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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화천군 파로호 주변에 살고 있는 동촌리 주민들에겐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이마저도 겨울엔 호수가 얼어 고립된다. 마을 주민 이한영(43)씨가 배웅을 마친 뒤 돌아가고 있다. 오른쪽엔 유일하게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진돗개가 취재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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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마다 고립되는 사람들
모든 사람은 이동할 권리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자 중요한 권리다. 이것을 빼앗는 자체가 ‘형벌’이다. 범죄 피의자가 가장 먼저 박탈당하는 것도 바로 이 자유로운 이동권이다. 일반 시민들의 경우, 겨울철 폭설과 같은 기상이변 때문에 이동권이 제약받는 것을 한두번쯤 경험한다. 기상이변에 따른 불편이야 누구나 감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상이변도 아닌 평범한 기상 상황에도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된다면, 분명 국가의 방재체제에 불만을 품을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늘 이동의 자유를 제약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불만과 불편함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낮은 목소리’는 자유로운 이동에 장애를 겪고 있는 곳을 찾아갔다. 강원도 화천의 ‘동촌마을’이다. 동촌마을은 분명 ‘육지’임에도 배가 없으면 들어가지 못한다. 호수가 어는 1월 말부터 녹는 4월까지는 여지없이 ‘고립’된다. 다행히 아직 물이 얼지 않아 취재를 할 수 있었다. 포털 지도검색에도 없는 곳도로 끊겨 배 타고 들어가야…
자가용 없어도 배는 필수
여든 넘은 노인도 배 몰아 그곳은 내비게이션에도, 포털의 지도 정보에도 나오지 않았다. 가야 할 곳의 정확한 주소는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동촌2리’다. 포털 지도 서비스에서 동촌리를 검색하니 산 가운데 ‘점’ 하나가 찍혔다. 지도상에는 평화의 댐으로 가는 460번 지방도가 동촌리를 멀리 우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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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촌2리 김정일 이장이 배를 몰며 마을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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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로호 주변에 터 잡은 마을 주민들. 한두 가구씩 모여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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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어린 막내가 ‘이장님’…
여름엔 관광객들 간혹 오지만
호수 어는 겨울엔 완전 고립 진돗개가 가장 먼저 마중을 나왔다. 목걸이도 없다. 묶어 놓을 필요가 없으니까. 기름을 나를 수가 없어 심야전기 보일러로 난방을 한다. 마침 점심시간이 돼서 이장의 어머니가 끓여준 떡만둣국에 고들빼기김치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더 나누었다. 동촌리로 오는 뱃길은 두개다. 비수구미 쪽과 화천읍 구만리 선착장이 출발점이다. 젊은 사람들은 보통 비수구미 쪽에 차를 대고 이동한다. 거리는 4㎞ 정도다. 노인들은 차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 구만리 선착장에 배를 대고 거기서 버스로 이동한다. 그나마 비수구미는 평화의 댐 때문에 접근이 가능해졌다. 평화의 댐으로 가는 길이 뚫리면서 마을에 조금 더 가까운 곳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게 된 셈이다. 그 전에는 모두 22㎞ 정도 떨어진 구만리 선착장에서 노를 저어 들어왔다. 4시간 정도 걸렸다. 전기도 88올림픽 이후인 1989년에 처음 들어왔다. 그 전까진 방은 호롱불로 밝히고 전기가 급하면 자동차 배터리를 썼다. 동촌마을 사람들은 예전부터 콩 농사를 많이 지었다. 땅이 척박하니 논은 없고 전부 밭이다. 그마저도 지금은 노인들만 있다 보니 대부분 농사는 접었고, 민박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한다. 여름에는 낚시 손님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그렇다고 다른 유원지처럼 붐비는 것은 아니다. 이장네도 원래는 어업을 했다. 파로호는 정말 다양한 민물고기가 많은 곳이다. 그런데 그마저도 군에서 어류를 보호해야 한다며 금지시켰다. 이장은 고기가 정작 없어진 건 어업 때문이 아니라 평화의 댐을 만들면서 물을 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고기 씨가 다 말랐단다. 어류를 보호한다면서 어마어마하게 큰 유람선을 운행하는 것도 이해 못하겠다고 했다. 