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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7.08 21:06 수정 : 2011.07.10 15:22

신들의 봉우리

전설의 산악인 다룬 ‘신들의…’
데즈카 오사무 10년 대작 ‘붓다’
역사서보다 치밀한 ‘조선왕조…’
시공간 초월한 웃음 ‘테르마이…’

주관적 생각이지만 만화는 봄, 가을보다는 여름, 겨울에 더 어울린다. 맘에 드는 만화를 수북이 쌓아놓고서는 여름이면 바람 솔솔 부는 시원한 평상에 누워, 겨울에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계절에 어울리는 주전부리와 함께 만화를 보면 근심이 절로 사라진다. 만화 보기에 좋은 계절이 왔으니, 답답한 세월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만화를 보자. 2011년 여름에는 ‘인류와 자연의 위대한 유산들’을 만화로 만나보면 어떨까. 태풍도, 폭우도 많은 여름, 좀 통 크게 가보자. 요즘 인기 좋은 포털의 우스개 웹툰과는 구분되는 그야말로 대하서사만화를 보는 맛도 남다를 것이다.

<신들의 봉우리>(애니북스) 자연이 남긴 위대한 유산과 인간의 도전이 한데 어우러진 장소가 바로 산이다. 산에 왜 가느냐, 있으니까 간다는 선문답을 구체화해 보여주는 작품이 <신들의 봉우리>다. ‘그림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 이런 타이틀이 어울리는 만화가인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은 단편과 중편이 주로 소개되었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돗토리현의 풍광을 바탕으로 개인과 가족의 삶을 문학적으로 묘사한 <열네살>, <아버지> 같은 중편은 물론 기르던 개의 죽음을 사실적으로 옮긴 <개를 기르다>나 음식을 해설하지 않고 먹는 행위에 집중한 <고독한 미식가>까지. 작가 이름만으로 안심하고 만화를 고를 수 있는 작가가 바로 다니구치 지로다.

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글 다나구치 지로 그림
<신들의 봉우리>는 자연의 풍광을 가장 사실적으로 그리는 작가라는 명성이 아깝지 않게 다니구치 지로가 그린 산의 모습이 인상적인 만화다. 한겨울 눈사태가 쏟아져내리고 얼음이 가득한 산을 오르는 모습은 영상보다 훨씬 사실적이다. 감히 카메라가 들어가지 못한 자리에 다가가, 산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을 정확히 표현하고 그들의 마음을 보여준다. 산에서 목숨을 잃는 모습이나 목숨을 잃을 지경에 처한 장면까지 너무 생생해 전율을 느낄 정도다.

45살 이상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다가 대원 두명이 목숨을 잃는다. 사진작가로 참여한 후카마치는 망원렌즈로 그 모습을 찍었다. 충격을 받은 그는 다른 이들을 따라 귀국하지 않고 카트만두에 남는다. 그러다 우연히 낡은 코닥 카메라를 손에 넣게 되고, 그 과정에서 일본 산악계의 전설로 남은 사나이 하부 조지를 만난다.

붓다 데즈카 오사무
<붓다>(학산문화사) ‘일본만화의 아버지’, 더 과장되게 ‘만화의 신’이라고까지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가 말년에 완성한 걸작 <붓다>가 다시 애장판으로 나오고 있다. 이 만화를 좋은 인쇄 상태로 다시 볼 수 있는 건 행운이다.

<붓다>는 1972년 연재를 시작해 1983년 마무리하기까지 10년이 걸린 걸작이다. 석가족 왕자로 태어난 고타마 싯타르타, 곧 붓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 네명 중에 한명이 불교 신자라고 하지만 불교 신자가 아닌 이들 중에는 의외로 붓다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데즈카 오사무가 이 만화에서 탐구하고자 했던 생명의 존엄은 붓다의 삶과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철저한 카스트 제도의 밑바닥에서 인간 존엄을 되찾고자 한 주인공들은 데즈카 오사무에 의해 수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나온 지 40년이 지난 만화지만 역시 거장의 실력은 남다르다. 간혹 잔혹한 장면이 나와도 이야기의 맥락에서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 박시백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 학습만화라는 말보다 지식만화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작품이다. 학습만화가 마케팅 용어라면, 지식만화는 만화의 특성을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지식만화의 핵심은 작가가 그 지식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설명하느냐에 있다. 그런 점에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이원복 이후 가장 빼어난 인문지식만화다.


몇 만부는 기본이고 1000만부 넘게 팔렸다는 학습만화들은 대개 이야기 작가와 그림 작가가 나뉘어 있고, 기획단계에서 제시된 패턴에 맞춰 제작된다. 개인의 경험에 의해 설명되는 지식은 쉽게 이해되지만, 공식에 의해 요약된 지식은 한계가 많다.

박시백의 만화는 다르다. 오로지 <조선왕조실록> 창작에만 매달려 자료를 찾고, 재해석해 풀어내는 그의 만화는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가 당대의 처절한 사회, 정치 상황을 보는 듯하다. 최근작인 17권을 보면 11살에 임금이 된 순조 대신 수렴청정에 나선 정순대비가 등장한다.

박시백은 그녀가 영의정이자 당시 집권세력인 노론벽파의 영수인 심환지의 뜻에 의해 움직인 것이 아니라 탁월한 정치 감각과 결단력을 지닌 여성 정치인이라고 해석한다. 꽤나 낯설고 어려운 당대의 정치 상황을 꼼꼼하게 반영해 이야기를 끌고 간 이 만화는 <조선왕조실록>을 가장 꼼꼼하게 해석해 낸 멋진 지식만화다.

<테르마이 로마이> 야마자키 마리
<테르마이 로마이>(애니북스) 시공간을 건너뛰는 초자연 현상을 말하는 ‘타임슬립’은 만화에서 자주 써먹는 유용한 설정이다. 그만큼 잘못 쓰면 독이 된다. 타임슬립 설정의 묘미는 다른 시대의 경험이 내가 있는 이곳에서 뭔가 유용하게 쓰이는 것이다. 이건 역사적 지식과 상상력을 모두 필요로 하는 꽤 정교한 작업이다. <테르마이 로마이>는 타임슬립, 인류의 유산, 고대 이야기 뭐 이런 것들을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물려낸 작품이다. 일단 타임슬립의 설정부터 무척 참신하다. 창의적이지 못해 해고당한 로마의 목욕탕 전문 건축가 루시우스는 목욕탕에서 일본의 목욕탕으로 타임슬립한다.

일본의 목욕탕, 루시우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안족’(얼굴이 평평한 사람들)이 보여준 놀랍고 발전된 문명은 루시우스의 기억에 의해 로마에 하나씩 적용된다. 과즙을 탄 우유, 목욕탕 벽에 붙은 화산 그림, 야외온천, 삶은 달걀, 개인목욕장치 등등 현대 목욕시설을 루시우스의 시선에서 해석해 그걸 다시 고대 로마에 적용시킨다는 이 이야기는 몇번을 다시 읽어도 지루하지 않다.

역사적 사실과 진실성이 적당한 ‘뻥’과 유쾌한 만화 감각으로 재해석된 걸작이다. 고대 로마와 현대 일본을 ‘목욕’이라는 인류의 유산으로 연결하는 상상력이 발랄하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만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상상력. 중학교 때부터 세계를 떠돌던, 그야말로 노마드 작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만화가 아닐까.

박인하/만화평론가ㆍ청강문화산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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