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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8 20:54 수정 : 2011.07.10 15:24

낸 골딘 사진집 중 ‘부두에 서 있는 귀도, 베네치아, 이탈리아’(1998).(맨 위) 열화당 제공 리만근 사진집 <북녘 일상의 풍경> 중 ‘오리치기’.(아래 왼쪽) 현실문화연구 제공 구본창 사진집 <시선, 1980> 중 원효로 풍경.(아래 오른쪽) 와우이미지 제공

시인 신현림씨가 권하는 사진집
오래전 잊고 잃은 한국의 모습수묵화 같은 남해 섬 자연 풍경
작가 심리 보여주는 심상사진노동자 투쟁 등 삶의 모습 담아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도 사랑스러운 산이 눈 안에 가득 들어온다. 비로소 푸른 자연이 내 몸이라 깨닫는다. 건물에 살며 건물에 가려진 자연의 한 부분만 보니, 우주나 인생 전체를 느끼기 힘들다. 이런 성찰도 잠시, 또 기계처럼 반복된 생활에 묻히고 만다. 현대는 아름다운 가치를 늘 젊고 새로운 것에 두고, 낡거나 늙음을 용납하지 않는 정서가 크다. 하지만 시적 정취를 찾고, 자발적 가난, 비움의 정신으로 사는 이들은 다르다. 새것보다 낡고 오래된 것에서 신비로운 향기를 맡는다.

나도 최근 정리해둔 엄마의 유품 중 목걸이와 화장품에서 이상한 체온을 느꼈다. 고집스럽게 남은 유품들. 사십년이 지났는데도 고스란히 간직한 분 향기. 흰 얼굴을 뽀얗게 단장해주는 주황빛 분통이 신기로웠다. 문득 사진도 유품과 같다, 고 생각했다. 사실 모든 물건은 쓰레기 아니면 유품이 된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어도 뜻깊거나, 유익하지 않으면 쓰레기다. 유품은 한 사람이 사라지면 새롭게 태어나 특별한 추억과 시간을 그려낸다. 유품은 최초의 상처다. 하지만 그 상처는 나를 깊고 깊은 옛 시절로 데려간다.

남의 바캉스 때 살펴볼 사진집으로 나는 오래된 유산인 이 땅과 삶을 낯설고 신비스럽게 하는 것 위주로 골랐다. 자연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살다 보니 우리가 나약하고, 삭막해지고 있음을 깨닫고 싶다. 우리가 좀더 인간다워지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 자연과 가까워져야만 한다는 것. 자연의 소리와 풍경에 귀기울이고 깊이 바라봐야 한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의 문맹은 이미지를 못 읽는 것이라 할 때 이미지 읽기로서의 사진집을 가까이 두고 보기. 미술과 사진이 구분이 안 되는 혼성 짬뽕의 예술 시대에 사진을 알고 미술도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본다.

먼저 리만근 사진집 <북녘 일상의 풍경>(현실문화연구)을 내밀어본다. 나처럼 이산가족 2세대는 이 사진집을 펼쳐보며 돌아가신 엄마의 외갓집 식구들을 마주한 듯이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이는 오래전 잃고, 잊어버린 한국인의 초상이고, 가슴 한구석 꼭 간직하고픈 풍경이기도 하다. 순정하고 서정적인 옛 풍경이 신기로웠다. 의상만 바뀌었지, 오래전 시대까지 상상되는 시원의 풍경이 북한에는 남아 있었다. 북한에 10년간 머문 사진가의 땀과 애정에 뜨거운 박수를 전하고 싶다.

2005년 올해의 논픽션 대상을 받은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민음사)도 반갑고 아프다. 구한말과 20세기 초 한국 사회와 문화를 다룬 사진엽서다. 이 엽서는 외국인을 위한 관광엽서로 팔렸다. <죄인들> 사진이 가시처럼 목에 걸렸다. 서양 백인들의 제국주의적 폭력의 시선으로 찍었기 때문이다. 깊이있는 저자의 글과 함께 카메라와 시선의 폭력을 심도있게 살필 수 있는 귀한 자료다. 그럼에도 어떤 사진들은 내게 몹시 그리운 이미지였다.