이장네도 민박을 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엔 친구와 함께 투자를 해서 펜션을 지었는데, 손님이 많지 않아서 걱정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오기가 힘드니 손님들이 찾아올 리가 없다. 이장은 텅텅 빈 펜션을 보여주면서 작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1월 말이 되면 물이 얼기 시작하는데 그러면 오고 싶어도 못 온다. 노인들은 12월에 월동 준비를 끝내고 완전한 칩거에 들어간다. 이장의 경우 물이 얼면 4륜 바이크에 썰매를 매달아 얼음 위를 달려 읍내를 오고 간다. 겨울에 일단 얼기 시작한 호수의 얼음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 얇아도 얼기 시작하는 얼음은 단단해서 깨지지 않고, 아무리 두꺼운 얼음이라도 녹기 시작할 때면 위험하단다. 이곳 사람들에게 4륜 바이크는 배처럼 필수품이었다. 웬만한 가정에는 하나씩 있다. 짐을 실어 나르기 위한 용도다. 보통 6월이 되면 장마를 대비해 파로호 물을 빼기 시작하는데, 30~40m는 수위가 빠진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배를 대는 곳도 집에서 멀어진다. 거기서 짐을 집까지 나르기가 너무 힘든 것이다. “길이 왜 안 날까요?”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던져봤다. “저희도 건의 많이 하죠. 군에서도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고. 그런데 자꾸 담당 공무원이 바뀌면서 일처리가 늦어지더라고요. 거기다가 군에서는 자동차 길보다 탐방로를 내는 게 관광객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오히려 꺼리는 측면도 있어요. 어느 정도 일리는 있어요. 하지만 자연 훼손이 두려우면 현지 주민만 이용할 수 있는 길이라도 만들어 줘야죠.” 길이 안 나는 것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생태마을 조성 탓도 있지만, 원주민들이 대부분 떠난 마을 토지의 상당수가 외지인 소유인 탓도 있다. 개발 바람을 탄 투기가 우려되는 것이다. 워낙 풍광이 좋은 곳이라 이미 군데군데 별장도 들어섰다. 김 이장도 “여기 땅 90%는 외지인 소유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달달한 믹스 커피의 맛이 쓰게 느껴졌다. 이번엔 배로 10분 거리에 있는 박영목(85) 할아버지 댁에 찾아갔다. 할아버지는 마루에서 자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곳에 50년 전에 들어왔다. 처음 왔을 때 할머니를 뗏목에 싣고 4시간 노를 저어 들어왔다. 할아버지의 첫마디는 이랬다. “여기가 섬 아닌 섬이오.” 귀가 어두운 할아버지 때문에 기자의 목소리가 커지자 안방에서 자고 있던 이화영(84) 할머니가 깼다. 손님이 있는 것을 본 할머니는 곧 커피를 내왔다. 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조근조근 말해주었다. “원래는 춘천에서 살았는데, 거기로 피난 온 한 할머니를 만났어. 근데 그 할머니가 자기가 살던 데가 그렇게 경치도 좋고 물도 좋고 했다고 자랑을 하는 거야. 그래서 전쟁 끝나고 살기도 어렵고 하니깐 한번 가보자 하고 왔지. 뗏목을 타고 4시간을 들어오는데, 뭐 이런 데가 있나 싶더라고. 처음엔 할아버지랑 많이 싸웠어.” 40대 ‘젊은이’들은 썰매 사용
“예전엔 4시간 노저어서 왔어”
개발과 환경보호 딜레마 속
지자체는 생태관광에 중점 할머니는 무릎관절염이 심해 거동이 불편하다. 한달에 한번 춘천에 있는 병원에 간다. 구만리 선착장까지 할아버지가 30분 동안 배를 몰아 데려다 주면 거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춘천에 간다. 올 때는 다시 할아버지가 마중을 나간다. 시간을 어떻게 맞추는지 궁금했다. 여기 사람들은 한시간 정도는 그냥 기다린다고 한다. 불편한 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전제품 하나 고장나도 마중을 나가서 수리기사를 실어와야 한다. 출장비는 출장비대로 비싸다. 거기다가 기름값은 기름값대로 들어간다. 할아버지에게 “이제 나이가 더 드셔서 배 못 몰면 어떡하실 거냐”고 물었다. 허탈한 답이 돌아왔다. “그냥 집에 있어야지 뭐. 허허.” 할머니는 “제발 길 좀 내달라고 기사 좀 써줘”라며 연신 언성을 높였다. 아직 젊은 이장과 달리 할아버지네는 이제 4월까지 완전한 고립에 들어간다. 이곳의 물은 늦게 얼고 늦게 풀린다. 할아버지는 “자다가, 텔레비전 보다가, 자다가, 또 텔레비전 보다가 그런 식으로 시간 보내”라며 또 허허 웃었다. 길을 내는 것이 쉬운 건 아니다. 대규모 토목사업이니 말이다. 예산이 100억원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22가구를 위해 그런 예산을 쓴다는 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황상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돌아갈 채비를 했다. 이장은 돌아가는 길에 화천읍에서 택배를 부쳐 달라고 짐을 부탁했다. 된장을 담가 택배 판매를 하고 있었다. 한번 읍내에 나갔다 들어오는 게 ‘큰일’인 사람의 부탁이라 충분히 이해가 가능했다. 길이 없어서 좋은 점은 없냐고 물었다. “있죠. 일단 공기 좋잖아요. 그리고 좀도둑들도 없고. 길 나도 그게 걱정이에요. 여기 노인들 다 문 열어놓고 사는데… 길 뚫리면 별별 사람들 다 들어올 텐데….” 동촌을 빠져나오자마자 눈발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위태위태하게 서울로 가는 길에 할머니가 배웅하면서 한 말이 떠올랐다. “집에만 있으니깐 시간이 너무 더디게 가. 시간이 빨리 가야 빨리 죽을 텐데….” 화천/글·사진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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