’까지 찾아왔다. 냉장고에 병원에서 준 ‘식이요법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억지로라도 먹기 위해서다. 이사 와서 하루에 한끼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했다. 우울증도 더 심해지고 있다. 하루에 세번 먹던 약도 요새는 네번 먹는다. “의사가 하루에 두시간씩 의무적으로 햇볕을 쐬라고 하는데, 해를 볼 일이 없어요.” 이씨는 멍하니 습기 찬 천장을 쳐다봤다.

국내 거의 유일한 ‘지하주거자’ 연구자인 홍인옥 박사의 2002년 논문 <지하주거와 지하셋방>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아 밤낮을 구별하기 힘들고 그래서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곳, 한여름에도 습기를 없애기 위해 정기적으로 난방시설을 가동해야 하며, 조금만 비가 내려도 혹시 물이 들지 않을까 불안에 떨어야 하고, 큰비가 내렸다 하면 여지없이 침수되는 곳, 결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되는 곳, 마땅히 불법 건축물로 분류되어 폐쇄되어야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지하방들이다.”

글·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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