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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3 19:42 수정 : 2011.07.17 21:42

고종석 언론인

헌법은 시민과 국가의 관계를 밝히고 이루어내는 최고규범이다. ‘(규정된) 상태’라는 뜻에서 온 독일어 ‘페어파숭’(Verfassung)이나, 본디 ‘이룸’이라는 뜻을 지닌 프랑스어 ‘콩스티튀시옹’(constitution)은 헌법의 이런 최고규범성을 설핏 드러낸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주춧돌이자, 대한민국을 휘감아 싸는 거푸집이다.

대한민국 시민이라면 대한민국 헌법을 한 번이라도 읽어봐야 마땅하다. 그것은 자신의 헌법적 권리와 의무를 알려줄 뿐 아니라, 대한민국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정치적 성찰을 북돋운다. 헌법 조문들 일부는 추상성이 높다. 예컨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1조1항)라는 조문만 해도 그렇다. 이 조문의 뜻을 오롯이 깨달으려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앎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 한편, 난삽한 법률 용어들이 나풀거리는 하위 규범들에 견주어, 헌법 조문 대부분은 외려 일상어에 더 가깝다. 헌법을 정식으로 공부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헌법학 전문서적을 읽을 필요는 없다. 전문(前文)과 본문 130조, 부칙 6조로 이뤄진 대한민국 헌법을 읽는 것으로 충분하다.

헌법은 그 전문에서 우리 대한국민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일제 시기 한국인들의 친일행위 규명을 훼방놓거나, “8월15일은 건국절” 운운하거나, 4월 혁명이 낳은 민주주의를 압살한 5·16군사반란을 추어올리는 것은 위헌적 망동이다. 우리 사회 우익세력은 이런 헌법 파괴 행위를 태연히 저질러왔다. 다시 말해, 그들이 입만 열면 떠벌려대는 ‘국가정체성’을 훼손해왔다.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32조1항)는 구체적인 조문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10조)는 다소 추상적인 조문에서도, 우리는 1979년 YH무역 사건의 김경숙이나 지금 한진중공업 사태의 헌걸찬 투사 김진숙 같은 ‘아름다운 여자들’을 떠올리게 되고,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곱씹어보게 된다. 또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20조2항)는 조문은 서울시장 시절부터 이어져온 이명박 대통령의 부적절한 친개신교 언행만이 아니라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의 파시스트적 언동이 명백한 위헌 행위임을 확인시킨다.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17조)거나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18조)는 조문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이나 거대 기업의 종업원 감시(예컨대 삼성SDI의 노동자 휴대폰 위치추적 사건)를 불쾌하게 되짚어보게 하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33조)는 조문 역시 삼성재벌의 소위 ‘무노조 경영’이 위헌적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34조2항)는 조문은, ‘무상’이나 ‘복지국가’라는 말엔 발끈 성을 내면서도 수십조원을 들여 소위 4대강 사업에 매진하는 이 정권의 행태를 시시비비할 근거가 되고,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46조1항)는 조문은 너무 당연한 일을 왜 헌법에까지 규정해 놓았을까 곰곰 생각하게 한다. 대뜸 떠오르는 국회의원들 얼굴도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11조1항)거나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는 조문에는 ‘스폰서 검사’니 ‘전관예우’니 하는 말과 더불어 몇몇 재벌가 ‘오너’들의 얼굴이 포개진다. 앞선 대통령들처럼 이 대통령도 취임에 즈음해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노력하겠다”(69조)고 선서했다. 그 선서가 실천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는 것은 대통령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시민 모두의 의무다. 현실이 그 헌법을 파괴하고 있을 때, 거리에서 학교에서 노동현장에서 투표소에서 그 현실을 바로잡으려 애쓰는 것 역시 국민의 의무다. 그러려면 우선 헌법을 읽자. 한 시간이면 족하다.

고종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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