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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방’에서 사는 사람들
하수구·정화조와 같은 높이 삶습기·냄새·곰팡이·벌레는 일상
부부관계 하는 소리까지 들려 자본은 땅을 파고들어갔다. 1980년대 들어 판자촌과 개량 한옥이 사라지면서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이 동네를 점령했다. 집주인들은 한층이라도 더 지어 세를 놓기 위해 지하를 팠다. 정부는 지하층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며 거들었다. ‘토지 효율’이란 명분이었다. 사회에서 내몰린 이들은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찾아 지하로 찾아들어갔다. ‘쌌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 ‘지하주거자’들이 생겨났다. 문제는 심각했다. 좀도둑을 막고자 설치한 방범창이 오히려 안에 사는 사람들을 가두어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습기와 탁한 공기 때문에 장판·벽지는 곰팡이 그 자체였다. 지하층 생활이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연 이러한 ‘지하주거 모델’은 타당한 것인가?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논의는 활발했다. 진보 성향의 연구소를 중심으로 관련 연구보고서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연구도, 관심도 끊긴 상태다. 최근 중부권의 수해로 인해 다시금 지하주거자들의 생활환경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정화조와 하수구를 베개 삼아 지내는 그들을 찾아갔다.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람 살 곳이 아니다’라고. 김희순(46·여)씨는 지금도 빗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이번 중부권 폭우로 자신이 살던 서울 관악구 서림동 다세대 주택 ‘지층 2호’가 폐허로 변했다. 당시 상황을 얘기하면서 손과 입술을 떨었다.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지난 7월27일 아침 8시17분, 급여 60만원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지역자활센터에 출근하기 위해 도시락을 싸는 중이었다. 방학인 딸은 늦잠을 자고 있었다. 난데없이 ‘슉’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 유리가 깨지더니 ‘폭포’가 쏟아졌다. 발목까지 차오른 물은 순식간에 무릎, 그리고 목까지 차올랐다. 키 152㎝인 김씨는 필사적으로 현관문을 열려고 했다. 수압 때문에 열리지 않았다. “살려주세요”라며 고함을 질렀다. 자고 있던 딸이 허우적거리며 나왔다. 119에 전화했다. 받질 않았다. “엄마, 화장실!” 딸이 고함을 질렀다. 유일하게 방범창이 없는 곳이었다. 1m30㎝ 높이에 있는 변기를 밟고 올라가 좁은 환기창으로 탈출했다. 김씨는 평소 같았으면 못 빠져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살려고 하니깐 그 좁은 데로 몸이 나가지더라”며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이내 “괜히 산 거 같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가 지하주거자가 된 것은 지난해 7월이다. 편의점과 식당을 운영하며 남부럽지 않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하나뿐인 딸을 위해 교육에도 아낌없이 투자했다. 하지만 남편 사업이 실패하고 빚더미에 올랐다. 갈등이 커져 이혼까지 하게 됐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7평 지하층을 겨우 찾았다. 처음 겪어보는 지하층은 악몽이었다. 악취는 기본이었다. 위층에서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심지어 ‘부부관계’ 하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사방에는 곰팡이투성이였다. 화장실 변기에 앉으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정화조가 화장실 안에 있기 때문이었다. 정화조·하수구와 같은 높이에 사는 셈이다. 김씨는 “투정 한마디 안 한 고3 수험생 딸이 고맙다”며 또 눈물을 흘렸다. “이제 지하방 없어져야 해요. 여기가 사람 살 곳인가요. 당장 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김씨는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다. 나가려면 계약을 중도 해지하고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설사 나간다 하더라도, ‘지상층’ 방은 보증금 1000만원 이상에 월세가 최소 45만원은 돼야 한다. 전세는 꿈도 못 꾼다. “살면 뭐해요. 이제 숟가락 하나 없는데.” 그의 볼엔 또 하나의 눈물길이 더해졌다. 폭우 때 물에 잠겨 필사의 탈출
나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이런 주거형태, 과연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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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주거자들에게 방범창은 감옥의 쇠창살이기도 하다. 김희순씨가 수해 당시를 회상하며 상념에 잠겨 있다.(왼쪽) 김희순씨 모녀가 탈출한 화장실의 환기창. 평소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높은 변기’ 덕에 목숨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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