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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19 19:36 수정 : 2012.01.19 19:36

안미선 한국여성민우회 상근활동가

일·가정 양립하게 해야
‘삶의 온전함’ 회복 가능

상담을 해온 한 여성의 이야기다. 8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한 그이는 아이를 출산하기 위해 휴가 두 달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정식노동자가 아니므로 출산휴가를 얻을 처지가 아니라는 차가운 답을 상사에게 들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어요. 한 달만 휴가를 주시면 아이를 낳고 오겠습니다.” 그러나 출산을 할 한 달의 시간도 거절당했다. “그럼 휴가를 가지 않을 테니 아이 낳고 3일 만에 오겠습니다.” 그 여성노동자는 만삭의 몸으로 호흡곤란이 올 정도로 울었다고 했다. 출산휴가를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해고되었다.

“임신 사실을 알리자 그때부터 회사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면서 나가라고 했다. 나가지 않으면 실업급여와 퇴직금도 줄 수 없다고 했다.” “임신을 했다고 하니 회사에서 3배 이상 노동강도가 높은 일을 시키고 못하면 나가라고 했다.” 한국여성민우회 고용평등상담실에 2011년에 들어온 상담 내용이다. 임신, 출산과 관련한 해고 및 불이익 상담이 2010년 14.9%에서 2011년 17.3%로 증가하였다.

임신을 하면 퇴직을 권유받는 일이 아직도 일어난다. 산전후휴가 기간과 육아휴직 기간은 절대적인 해고 금지 기간인데도 해고를 당한다. 괘씸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시키는 일만 해야지 감히 아이를 낳는다면서 회사에 누를 끼치고 특혜를 기대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두 배, 세 배의 일을 시켜도 묵묵히 수행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생활이 있고 아이가 있고 부모로서의 권리가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노동자를 회사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과 생활, 노동자와 부모, 이윤과 인간은 철저히 별개의 문제로 취급된다. 그러므로 임신, 출산,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은 ‘비정상적인 노동력’ 취급을 받는다.

2006년에 산전후휴가 90일 사회분담화가 도입되었지만 막상 산전후휴가를 사용하고 복귀하려는 여성이 종종 맞닥뜨리는 것은 퇴사 종용이다. 임신과 출산은 해고,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 연관성 없는 업무에 배치되거나 부당한 원거리 발령을 받는 것, 인사상 여러 불이익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모성보호 관련법이 있지만 한국 사회의 노동시장은 여전히 부모가 될 권리, 출산과 육아를 할 권리에 적대적이다. 모성은 일터에서 낙인처럼 작용한다. 정규직 한 사람 쓸 자리에 더 값싼 노동자들을 쓸 수 있다는 논리로, 기업은 임신과 출산을 해고와 비용절감의 수단으로 삼는다. 500인을 전후한 대규모 사업장에서도 기업부담을 이유로 노동자의 임신과 출산을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정규직 여성이 임신과 출산, 양육을 하며 겪는 불안한 고용상황도 심각하지만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는 남녀고용평등법과 관련한 차별금지 조항이 있어도 실질적으로 적용받지 못한다. “결혼을 할 것이냐?”는 질문은 임신, 출산, 양육 상황에 놓인 노동자를 고용 시장에서 아예 배제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회의 일원으로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현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근로조건이나 환경을 관리 감독하는 국가의 행정력은 일터에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는 임신과 출산은 여전히 여성에게 핵심적인 고용 단절 요인이고 여성이 저임금 노동자, ‘노동 빈곤층’이 되게 하는 요인이다. “임신한 것이 죄입니까?” 출산휴가 직전까지 배가 부른 것을 숨기고 일했다는 여성노동자가 되묻는다. 고립된 상황에서 여성들은 회사 쪽의 부당해고 압력에 끝까지 저항하지 못하고 해고당하거나 고용 유지를 위해 어떤 상황이라도 참고 견디려 애쓴다.

이상한 일이다. 이들은 노동자이면서 부모이기도 하고, 일터에 가지만 투표장에도 간다. 기업에 이윤을 벌어주고 국가의 일원을 재생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을 누리기 위해 일하고 생활하는 것이다. 일터의 노동자가 일터 밖에 나가면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자본은 노동자를 멈추지 않는 기계 같은 노동력으로 철저히 환산하며 삶을 추방한다. 아이를 낳든 회사를 그만두든 양자택일하라고 잔인한 답을 부추기며 생색내며 군림한다.

우리나라의 유례없이 낮은 출산율은 일터에서 보장하지 않는 모성권에 대한 또다른 답변이다. “전례를 남길 수 없다”고 육아휴직을 거부하는 회사에 맞서 싸우는 한 노동자 뒤에는 숨죽여 지켜보는 다른 노동자들이 있다. 함께 싸우지 못하고 손을 내밀지 못하지만 지켜보는 이들로서 같이 상처받고 다음에 자신의 문제로 돌아올 상황에 염려하는 이들이 있다.

세계 최장의 장시간 노동이 생활세계를 잠식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일과 생활이 양립해야 한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노동력으로, 혹은 가정의 전담자로 취급되는 여성노동자에게 더욱 절실한 과제가 된다. 정규직 여성이든 비정규직 여성이든 원한다면 아이를 낳을 수 있어야 하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이를 돌보고 싶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를 사회적으로 보장받아야 한다. 하루에 열두 시간을 일해야 생존할 수 있다거나, 아이를 낳지 않아야 회사에 계속 다닐 수 있다거나, 생활을 위한 시간을 절대 요구하지 않아야 완전한 노동자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을 도구화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을 낳고 기르는 책임을 손 안 대고 코 푸는 식으로 여성노동자에게만 짐 지우고, 또 임신과 출산을 했다는 이유로 여성노동자를 무가치한 노동자로 평가하며 결국 생존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회다. “노동자에게 임신과 출산, 육아를 허락하라”는 요구는 일터와 가정을, 일과 생활을 양립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사람을 쓰고 버리듯 노동력을 착취하는 편협하고 위험한 문화와 제도 속에서 최소한 삶의 온전함을 되찾자는 것이다. 안미선 한국여성민우회 상근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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