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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4.29 20:35 수정 : 2012.06.06 11:05

고종석 언론인

4·11 총선을 코앞에 두고 터진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은 많은 사람들을 질겁하게 했다. 비록 오래전 인터넷 방송에서 한 말이라고는 하나, 그 결이 너무 거칠었다. 나는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이 온갖 호들갑을 떨며 이 문제를 쟁점화했을 때, 김용민씨가 후보를 사퇴했으면 좋겠다는 쪽이었다. 그러나 그는 버텼고, 아마도 이 막말 파문이 부분적으로 지역구 여론을 악화시킨 탓에, 낙선했다. 그러나 총선 패배 직후 민주당 한 모퉁이에서 이 막말 파문을 강원·충청권의 표심에까지 연결시키며 김용민씨를 비판한 것은 해도 너무했다. 민주당이 진 것은 오락가락하는 이념적 좌표와 무원칙한 나눠먹기 공천 탓이었지, 김용민씨의 막말 탓이 아니었다. 아무튼 김용민씨는 그 며칠 동안 받은 십자포화와 그에 이은 낙선으로, 8년 전에 했다는 막말의 값을 충분히 치렀다.

‘막말’이라는 것은 ‘막돼먹은 말’이라는 뜻일 테다. 그 점에서 김용민씨가 했다는 말은 분명히 막말이었다. 그런데 그 ‘막돼먹음’이라는 것은 꼭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까? 아니다. 말 가운덴 교양의 껍질로 그 ‘막돼먹음’을 감춘 채 사람의 마음을 후벼내는 진짜배기 악성 막말들이 있다. 인터넷 방송에서 한 말이라는 점이 김용민씨의 발언 내용을 오롯이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 발언의 적절성을 판단할 때 고려할 정황은 충분히 된다. 그 방송의 접근성이 높지도 않았을 테고, 또 그 방송을 듣는 사람 다수는 그런 욕설에 꽤나 익숙했을 테니 말이다. 김용민씨의 발언은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의 선거운동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돼 많은 사람을 경악시켰지만, 실제로 8년 전 그 인터넷 방송을 들은 청취자 가운데 그 발언의 ‘막돼먹음’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 있었을 성싶지는 않다. 청취자들은 일종의 하위문화로 그것을 즐겼을 테다.

“애들이 뭘 보고 자라겠느냐”며 “이런(김용민씨를 공천한)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순 없다”던 새누리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막말 혐의에서 자유로운가? 원체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보니 막말을 할 기회가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과연 그런가? 박 위원장한텐 미안하지만 내가 지난번 이 자리에서 한 얘기를 다시 들춰야겠다. 2007년 사법부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재심해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을 때, 박 위원장은 이를 두고 “저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일축했다. “저에 대한 정치공세”. 참 단정한 말이다. 여기엔 아무런 비속어도 섞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은 그 조작사건에 휘말려 죽고 망가진 사람들에게 다시 휘두른 흉기였을 뿐만 아니라, 그 뒤 수십년간 감시와 따돌림 속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아온 그 가족들의 심장을 도려내는 비수였다. 막돼먹음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고, 막말이란 바로 이런 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터넷 방송과 인혁당 사건이라는 맥락을 걷어내고 김용민씨 발언과 박 위원장 발언을 나란히 견주면, 지탄받아야 할 것은 김용민씨 쪽인 것 같다. 그러나 그 말들을 본디 맥락에 되돌려놓는 순간, 어느 쪽이 더 막돼먹었는지가 또렷이 드러난다. 인터넷 방송이라는 맥락 속에서 김용민씨 말에 베인 사람은 거의 없었을 테지만, 인혁당 사건이라는 맥락 속에서 박 위원장 말에 베인 사람은 수도 없이 많았을 것이다.

말의 막돼먹음이 꼭 그 말에 베인 사람 수에 달린 것은 아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소위 ‘제수 성폭행 미수’ 의혹을 받아왔던 새누리당 김형태 당선자가 당에서 쫓겨날 처지에 몰리게 됐다. 그때 김아무개라는 우익 만담가는 새누리당을 타박하며 “10년 전의 것이 왜 이제 불거져 나왔는지 석연치 않”다고 썼다. 이 문장에는 아무런 욕설도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이 발화는, ‘제수 성폭행 미수 사건’이라는 제 맥락에 놓이는 순간, 한 성추행 피해자의 전 인격을 짓밟는 막돼먹음을 띠게 된다.

김용민씨의 막말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막돼먹기로 따지면, 박 위원장의 ‘정치공세’ 발언이나 김아무개씨의 ‘왜 이제’ 발언이 훨씬 더 막돼먹었다. 서울 강북 지역을 ‘컴컴한 곳’이라 이른 김종훈씨의 ‘솔직한’ 발언 역시 김용민씨 말보다 더 막돼먹었다.

고종석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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