소나무의 사진가로 유명한 배병우 <빛으로 그린 그림>(컬쳐북스)을 보았다. 그는 예전에 “내 사진은 자연에 의존합니다. 내용이나 형식, 모두 산수화를 염두에 두고 있어요”라고 했다. 옛 산수화에서 자연은 자신의 마음이나 품격과 세상을 비추거나 조응하는 거울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의 사진들을 보며 깊고 절제된 시정, 회화적 아름다움을 느낀다. 섬세한 프린트와 미묘한 톤, 정제되고 압축적 시적 회화적, 300개가 넘는 섬들이 떠 있는 전남 여수 수묵화 같은 동양미 사진 속에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름다운 빛이 가득한 날이면 카메라를 들고 어디든 가야만 할 것 같다”는 그처럼 빛이 가득한 날 사진기를 들고 남다른 바캉스사진 한 컷을 찍어보기. 남다른 행복이 자리하리라.

강운구 <오래된 풍경>(열화당)에서의 고대의 빛깔이 어른거리는 경주 남산의 돌부처들. 현대문명 속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적 정취에 대한 안타까움이 고독감과 고요함에 혼곤히 녹아 흐른다. 사진에 밴 한국적 정취를 더듬으며 언젠가 가본 남산 추억이 떠올랐다. 아무 정보도 없이 샌들 신고 남산을 올랐다가 혼쭐이 났던 기억. 그래도 끝까지 오른 남산. 만만치 않게 험한 산에서 엄청나게 많은 마애불. 모든 종교를 넘어 이 땅은 정성 어린 기도로 지켜진 듯 그 애달픈 에너지는 강렬했다. 그 기운으로 피로한 몸을 잊을 수 있었다. 한 장의 옛 사진은 잊고 있던 시간을 증거하고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구본창 젊은 날의 사진집 <시선 1980>(와우이미지)은 유럽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한국적 컬러,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애처로운 시대의 초상이다. 작가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심상사진, “사진은 나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 말했듯 관객을 비추고 흘러간 시대를 보여준 거울일 것이다. 삶의 아련하고 쓸쓸한 시정을 단아하고 격조있게 품고 있다. 아련한 아픔과 불안이 배어 메아리가 길게 남는다.

열화당 사진문고들 중에서 고른 <낸 골딘>의 사진집…. 낸 골딘은 성과 에로티시즘, 그리고 그 관계성들의 솔직한 통찰과 누설을 통해 자신의 가까운 친구들을 기록하는 여성 사진가다. 지금 보여진 사진은 전혀 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어느 우울할 때, 일이 잘 안 풀릴 때 들여다보며 낸 골딘의 사진으로 위안받고 싶다. 그녀가 사는 장소는 여성 작가들이 예술을 펼치기에 몹시 자유롭게 보인다. 이 사진으로 인간이 얼마나 복잡미묘하고 사랑하기에 서툰가를 느끼고 만다. 인생은 정말 산뜻하지 않다. 우리도 쿨한 척, 아프지 않은 척 해도 얼마나 나약한지 느낀다.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와 존 버거의 <본다는 것의 의미>(동문선)와 <제7의 인간>(눈빛), 이토 도시하루의 <20세기 사진사>(현대미학사) 정도만 봐도 바캉스의 질이 달라진다. 절판이 되어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찾아보길 바라는 <카메라 루시다>는 철학자로서 깊은 사유와 문체의 그윽한 미학적 향기가 빛난다. 책과 연애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롤랑 바르트의 귀한 사진 해설서이다.

미술비평가, 사진이론가, 소설가,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비평가로 널리 알려진 존 버거가 장 모르와 함께 만든 <제7의 인간>. 이는 1970년대 유럽 이민노동자들의 경험으로 세계의 정치적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노동 현실도 다르지 않아 독자들은 묵직한 공감을 얻으리라. 따스한 밥 한사발을 얻기 위한 눈물겨운 투쟁. 수많은 노동자의 얼굴이 가슴 뭉클하다.

가족사진 한 장이라도 잘 찍으려면 최고의 사진들을 즐겨보라. 놀고 쉬는 틈틈이 보고 느끼는 시간들을 누리시라. 인생은 어디서나 가슴에 사랑을 담는 여행이며, 그 사랑은 사진이 증거한다. 신현림/시인ㆍ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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